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화요일 오전 10시에 진행되는 ‘탈북민센터 북한구원 화요예배’의 지난 8일 모임에선, 탈북민 김권능 목사(인천 한나라은혜교회)가 ‘감사’(시136:1)라는 주제로 말씀과 함께 간증을 전했다.
김 목사는 “개척 5년 차인데 매해 추수감사절 때면 듣는 찬양이 있다. ‘Remind Me, Dear Lord’ 우리 말로 ‘주여 기억하게 하소서’인데 거기에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가 때때로 기억의 커튼을 걷어 주께서 나를 어디로부터 이끄셨고 내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기억하게 하소서’라는 가사이다. 그 가사만 들으면 눈물이 날 것 같다. 이것만 생각한다면 이 땅에서 내가 감사하지 못할 게 어디 있을까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시편 136편은 돌 공장에서 일이 끝나고 기차를 타고 연길까지 가는 동안 암송했던 말씀이다. 처음엔 ‘여호와께 감사하라’가 무슨 말인가 했는데, 훗날 성경을 읽다 보니까 창조부터 시작해서 애굽에서 인도해 내신 것, 그들에게 기업을 주신 모든 것에 대해 감사가 있었다. 그중에서 23절에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서도 기억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는 말이 있다. 처음엔 우리는 왜 저 땅에 태어나 자라면서 교육을 받고 굶주리고 중국에 와서도 안전에 대한 보장도 없이 살아야 하냐는 불평과 원망 같은 것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 말씀을 가만히 살펴보면 그래도 감사할 게 많다”며 “하나님은 그 비천한 가운데서도 우리를 기억하시는 분이란 걸 알았다”고 했다.
이어 “기차를 타고 암송하며 가던 저의 모습을 떠올려봤다. 돌가루를 내는 공장에서 일했는데, 일에 지치고 온 손엔 굳은살이었다. 방독면을 끼고 일해도 돌가루가 가득 차서 20대 청년인데도 얼굴이 트고 손은 다 찢어져 있었다. 이런 모습이라도 불러주신 것만으로 감사했다. 같이 갔던 친구는 돈을 좀 더 벌어보겠다고 망나니들하고 같이 다니면서 일해주고 돈도 제대로 못 받았다. 그 친구를 데려오니 망나니들이 저를 따라와서 주먹질했다. 그때 여기서 같이 싸우면 공안이 오니까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거기에 다 매여 있었다”고 했다.
이어 “그런 우리를 불러주셔서 예수님을 영접하라고 하셨다. 처음엔 내가 생각했던 학교도 아니고 성경만 읽어야 한다고 했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공장을 돌리고 온종일 삽질을 하다 보니까 자고 일어나면 손이 펴지지 않을 정도로 아팠는데, 성경은 읽히지 않아도 미래가 보이지 않아도 잠시 잠깐 쉼을 얻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그랬던 저희를 불러주셔서 말씀으로 거듭나게 하시고, 다른 세상을 보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 위해서 일꾼으로 삼아주신 것이 감사했다. 제가 순교에 대한 각오를 이야기하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은데 그렇지 않다. 우리의 이전 모습과 주님을 만났을 때의 모습 사이에서 주님께서 감사해서 했던 고백일 뿐이다. 감사하는 사람이 주를 위해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진짜 감사하는 사람은 순교도 두렵지 않다.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주께서 우리를 위해서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알기에 감사를 아는 사람이 그런 일을 하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셨던 모든 일이 하나님과 나 사이에서 일대일로 이뤄진 게 아니라 누군가 우리를 위해 기도했고, 눈물 흘렸다는 것을 생각하면 좋겠다. 성경 공부를 처음 시작할 때 선교사님께서 우리가 이곳에서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고 잘 지낼 수 있는 것은 우릴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과 교회를 쭉 불러주면서 우리도 그들을 위해 같이 기도하자고 하셨다. 하나님을 믿지 않았을 때는 우리를 위해 기도하는 동역자들, 헌신자들이 있다는 것이 의아했다. 그런데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하나님께서 정말 원하시는 것들이 이런 것이구나, 그래서 형제자매라고 부른다는 것을 깨닫고 정말 감사했다”고 했다.
