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우리에게는 몹시 힘든 시간이었지만 드디어 부녀자들 중 몇몇이 이해하기 시작했다. 모든 이들은 무지한 사람들이었으며 어찌 보면 무식한 부녀자들이었다. 한 부인이 가까스로 다른 이들에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은 아무것도 몰랐고 또한 배울 수 없으리라 말했다. 나의 전적인 노력은 이 부인의 감정을 상하지 않도록 진정시키는 것이었고, 다른 부인들이 깨칠 수 있도록 그들을 격려하는 것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유쾌한 사경회를 원주에서 경험했습니다”
우리는 서울에서 새벽 일찍 떠났지만, 110리 거리의 모골(Mo kol)에 도착했을 때는 밤 9시가 되었다. 서울에서 재래식 등을 샀지만 다 써 버리고 양초 역시 다 떨어져 길 안내꾼이 길옆에 있는 집에 들어가 횃불을 빌려달라 했고, 관솔 한 개를 얻을 수 있었다. 3명의 짐꾼들은 빈 가마를 운반했고 4번째 가마꾼이 앞에서 관솔불을 밝히며 인도했다. 윤 전도부인과 나는 물론 같이 걸었다. 기.. 조선 여성을 미국식 숙녀가 아닌 하나님 백성으로 기른 왐볼드
왐볼드(Katherine C. Wambold) 선교사는 1866년 미국에서 출생, 미북 장로교회 선교사로 한국에 파송되어 1895년부터 1934년까지 40년간 사역했다. 한국명 ‘황보’(皇甫)인 왐볼드 선교사는 서울 선교부에 부임 후 특별히 독신으로 그의 젊음을 여성 교육에 헌신하여 도티(Susan. A. Doty) 선교사와 함께 정신여학당을 운영, 조선 여성들과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