근사한 대학교수 남편과 어여쁜 자녀들, 그리고 큼지막한 아파트를 갖고 있는 완벽해 보이는 여자 미연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입니다. 칼로 자른 듯 반듯한 그녀의 신앙생활은 마치 그녀의 품위를 증명하는 것 같지요. 완벽해 보이는 그녀에게는 두 자매가 있습니다. 언니 희숙은 늘 ‘괜찮다’를 연발하며 아픔을 속으로 삭이기만 하지만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데다가 암 선고마저 받은 상태입니다. 막내 미옥은 남편이 전처에게서 낳은 아들에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하지만, 알콜 중독에 가까운 술버릇이 있는 데다가 철없는 행동으로 사고를 치기 일쑤입니다. 사실 완벽해 보이는 둘째 미연의 삶도 믿었던 남편의 외도로 인해 파괴되기 일보직전입니다. 그녀의 일상이란 반듯하게 정돈되어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균열되기 시작한 얼음장과도 같은 것이죠. 이들 세 자매는 완벽한 척,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가려 애쓰고 있습니다.
깊고 내밀한 상처
그런데, 이들 세 자매의 상처는 사실 그 뿌리가 깊고 내밀합니다. 어린 시절, 첫째 희숙은 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했습니다. 억압과 학대 속에서 자란 희숙은 아픔을 잊기 위해 스스로에게 ‘괜찮다’, ‘괜찮다’며 최면을 걸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힘겨운 삶을 사는 그녀가 간혹 탐닉하는 자신만의 즐거움이란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는 것이지요. 둘째 미연은 언니가 학대당하는 것을 보면서 남들 앞에서 자신에게 아무 문제가 없는 양 포장하는 방법을 어린 시절부터 체득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은 그녀에게 좋은 도피처이자 연극무대가 되어준 것이지요. 그녀는 시종일관 우아함과 침착함을 잃지 않으려 합니다. 심지어 남편의 외도 장면을 직접 목격한 직후에도 꼿꼿이 성가대 지휘를 해낼 정도지요. 분노와 절망, 여자로서의 자존감이 무너진 복합적인 감정을 꾹꾹 눌러서 담아내는 배우의 표정은 관객으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합니다. 도회적이고 세련된 그녀의 영화 속 의상은 때로 신경질적인 언행과 어우러지면서 붕괴되기 일보직전의 불안한 삶을 잘 표상해 주지요.
기독교의 민낯
미연은 ‘너를 위해 기도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할 정도로 교우들에게 다정다감하지만 사실 그녀의 신앙은 다소 왜곡되어 보입니다. 남편의 외도 상대를 붙잡고 목놓아 울며 기도를 해 주는 모습이나, 찬양과 통성기도에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 지나치게 강압적인 자녀교육 방식 등은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미연의 아버지는 교회의 장로로서 활동하고 있는데, 한때 가정폭력을 일삼았지만 자녀들에게 사죄하지는 않은 상태입니다. 이러한 장면들은 마음 아프지만 어쩔 수 없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오늘날 기독교의 민낯이겠지요.
상처입은 자들의 삶의 궤적
세 자매의 앞으로의 삶이 결코 순탄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희숙의 병은 치료될 수 있는 것인지, 앞으로 그가 얼마나 힘겹게 병마와 싸워야 할지 영화는 또렷이 말해주지 않습니다. 그간의 삶의 궤적으로 미루어 볼 때, 희숙의 상황은 녹록치 않아 보입니다. 힘겹기는 미연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의 외도 때문에 미연의 삶에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생겼구요. 그 상처가 얼마나 더 미연의 삶을 쥐고 흔들지 예단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앞으로 미연은 교회에서 얼마나 더 가식적인 모습을 보여야 할까요. 그리고 그 마음속 허망함이란 얼마나 스스로를 아프게 할까요. 막내 미옥은 세 자매 중 그나마 가장 희망을 머금고 있는 것 같지만, 알콜 중독에 가까운 그녀의 술버릇이 과연 고쳐질지, 과연 그녀는 아들과 원만한 관계를 이뤄나갈지, 정말로 그녀가 원하는 대로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지 낙관할 수만은 없습니다.
상처를 부여안은 채 서로의 손을 맞잡다
그럼에도 영화는 그저 칙칙하거나 염세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상당한 울림을 주는데요. 각자의 상처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서로의 손을 맞잡을 때 따스한 온기와 함께 싹트는 희망을 보게 됩니다. 우리네 삶과 상처에 대한 영화의 태도를 잘 보여주는 아버지의 생일잔치 장면에서 갈등은 마침내 폭발하고야 맙니다. 이제껏 ‘괜찮다’로 일관했던 희숙은 처음으로 크게 소리를 지르지요. 그런데 그녀의 외침은 곪았던 상처를 터뜨리기 보다는 그냥 봉합해 버리자는 서글픈 넋두리처럼 들립니다. 마치 삶이란 그냥 그런 것이니까 우리는 그저 아닌 척, 괜찮은 척 살아가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이죠. 사과하라며 아버지에게 소리치는 미연, 마침내 그녀가 오열하고 말 때 세 자매가 감내해야 했을 내밀한 상처가 떠오르면서 관객 또한 함께 울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영화는 우리에게 나지막이 위로를 건네는 것 같습니다. 아닌 척,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서로를 그리고 스스로를 속이며 살아가야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우리네 인생들이 상처를 마주하는 진실된 태도가 아닐런지요
노재원 목사는 현재 <사랑하는 우리교회>(예장 합동)에서 청년 및 청소년 사역을 담당하고 있으며, 유튜브 채널 <아는 만큼 보이는 성경>을 통해 기독교와 대중문화에 대한 사유를 대중과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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