이어 “올해 7월에 탈북한 분들이 있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중국이 모두 통제되고 이제는 브로커들도 체포되면 코로나 방역죄가 플러스 되어서 엄중히 처리하기에 나서는 사람도 없다. 다행히도 조금 더 안전한 지대로 옮겨왔다고 한다. 이곳에서 그곳의 기도제목을 듣고 함께 일할 때 과거에 우리를 위해서 이렇게 아파해주시고 기도해주시는 분들이 있었겠다는 생각에 더욱 더 감사했다. 현재 북한에 갇혀 있는 분들은 모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그분들의 고통을 줄여주시고 위로하여 주시고 분명히 그분들 가운데 훗날에 간증할만한 역사가 일어날 줄로 믿는다. 그것은 우리가 이곳에서 기도하고 있고 눈물 흘리기 때문이고, 제가 현장에서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 목사는 “현장에선 가끔 놓칠 때가 있다. 어느 날 일하던 분들이 갑자기 북송됐었다. 처음엔 받아들이지만 시간이 지나자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나를 데려가도 좋으니 이 사람만은 꼭 살려달라고 기도했는데, 결국 북송되어 돌아오지 못하고 순교한 소식을 들었을 때는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결국엔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라’라는 고백을 해야 할 줄로 믿는다. 우리의 생각과 기준에선 그분이 끌려간 것이 가슴 아프고, 그렇게 되지 말았어야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결국 그런 아픔 가운데 우리가 눈물과 피로 심은 저 땅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교회가 세워질 것이다. 저 땅에 세워질 교회 앞에서 우리는 그 순교자들의 피를 기억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더 많은 사람이 주님 앞에 감사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가 겪었던 일들을 나열해 보면 사실은 불행이고 아픔이고 고통이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본다면 그 가운데 계셨던 그 하나님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런 것들이 보이지 않으면 하나님이 믿어질 수가 없다. 우리가 보통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면 처음 하는 말은 내가 고통당하고 눈물 흘릴 때, 북한의 저 수많은 사람이 굶어 죽어갈 때 하나님 어디 계셨냐는 것이다. 그런데 잠잠히 기도하면서 내가 보고 경험했던 아픔과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나를 품어주셨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때는 진짜 크리스천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그것을 가르쳐주는 일을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에게 역사하셨는지, 그 수많은 사람이 고통받는 가운데서 왜 나를 불러주셨는지, 그들을 생각할 때마다 왜 눈물이 나는지. 하나님께서 그런 사명을 가지고 우리를 인도하셨다고 고백한다”고 했다.
이어 “중국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처음 나간 사역지에서 실패했다. 젊음의 의지와 뜨거움을 가지고 시작했는데, 사역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셔야 가능한 일이다. 특별히 강한 사람을 보내주셔서 기도밖에 답이 없어서 금식하며 높은 산에 올라 밤새도록 기도했다. 두 달 동안 사역을 하다가 번아웃이 되었다. 선교사님이 오셔서 정리해주셨고 저는 다시 연길로 보내졌다. 기차를 타고 가는데 두려웠다. 연길에서 사람을 찾으러 다니지도 못하고 있는데, 제가 알던 사람들로부터 이런 사람들을 데려가라고 연락이 왔다. 그때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을 느꼈다. 그 사람들을 데리고 가다가 공안에 체포된 적이 있었다. 사역에 대한 두려움이 생겨서 그들을 데리고 가는 동안 밥도 못 먹고 잠을 자지도 못하고 계속 기도만 했다”고 했다.
이어 “제가 데려가던 사람 중 한 명이 경찰에 잡혔다. 7월인데 혼자 검은 양복을 입고, 중국말도 못 하니 경찰이 따라오라고 한 것이다. 그때 내가 이 한 사람을 따라갈지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갈지 고민을 했다. 이미 한 번 체포되어서 아팠기 때문에 이 사람이 체포되면 못 견딜 것 같았다. 나도 신분증이 없었지만 중국말은 조금 할 줄 아니까 경찰을 따라가서 한국 유학생이라고 말했다. 학생증은 학교에 두고 왔다고 말하고, 가방을 열어서 보여줬는데 특별한 게 없으니까 보내줬다. 그때 제일 감사했다. 왜냐면 내가 그 한 사람을 위해서 함께 했다는 것이 다른 분들에게도 감사였는지 그 때부터는 다들 제 말을 듣는 것이었다. 만약 이 사람을 버리고 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내 힘을 빼고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그때그때 주시는 생각과 마음이 중요하다. 아마 내 의와 내 생각으로 계산했다면 더 많은 사람을 내가 구원해야겠다며 그 사람을 포기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못 할 것 같다, 이제 안될 것 같다고 생각했을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과 용기 때문에 그 사람도 살렸고 다른 분들도 함께했다는 것이 지금도 감사하다”고 했다.
이어 “사천성에 도착해서 방을 잡고, 다음날 아침 창문을 내다봤는데 앞에 공안차가 서 있었다. 우리를 잡으러 온 줄 알았는데, 알고 봤더니 우리가 공안 아파트에 들어와 버린 것이었다. 두렵고 놀랐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이라는 것을 알았다. 중국은 관시(관계)라는 것을 중요시 한다. 공안 아파트면 저 집이 누구네 집이라는 것을 아는데, 세를 줬는데 공안에 신고해서 우리를 잡아들이면 안 되는 것이다. 또 99년도가 중국의 국경절 50주년이어서 호구조사를 다 했는데 그곳만은 안전했다. 그래서 안전하게 사역이 진행되었다”고 했다.
