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남은 1897년 7월 8일에 배재학당을 졸업하였다. 이 날 개최된 배재학당 졸업식에서 그는 미국 대학에서 본 딴 졸업생 대표 연사로 선정되어 배재학당 장 아펜젤러 및 서재필은 물론 벙커(Dalize A. Bunker) 존스(George H. Jones), 헐벗( Homer B. Hulbert) 등 선교사 내지 교사들과 미국 공사관의 씰(John M. Sill)공사와 알렌(Horace N. .. 우남의 출생과 교육환경Ⅸ: 선교사들과의 사귐
우남은 배재에 입학한 이후로 영어를 공부하면서 많은 선교사들과 사귐을 갖게 되었다. 배재학당장인 아펜젤러 선교사를 비롯하여 이승만에게 한국어를 배운 미 북장로교회 의료선교사 파이팅, 삼문 출판사 사장을 지낸 올링거, 배재학당교사인 노블, 육영공원이사이며 배재학당 3대 교장을 지낸 벙커, 육영공원 이사이며 YMCA 초대회장인 헐벗, 배재학당 임시당장을 지내고 제물포지방 감리사를 지낸 존스, 그.. 우남의 출생과 교육환경Ⅷ: 선교사들로 구성된 배재학당의 교사진
배재의 제일 큰 장점은 아마도 우수한 교사진이었을 것이다. 초대 당장인 선교사 아펜젤러의 경우 그는 미국 펜실베니아의 명문 프랭클린 앤 마샬 대학(Franklin and marshall College)과 드류 신학대학교(Drew Theological Seminary)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자마자 한국을 찾아온 젊고, 기상이 넘치며 실력 있는 이상주의적.. 우남의 출생과 교육환경Ⅶ: 우남과 배재학당(培材學堂)
배재는 1885년 8월 3일 미국의 감리교 목사인 아펜젤러가 서울에 세운 한국 최초의 근대식 중등교육기관이다. 그 명맥은 오늘날 배재중·고등학교 및 배재대학으로 이어졌다. 고종 22년(1885) 7월 아펜젤러 목사가 서울에 들어와 1개월 먼저 와 있던 스크랜턴 의사의 집 한 채를 빌려 두 칸짜리 방의 벽을 헐고 조그마한 교실을 만들었다. 같은 해, 8.. 우남의 출생과 교육환경Ⅵ: 우남의 단발(短髮)
기독교 선교학교인 배재학당에 입학한 우남은 우선 단발을 결행하고 비록 내키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매일아침 기독교 예배에 참여하게 되었다. 조선 시대의 말기인 당시에 시대적 환경은 부모에게 물려받은 터럭을 자른다는 것은 대부분의 조선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단발령이 내려지기 이전 명과 조선은 모두 성리학적 기준에 따른.. “이승만 전 대통령이 세운 교회, 반드시 보존돼야”
‘이승만 하와이한인기독교독립교회(서울) 보존추진단’(단장 최은경 목사, 주혜란·박용식 공동대표)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소재 서울교회(구 하와이한인기독교독립교회) 마당에서 하와이한인기독교독립교회 보존을 위한 기자회견을 가졌다... 우남의 출생과 교육환경 Ⅳ: 장수 비결
우남은 90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1900년 경에는 유아기에 죽는 경우가 많아서 당시 우리나라의 평균 수명은 25세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우남은 달랐다. 1875년에 출생하여 우남이 1965년까지 거의 거의 한 세기를 산 것이다. 당시 조선의 생활환경 조건하에서는 이처럼 장수한다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이었다. 또한 우남은 독.. 우남의 출생과 교육환경 Ⅴ: 우남의 학문적 배경
우남은 소년기에 어느 양반집 자제와 마찬가지로 과거 등과를 목표로 서당에서 공부하였다. 여섯 살 때 천자문을 마친 그는 그 후 줄곧 서울의 낙동과 도동에 있는 서당을 다녔다. 그는 열 살 때부터 열아홉 살 때까지 10년간 양녕대군의 봉사손으로서 종친부 종정경과 사헌부, 대사헌등 요직을.. 우남 이승만 신앙연구: 신앙형성을 중심으로
당시의 관습에 의하면 양반집 자녀들은 조혼(早婚)하게 되어 있었는데 우남은 1890년 15살이 되던 해 부모가 간택한 우수현 근처의 동갑나기 음죽 박씨와 결혼하였다. 나중에 남편의 이름에서 승자를 따서 승선이라는 신식 이름을 갖기도 했던 부인은 남편이 정치개혁을 부르짖으며 활약할 무렵에 아들 봉수를 낳았고, 우남이 6년간의 감옥생활에서 풀려나 미국에.. 우남 이승만 신앙연구: 신앙형성을 중심으로
우남 이승만은(李承晩, 1875년-1965) 1875년 3월 26일 황해도 평산군 마산면 능안골에서 청빈한 가정인 아버지 이경선(李敬善, 1837-1912)옹과 서당 훈장 김창은(金昌銀,1833-1896)의 외동딸인 어머니 김해김씨 (金海金氏, 1833- 1896) 사이의 3남 2녀 중에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우남의 두 형은 모두 우남이 태어나기도 전에 홍역을 앓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