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19 우리가 아가서를 사랑하고 가까이해야 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그것은 바로 아가서가 나의 신랑이신 예수님과 나의 관계를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영적 신랑이신 예수님은 누구이며, 나는 어떤 존재인가, 그분은 나를 어떻게 사랑하시며, 나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는 귀한 말씀이기 때문이다.
P. 36 복음의 열매를 맺는 일에 시간과 정력, 땀, 물질, 지혜를 다 바치는 것이 곧 포도원에서 일하는 것이다. 이것을 주님이 가장 기뻐하신다. 주님의 소원은 이 한 가지다. 그분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무엇인가?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이유가 무엇인가? 그분이 하늘나라에 가시면서 남긴 유언이 무엇인가? 복음의 열매를 맺으라는 것이다.
'죽음, 역병, 전염병'이란 뜻의 히브리어 '데베르'는 '말하다'라는 뜻의 '다바르'에서 유래된, 뿌리가 같은 한 단어다. 세상의 중심에서 나의 왕관을 쓰고 앉아 있는 우리에게 주님은 '데베르'를 통해 '다바르'해 주신다.
그렇다면 주님은 이 다바르를 우리 인생의 어디에 놓기를 원하실까? 성경 66권 중에서 정중앙에 위치한 시편 119편은 성경에서 가장 긴 절을 담고 있다. 무려 176절에 달한다. 히브리어 알파벳 스물두 개를 가지고 열덟 절씩 배열한 이 편은 온통 다바르에 관한 내용이다. 증거, 도, 법도, 율례, 계명, 판단, 말씀, 길, 강령 등 다양한 다바르를 통해 강조하려는 것은 너무나 명확하다. 사람은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존재라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무력함이 드러난 한계 상황에서 주님의 말씀은 빛을 본다.
교회는 그 정의상 모임(assembly)이다. 그것이 교회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클레시아(ekklesia, 부름받은 자들의 모임)의 문자적 의미이다. 모이지 않는 모임은 용어상 모순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함께 모이는 것을 폐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는다(히 10:25). 그리고 이 땅의 어떤 국가도 신자들의 모임을 제한하거나, 한계를 두거나, 금지할 권리가 없다. 우리는 국가에 의해 기독교 회중 예배가 불법으로 간주되는 나라에 존재하는 지하 교회들을 항상 지지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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