그는 “ 모든 사역을 돌이켜볼 때 내가 감옥에 갔고, 북송되고, 고통을 당하고 많은 형제를 잃었다는 것만 기억하면 무너질 수밖에 없고 아픔이라는 것만 기억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일들을 기억해보니까 이것도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에 감사가 되었다. 그 감사는 억지로 만들어내는 감사가 아니다. 기억의 커튼을 들어보았을 때 하나님께서 나를 어디서 불러주셨고 어떻게 인도했는지를 보여주면서 감사가 되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인생은 다 그런 역사가 있다. 내가 그걸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잠잠히 하나님 앞에서 그 일들을 느끼다 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역사하셨구나! 보여질 때가 있다”고 했다.
이어 “처음엔 공안 아파트 앞에 두려웠다. 첫 번째 사역도 망했는데…. 나는 또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는지 생각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하나님이 하셨던 일들이었다.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는지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중요하다. 나에게 있어서 잃어버린 것, 버려진 것들, 27살에 감옥에 들어와 37살에 나왔다. 어떻게 보면 아까운 청춘이 다 그곳에 있다. 저도 그렇게 느꼈던 적도 있었다. 우리가 인생 가운데 빼앗긴 것을 너무 집착하다 보면, 이것이 원래 내거였다고 생각하면 빼앗겼다고 생각한다. 처음 말씀드렸던 찬양에 이런 가사가 있다. ‘하나님 나에게는 내 것이라는 게 전혀 없어요. 주님께서 주님의 일을 하라고 나에게 잠시 맡겨주신 것뿐이에요.’ 내 것에 집착하는 사람 그래서 내 것을 빼앗겼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주님 앞에 감사할 수 없다”고 했다.
김 목사는 “지금까지 돌이켜보면 비록 저 땅에서 고난을 겪었고, 중국 땅에서 10년이란 시간을 보냈고, 배 안에서 아이도 잃고 고난이란 고난은 다 겪어본 것 같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을 느끼며 감사하게 되었다. 우리가 감사를 먼저 찾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에게는 외상 후 스트레스라는 병이 있다. 꿈에서 자꾸 감옥에 경찰들이 날 잡으러 온다. 20년 가까이 되어가는데 그때가 너무 생생하게 떠올라 그날부터는 마음이 힘들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 동족들이 중국 땅에 넘어와서 산속에서 고난을 겪고 있다는 소리만 들으면 밤에 잠을 잘 수 없다. 우리가 아파봤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치유되지 않은 마음, 트라우마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아파서 저들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기 때문에 저는 감사하다. 대한민국에 북한 땅을 위해서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분들 대부분은 아파봤던 분들이다. 분단의 설움을 아는 분들이다. 삶 속에서 그런 것들을 많이 경험한 분들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불행 같지만 우리를 불행하게 하시는 이는 다른 이의 불행 때문에 그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시기 위해 우리를 아프게 하시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어 “그렇게 3만 명을 보내셨다고 생각한다. 북한이 경제제재를 많이 당함에도 불구하고 북한 내부 경제가 돌아가는 이유는 탈북민 때문이다. 탈북민들이 가족들에게 굶어 죽지 말라고 보내주는 돈이 어마어마하다. 북한 내부에서 올해 탈북자 쓰레기 운동이 일어난 이유가 있다. 북한 내부에선 탈북자를 둔 가족을 한라산 줄기, 김정은 가족을 백두산 줄기라고 한다. 그런데 백두산 줄기보다 한라산 줄기가 더 좋다는 말이 돌고 위기가 오니까 북한 내부에서 탈북자를 밑바닥으로 만드는 것이다. 내 가족이다 보니까 저 땅에 살아봤으니까 이 땅에서 힘들게 벌어도 그 돈을 북한 가족에게 보내니까 북한 주민들이 사는 것이다. 가장 효과적인 북한 돕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사천성의 늘 비가 오고 습기가 많은 방에서 곰팡이 진 벽에 ‘울며 빵을 먹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배고픈 자들의 아픔을 기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썼던 기도 제목이 있다. 중국에서 성경 공부 하면서 정말 많은 금식을 했는데 할 때마다 감사했다. 정말 배고픈데 배고프니까 마음이 바로 북한에 갔다. 지금도 굶어 죽는 사람들이 생각난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서 더 준비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사실 대한민국 20대와 북한의 20대 청년이 다르지 않다. 다 나가서 놀고 싶고 혈기가 넘친다. 그런데도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금식할 때 북한 땅에서 겪고 있는 고통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빨리 준비되어야겠다고 해서 그곳에서 성경 공부하고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준비하게 하셨다”고 했다.
