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개월 된 어린 한 아이의 죽음이 전 국민을 분노케 하고 있다. 언론은 연일 뉴스를 쏟아내고 sns에서는 시민들의 분노에 찬 글들이 줄을 잇고 국회에는 이제야 법을 만들겠다고 여야를 막론하여 벌써 수십 개의 법안이 올라와 있다. 하지만 정인이가 죽음의 여정을 홀로 외로이 걸어갈 때 우리 모두는 방관자였으며 끝내 지켜주지 못했기에 가해자이기도 한 셈이다.
갓난아기는 스스로 자신을 지켜낼 능력이 없기에 우리는 부모에게 보호자의 자격을 부여하고 혹 부모가 가해자가 될 경우를 대비하여 다양한 법적 사회적 제도를 두고 있다. 어린 정인이를 둘러싸고 있는 보호막은 겹겹이 싸여있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결코 용이하지 않지만 열 겹의 방호막이 다 무너져 내리고 결국 정인이는 차디찬 주검이 되어 안데르센공원 묘역에 묻히게 되었다.
정인이를 가장 가까이 둘러싼 강인한 첫 번째 보호막은 양부모였다. 입양의 동기조차 모호한 첫 번째 보호막은 정인이의 생명권보다 양부모의 행복추구권이 앞섰기에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 다음 정인이를 둘러싼 울타리는 가정이다. 양가의 할아버지, 할머니를 포함한 일가친척은 양부모를 훈계해서라도 지켜 내야하는 보호막이지만 이마저 다 큰 자녀들 눈치보느라 뚫리고 나니 이를 막아내는 또 다른 공동체적인 방어막이 작동했어야 했다. 자주 양부모와 함께 어울렸던 친구들,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교회공동체, 그리고 함께 입양하여 더욱 친밀해진 입양부부모임이 있었지만 이들은 의심은 했을지언정 정인이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가장 실제적인 안전망 지킴이는 아동학대 신고의무를 가지고 있는 어린이집 선생님이며, 정인이를 진찰한 소아과 의사일 것이지만 이들의 신고에도 불구하고 후속적인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이마저 무너져 내렸다. 여기까지 뚫리고 나면 곧바로 작동해야하는 사회적 시스템이 각 지방자치단체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하고 있는 공적안전망이다. 양천구청 산하의 강서아동보호전문기관, 양천경찰서, 그리고 입양 이후에도 계속 관리해야할 책임이 있는 홀트아동복지회가 바로 그것이다. 여러 차례 어린이집과 소아과의사, 양부모 지인 등의 신고가 이어졌음에도 이들은 정인이에 집중하기보다 양부모편에서 그들의 입장만을 경청하였다. 국민의 생명을 지켜달라고 우리는 수많은 명목의 세금을 꼬박꼬박 내건만 행정부인 대통령과 정부, 입법부인 국회, 사법부인 법원은 온통 검찰개혁을 둘러싼 조국사태와 윤-추 갈등에 몰입하느라 어린 정인이의 생명을 지켜내지 못했다. 그 누구도 정인이 편에서 어린 아이의 생명을 지켜내는 역할을 끝까지 감당해 내지 못한 채 이제 우리는 어린 영정 사진 앞에서 그저 통곡할 뿐이다.
아무리 부모라 할지라도 아이를 보호할 의지가 없는 부모에게서 과감히 보호자의 자격을 박탈하여야 할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신애사건이다. 당시 12세였던 초등학생이 윌름즈 종양을 앓고 있었는데 수술하면 나을 수 있었음에도 사이비종교에 심취한 부모는 치료받고 싶다고 절규하는 아이를 집안에 가두고 묶어서 방치하다가 뒤늦게 신고를 받은 경찰이 부모로부터 보호자의 자격을 빼앗아 치료를 받게 하였는데 결국 3년 뒤에 사망한 사건이다. 아무리 부모라 할지라도 아이에게 최선의 선택을 하지 않는 부모에게는 더 이상 부모의 자격을 주지 않고 그 마을 성직자에게 보호자의 자격을 대신 부여해 치료받게 하였으며 이로 인해 국회에서 아동보호법이 제정되게 된 것이다. 정인이의 진정한 보호자는 정인이가 의식이 명료하다면 어떤 것을 원할지 정인이에게 최선의 결정을 내리려는 자여야 한다.
우리는 부모라 하더라도 모두 자식의 생명을 지키려하지는 않는 세상을 살고 있다. 최근 유행처럼 번지는 가족동반자살도 알고 보면 전혀 죽고 싶지 않는 자녀를 끔찍하게 살해하고 자신은 극단적 선책을 하는 살인극에 다름 아니다. 부모를 대신하여 태아를 포함하여 갓난아기들의 생명을 지켜줄 다각도의 법과 촘촘한 사회제도적 안전망이 긴급히 요청된다.
박상은(샘병원 미션원장, 전 대통령직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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