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는 여러 면에서 지구촌의 위기를 겪고 있다. 핵의 위협은 아직도 상존하며, 전쟁난민과 기후난민이 동시에 발생하고, 혐오의 정치는 더욱 당당해졌다. 전염병의 주기적 창궐은 인간이 누리는 자유의 한계가 있다고 경고하는 듯하다. 이 위기 앞에서 20세기의 생활신앙을 돌아보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래적 인간의 존엄을 찾기 위한 인간운동이었으며, 지극히인간중심적인 언어로 표현되고 인간중심적인 공동체 안에서 실천해왔다. 지금은 온 피조물의 고통을 공감하고 서로 공존 공생하는 길을 찾기 위한인간의 책임적 실천이 필요한 때이다.
어린 엄마는 그만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했다. 아기한테 들어가는 돈 … 한 달에 40만 원. 분유, 기저귀, 물티슈를 비롯한 고정 지출부터, 어린 모녀의 생계를 위해 필요한 돈이 40만 원이란다. 고작 그 돈이 없어서 그런 거였다. 40만 원이 없어서 아기는 매일 밤 혼자 잠을 자야 했고, 그 돈이 없어서 어린 엄마는 아기를 일찍 재워야만 했다. 원룸의 문을 잠그고, 가기 싫었던 술집으로 가야 했고, 커가는 아기를 보면서 어린 엄마는 그 40만 원을 원망하며, 다시 화장을 했을 것이다. 그놈의 돈이 문제였다.
“내가 줄게, 40만 원. 매달 줄 테니까 일하지 마!”
아무 생각 없이 툭 이런 말이 튀어나와 버렸다. 나는 다 좋은데, 가끔 이렇게 ‘가오’가 ‘정신’을 지배할 때가 문제다.
이제 3장 21절부터는 1장 16, 17절에서 말했던 모든 믿는 이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말합니다. 이 주제는 4장 마지막 절까지 이어집니다. 이 단락에 제목을 붙여본다면 <의롭게 인정받음의 평등>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바울은 이 의(義)는 율법과는 상관없는 의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한 의라고 말합니다.
21절. 그러나 이제는 율법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습니다.
22절.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오는 것인데, 모든 믿는 사람에게 미칩니다. 거기에는 아무 차별이 없습니다.
바울은 다시 한번 ‘아무 차별’ 없음을 강조합니다. 바울이 자꾸 유대 기독교인과 이방 기독교인 간의 ‘차별 없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바울이 체험했던바 초대기독교 세계 안에는 그 두 부류 사이에 차별이 너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3절에서 바울은 재차 ‘죄 아래서의 평등’을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에 못 미치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바로 24절에서 바울은 ‘의롭게 인정받음의 평등’을 말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얻는 구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는 선고를 받습니다
죄가 인종을 가리지 않듯 의롭게 인정해주시는 하나님의 의도 인종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3강 2장 ╻<의롭게 인정받음의 평등>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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