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을사늑약 풍자화
    [아펜젤러 행전] 일본의 조선 침략 야욕과 조일합방
    세계정세에 눈이 어두운 당시의 완고한 조선의 보수파 지도자들은 당시 전래된 천주교에 대하여 철저한 탄압(彈壓)과 쇄국(鎖國) 책을 쓰게 되었다. 1866년 2월 21일 천주교 신자인 남종삼, 장경일, 김장운, 최형, 정의배, 홍봉주 등의 가족을 몰살하고, 프랑스 선교사 9명을 목 잘라 죽이고 조선팔도에 영(令)을 내려 천주..
  • 세 나라가 각축을 벌인 당시 한반도 상황을 그린 죠르쥬 비고의 풍자화(1889년)
    [아펜젤러 행전] 강대국들의 각축장이 된 1880년대 조선
    19세기는 서세동점(西勢東漸)1)의 시기로, 조선은 개항해야 하는 불가피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자주적으로 개항하지 못하면서 강대국들의 침략의 대상으로 전락하였다. 조선의 대외정책은 사대교린(事大交隣)2)의 관계와 국제질서를 표방한 전통적인 쇄국정책이었다. 그러나 19세기 초경에는 중국을 통하여 이미 서양문화에 접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 왼쪽부터 세 번째가 훗날 6대 이화학당장을 역임한 첫째 딸 앨리스, 맨 왼쪽이 아펜젤러,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부인 엘라.
    [아펜젤러 행전] ‘역병의 시대’ 조선의 병약한 사회적 상황
    아펜젤러는 영아소동이 있기 3년 전, 1885년 4월 5일 조선에 들어왔다. 조선에 입국한 지 거의 1년이 지난 1886년 7월 24일과 28일 기록한 그의 일기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되어있다. 그의 이 일기(日記)도 당시 조선의 병약한 사회적 상황을 한 눈에 보여주..
  • 헨리 게르하르트 아펜젤러 선교사와 부인 엘라 다지 아펜젤러 선교사의 20대 시절.
    [아펜젤러 행전] 영아 소동과 서양인들
    아펜젤러 내외분과 언더우드, 그리고 스크랜턴과 그의 아내와 어린 딸, 그리고 스크랜턴의 어머니 등 그의 가족이 조선에 입국하던 1885년 당시의 시대적인 분위기를 알려주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글이 전해지고 있다. 아펜젤러가 조선에 입국한 지 3년째..
  • 1897년(또는 1898년) 연례회의에 참가한 선교사들. 맨 우측이 아펜젤러 선교사
    132년 전 아펜젤러 선교사의 조선 선교구상
    나는 앤드류 감독이 이곳에 도착하면 나의 이 우둔한 구상을 전하기 위해 이 계획을 지금 다음과 같이 짜고 있다. 나는 서울에서부터 내륙 정탐여행을 마치고 이곳 부산에 있습니다. 나는 내일 귀경하기 위한 출발을 기대합니다. 순행 결과는 선교정책 구상을 총체적으로 변경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항구 도성에 진출하여 조선의 동부지역 사역을 부산에서 해야 합니다. 사역자들이 조만간 이곳..
  • 아펜젤러 선교사(가운데) 가족 사진. 오른쪽에서 두 번째는 부인 엘라, 왼쪽에서 두 번째는 훗날 6대 이화학당장을 역임한 앨리스
    “우리는 조선의 동부지역 사역을 부산에서 해야 합니다”
    본지는 아펜젤러 선교사가 1889년 8월 16일부터 9월 7일까지 23일간 존스 선교사와 함께 서울에서 중부 내륙을 거쳐 부산을 여행한 뒤 귀경하기까지 남부 지역 선교 정탐기를 연재 중이다. 아펜젤러 남부순행 일기를 번역한 리진만 선교사는 지난해 발표한 히버 존스의 일기 번역의 지명 오류를 교정하는 한편, 그들이 숙박했던 경유지의 객사와 당시 지도 등을 수집해 독자들의 이해를 쉽게 했다. 아..
