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33 배우자나 자녀는 하나님이 우리 영혼에 주신 영적 갈증을 채울 수 없다. 하나님을 무시할 때, 우리는 결혼생활과 자녀 양육을 그 본래의 취지와 무관하게 하나님의 대역으로 삼는다.
P. 33 우리는 거룩한 스승들 속에서 살고 있다. 때로 그들은 자신이나 우리를 멸시한다. 성질을 부릴 때도 있고 우리를 껴안고 뽀뽀하며 사랑 할 때도 있다. 좋을 때든 나쁠 때든 그들은 우리 마음을 빚고 우리 영혼을 성장시키며, 더 깊고 새로운 방식으로 하나님을 경험하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자녀 양육의 신성한 여정 중에 눈물도 많이 흘리겠지만 길모퉁이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축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영생을 사모할 때, 이 땅에서의 삶은 새로운 소명으로 다가옵니다. 나의 욕망을 채우기에 급급한 이기적인 삶은 육신의 생명에 대한 집착을 부르고 그 결과 죽음은 두려움과 불안으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것을 자신의 의무이자 소명으로 깨닫는 사람은 삶의 시간을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 예수님과 함께 채워 갑니다. 영생을 소망하는 그리스도인이 죽음을 어둠이 아닌 빛으로 만나게 되는 순간입니다.
_그리스도를 위한 삶에 만족한 장 칼뱅
“감사의 조건들은 아주 많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감사할 수 있답니다.”
_고난의 일상 중에도 감사를 노래한 패니 크로스비
“그러므로 우리는 충실한 신앙자들과 함께 기쁨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깊으신 은총으로 죽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총은 모든 불행을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될 만큼 큰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은총이며 생명의 시작입니다.”
_죽음을 잠으로 설명한 마르틴 루터
청소년들은 미래이면서 동시에 현재이다. ‘언젠가’는 그라운드에서 뛸 선수가 아니라 ‘지금 당장’ 그라운드에서 함께 뛸 동역의 자리로 초대해야 한다. … 청소년 사역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에 하나는 ‘청년 사역’을 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교회 예배나 행사에서 청소년들이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 성도들은 하나같이 청년인 줄 알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학생들 스스로도 자신이 ‘청소년’인지, ‘청년’인지 헷갈린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너희는 소(작은)청년’이라고 말했다. 이것을 깨닫게 된 계기는 처음 청소년 사역을 하면서 섬겼던 청소년부 학생들이 어엿한 청년이 되거나 한 아이의 엄마, 아빠가 되는 것을 보면서다. 청소년기에 어떻게 훈련을 받았는지가 고스란히 현재 그들의 신앙 스타일이 된 것을 본다. 청소년이 청년이 되는 시간은 실제로 너무나 짧다. 청소년과 청년은 맞닿아 있다.
Folder 1. 왜 청소년 사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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