김 목사는 “우리가 겪는 아픔이 늘 불행한 것만은 아니다. 그 아픔 때문에 하나님께서 일하게 하실 것이고, 우리를 통해서 다른 아픈 사람들을 구원하게 하실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맺어진 공동체를 통해서 하나님은 회복의 메시지를 주실 것이다. 오늘 본문이 그런 뜻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기 때문에 감사하고, 애굽땅에서 불러내셨기 때문에 감사하고, 그 모든 백성을 그 어려운 광야를 통과하게 하셨기에 감사하고, 우리를 비천한 데서 기억하게 하셨기에 감사하다. 그런 감사를 잊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그런데 인간은 배부르고 등이 따뜻하면 과거를 잊어버린다. 저도 2년 전에 중국에 갔을 때 그것을 실감했다. 중국은 저의 제2의 고향 같은 곳이었고, 북한에서 살다가 갔기에 중국의 발전상이 너무 좋았다. 그런데 한국에서 6년을 살고 중국에 가니 먼지가 많아서 숨을 안 쉬게 되고, 사람들이 먹는 것, 신호등을 어기는 모습 등을 보면서 자꾸 눈을 찌푸리게 되었다. 우리가 감사를 떠나면 북한선교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북한에 돌아갔을 때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이 과거의 나와 같을 것이다. 도와주길 바랄 것이고, 좋지 않은 환경에서 살면서 그런 음식을 먹을 것이고, 신호를 잘 모를 것이고 약속을 잘 지키지 못할 것이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못 사는 거라고 나도 모르게 생각할 수 있다.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주님께서 나를 어떻게 불러주셨는지 잊어버리는 사람은 아무리 다른 것은 준비됐다 할지라도 실질적으로 북한에 들어갔을 때 그들에게 복음이 아니라 오히려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며 “감사를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제가 감옥에 있을 때 이곳에서 저를 위해서 기도를 많이 했다고 들었다. 어떤 분들은 제가 갇힌 감옥이 꽤 큰데 눈 오는 날 감옥을 빙글빙글 돌았다고 한다. 미국의 어떤 집사님은 저를 모르는데도 저를 위해서 기도하면서 결혼식 때 받은 반지와 시계를 내어놓았다고 한다. 그분이 경제적으로 몹시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훗날에 두 자녀가 좋은 대학에 장학금을 받으면서 갔다고 하시니 더욱 더 감사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셔서 역사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일이라는 게 하늘로부터 직접적으로 오는 역사도 있지만, 그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고 감사해서 일하는 한 사람을 통해서 또 다른 사람이 감사하게 된다. 감사는 그렇게 릴레이가 되고 퍼지게 된다. 복음이라는 건 곧 감사다. 우리를 살려주신 주님께 감사했고, 그 주님께서 원하시는 뜻대로 살고자 다른 사람을 감사하게 하는 것이 복음이다. 그래서 감사로 제물을 드린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한다고 하셨다”며 “북한선교에 그런 감사가 계속해서 이어지길 바란다”고 했다.
김 목사는 “코로나로 환경이 어려워져서 탈북민들이 탈출해서 갈 곳이 없는 분들이 많다. 자녀를 한국에 데려왔는데, 자기 가족에게 보여주러 갔다가 가족에게 뺏긴 분도 있다. 주변에 옥에 갇힌 자도 많고, 갈 곳이 없어 빈집에 들어가서 사는 등 주변에 어려운 분들이 많다. 미국의 장로님이 마태복음 25장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셔서 그 큰 중국에서 제가 있는 감옥을 찾아오셨다.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었던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그분이 찾아오게 하셔서 하나님의 위로를 느끼게 하셨고, 그렇게 이어지게 하셨다. 하나님께선 지나치게 자신에게 집착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갇혔을 때 너는 돌아보지 아니하였다 이야기할 것이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준비된 분들에게는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어려울 때 우리 교회가 회복될 수 있는 길이 그런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북한선교, 탈북민에게 복음이 들어가지 않는 것은 감사의 복음이 아니라 종교적 복음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예수님 말씀처럼 바리새인의 의보다 낫지 못하다면, 북한에서 말하는 혁명적 동지애보다 형제·자매를 향한 사랑이 더욱 더 높지 못하다면, 진실되지 못하다면 복음은 복음으로 역사하지 못하고 종교로만 머물게 된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하겠습니다’ 하기 전에 먼저 ‘ 나를 불러주실 때 내가 어디에 있었는지, 어떻게 주님께서 불러주셨는지를 나로 알게 하고 기억하게 해주십시오. 그래서 내가 감사하게 하여 주십시오’ 하는 것이 먼저 회복되어야 한다. 북한선교가 그렇게 세워지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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