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수단이 주어지는 가장 주된 통로는 하나님의 교회인 성도들의 교제다.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조차도 극단적인 개인주의가 성행하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서 교회가 차지하는 핵심적인 역할과 중요성을 새롭게 상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현대에 접어들어 시작된 극심한 개인주의에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런 이유로 집단적이고 언약적인 관점에서 생각하는 습성을 저버린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졌다(엡 3:19 참조). 교회는 은혜의 수단들이 작용하는 유일한 통로는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통로다. 하나님은 성령과 말씀을 통해 일하심으로써 선택받은 신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은혜의 수단을 이용해 그들의 덕을 세우고, 거룩하게 하신다. 이 목적을 위해 부활하신 주님은 교회에 다양한 영적 은사를 허락하셨을 뿐 아니라 말씀 선포와 성례의 집행과 경건한 권징에 필요한 직임과 사역을 통해 “성도를 온전하게 하는” 일을 하게 하신다(엡 4:7-13).
예수는 씨앗이 뿌려지고, 싹이 트고, 성장하는 모습을 하나님 나라의 주요 주제로 등장시켰다. 그분은 삶과 죽음, 십자가와 부활, 소명과 고난에 대한 이야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라고 말씀하신다. 이렇게 예수는 자신의 소명을 자연의 언어를 통해 청중들에게 전달하였다.
생태 위기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하며,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우주적으로 노래한 바울과 요한의 신학을 더욱 긍정할 수 있게 만든다. 신학자 몰트만은 『예수 그리스도의 길』에서 그리스도가 경험한 십자가의 고난과 자연의 고난이 분리될 수 없음을 분명하게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의 자격을 명시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노예와 같은 무익한 존재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희생적인 봉사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몸소 이 길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땅에 엎드려 발을 씻는 일은 노예가 하는 일이었고 겸손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바울은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갈6:17)라고 말했습니다. “흔적”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스티그마”인데 노예나 가축의 피부에 불로 달군 도장을 새김으로 소유자의 이름을 명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그리스도의 도장이 찍힌 상태이므로 죽을 때까지 멍에를 메고 사는 그리스도의 노예임을 말했던 것입니다. 이제 가슴에 손을 얹고 자문자답 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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