  • 신경준의 『도로고』. 조선 6대로와 남부순행길에 아펜젤러가 이용했던 길 / 1871년 인동읍지 지도
    “조선인들이 가난한 이유는 단지 여인들만 일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금일 아침 우리는 관찰사와 목사(牧使)께서 우리를 기꺼이 면담하겠다는 통보를 받고 강원감영 수부를 떠나기 전 두 분 고관들을 예방하기로 했다. 관찰사는 무뚝뚝한 외모를 가지고 있는 연배가 드신 분이고, 우리에게 대할 때나 말할 때 보면 고지식하고 막무가내처럼 보였다. 수부 전체는 이 감영에서 정한 원칙들로 움직인다. 접견실은 그리 넓지는 않았지만 잘 정돈되어 있었다. 목사는 55~60세 정도..
  • (위) 왼쪽부터 세 번째가 훗날 6대 이화학당장을 역임한 첫째 딸 앨리스, 맨 왼쪽이 아펜젤러,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부인 엘라. (아래) 1889년 부산에서 기록한 아펜젤러의 선교구상 일기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아펜젤러 선교사의 남부순행 일기는 존스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1889년 8월 16일 서울에서 출발해 8월 31일 부산 땅에 도착, 9월 7일 서울에 귀경하기까지 23일간의 선교 정탐 여행기이다. 1889년 당시 미국 공사이던 딘스모어(Mr. Hugh Dinsmore)는 외부(外部)로부터 여행허가증인 호조(護照) 발급을 도와주는 대신 여행 중 설교와 선교 활동은 하지 말고 단지 1달간 전국 어디..
  • 강원감영 대문 포정루의 1912년 이전 모습
    한국 선교사(宣敎史) 연구 활성화되고 바르게 전수되길
    “번역은 반역이다”라는 말이 있다. 수만 리 밖에서 다른 문화와 다른 제도, 다른 관습, 그리고 다른 방언을 가지고 살아가던 이들의 생각을 우리말로 옮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거기에다 130여 년 전 일어났던 일을 현재의 우리말로 정확히 옮기기란 쉽지 않은 작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역자는 번역자가 알고 있는 상식만을 사용해 독자들을 이해시키면 안 된다. 물론 실제 번역 작업에 임..
  • 1910년대 강원감영 모습
    부정확한 2차 자료 인용 시 교회사 왜곡 우려
    필자가 2020년 10월부터 <기독일보>와 <선교신문>에 ‘1889년 존스와 아펜젤러의 남부순행 일기’를 번역 기고해 4회에 걸쳐 연재하다 보니 1929년 발행된 KMF 1월호에는 앞서 언급했듯이 순행기 제목에 1889년 연도 표기가 1888년으로 잘못되어있었다. 1985년 출간한 이만열 교수의 책 『아펜젤러-한국에 온 첫 선교사-』 329쪽 각주 오류는 그가 2015년 발간한 『아펜젤러-조..
  • 1889년 8월 17일, 19일 자 아펜젤러 남부순행 일기 원본 영인본
    ‘아펜젤러, 존스의 원주 강원감영에서의 주일예배’는 사실과 달라
    강원도에 개신교 선교 초기 복음이 어떻게 전해졌는지에 대한 명확한 자료는 아직껏 밝혀진 것이 많지 않다. 다만 개략적인 초기 선교역사가 몇 분 교회사 학자들이 쓴 ‘초기교회형성사’와 강원도 지역의 오래된 교회를 중심으로 발간된 개교회사를 통해 정리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한 가운데 접하게 된 아펜젤러와 존스 선교사의 남부 순행일기를 읽다 보니 지금까지 알려진 강원도(원주) 지방을 방문하고 충주..
  • 민경배 박사
    민경배 박사 “한국 근대화, 美 선교사들 없이는 힘들었다”
    교회사학자인 민경배 박사(전 백석대 석좌교수)가 기독교연합신문 11일자 지면에 ‘미국 선교사들의 공로 없이는 한국 근대화 힘들었다’는 제목으로 기고했다. 민 박사는 “9월 28일! 6.25때 서울이 소복된 날이다. 감격의 그날 어찌 잊을 수가 있으랴! 한국은 세계 거대국들에 둘려 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