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슬픈 성탄절이,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습니다. 교회에 모여서 성탄을 나눌 수 없을 뿐 아니라,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온전히 축하하고 기뻐할 수 없습니다. 흔히 성탄절에 많이 장식하는 말구유에 누우신 예수님의 인형을 보면 눈물이 날 것 같으니 차라리 다행인가요? 길거리에 반짝이는 트리들이 참 공허하게 느껴집니다.
예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것에 대해서 깊이 묵상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한 아이가 엄마의 태중에서 느껴야만 하는 온전한 “샬롬”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언제 낙태될지 모르는 불안감을 가진 아기들을 어떻게 지켜줄 수 있을까요? 동물의 감정을 이해하고 포용하기 위한 방송이 인기를 얻는데, 아기들의 감정은, 아기들의 불안과 두려움은요?
아기들이 세포덩어리라서 감정이 없다고요? 절대 아닙니다. 현재 의학적으로 밝혀진 바로는 태아의 심장박동은 착상 후 18일부터 시작된다고 합니다. 초음파로 들을 수 있는 것이 5주 3일입니다. 그리고 10주 전후가 되면 세포가 형성되어 고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낙태당시의 초음파 영상에는 10주 전후의 아기가 낙태기구를 피하며, 두려움과 공포를 피하는 것이 나타납니다. 10주가 지나면 꿈도 꿉니다. 꿈을 꾼다는 건 사고를 한다는 말이고, 그것은 바로 아기들이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한 때 유행했던 최면 치료를 하면서 엄마 뱃속에서의 기억과 감정을 말하며 울고 웃었던 연예인들이 있었다는 점을 떠올려 보십시오.
우리는 모두 이런 태아였습니다.
엄마 뱃속에서 기쁨과 슬픔을 알게되었고, 엄마의 체온을 통해 사랑을 배웠습니다.
지난주 한 언론에 이런 내용이 언급되었습니다.
입법 공백이 기정사실화하자, 헌재의 판단 취지를 적극 받아들여 낙태죄 처벌에 문제 의식을 갖고 법 개정 논의에 참여해 온 쪽에서는 오히려 안도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낙태를 처벌할 조항이 사라지는 입법 공백은 곧 현실에서 '낙태죄 전면 폐지'와 다름없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한 의원은 통화에서 "지금의 한국에서 국회가 결정하기에는 너무 논쟁적인 문제"라며 "결과적으로 헌재 취지에 맞는 결과가 나온 만큼 차라리 잘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낙태죄를 폐지하지만 그러면서도 임신하면 금전적 지원혜택 주어서 임신을 장려하겠다는 계획을 가시화하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돈이 없어 아이를 낳을 수 없고, 키울 수 없다는 말만 크게 들리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경제력만으로 양육이 가능하던가요? 그럼 경제력이 충분한데도 출산하지 않는 문화는 왜 생기는 것일까요? 생명을 존중하고 임신과 출산이, 양육이 축복인 나라가 되는 것이 우선 아닙니까? 눈앞의 현상에만 매달려 큰 그림을 못보고 계신 분들께 무릎이라도 꿇고 호소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낙태죄 존치를 주장하고 낙태를 반대하는 자들이 아기들을 다 데려다 책임져라”라는 댓글을 보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런 입법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단 한명의 아이라도 더 출산이 선택될 수 있도록 아기들을 보호하는 입법이 속속 추진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법안이 필요하기 때문에 발의를 하면, 국회에서 통과가 될까요? 낙태죄처럼 정치에 밀려 떠돌게 될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훨씬 높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아기들은 유권자가 아니기 때문에 정치에서 밀려날 수 밖에 없겠지요. 그렇다면 유권자인 어른들이 정치인들을 움직여 아기들을 지키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연취현 변호사 (행동하는 프로라이프 법률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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