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염교회 조현삼 목사가 최근 교회 홈페이지에 ‘예수님의 인생론’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조 목사는 “사람에 대해 논하는 것이 인생론이다. 철학자들이 인생을 많이 논했다. 인생론의 관심사는 사람과 행복이다. 사람은 무엇이며 행복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가를 논하고 있다. 무엇이 잘사는 것인가에 대한 탐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사람의 인생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의 인생론도 있다”며 “예수님의 인생론에는 어디서 어디까지가 인생인지, 인생의 범위가 나온다. 이것은 철학자를 비롯한 사람들의 인생론과 가장 대비되는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인생을 논할 때 인생의 범위는 요람에서 무덤까지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인생론 범위는 어머니 태중에서부터 죽음 너머까지이다. 예수님은 인생을 논하시고 평가하실 때 이것을 전제로 논하셨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누구에게 대접할 때, 대접한 그 사람에게 갚음 받을 것을 기대하고 대접하지 말고 하나님이 갚아주실 것을 기대하고 대접하라는 의미로 예수님이 교훈하신 적이 있다”며 “그때 예수님은 대접받은 것을 갚을 수 없는 사람들을 대접하는 것이 복이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라.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눅14:14)고 하셨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이다. 예수님은 별도로의 부가 설명 없이 자연스럽게 부활시를 인생의 한 부분에 넣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또 “예수님은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평가할 때 역시 인생의 길이를 태중에서부터 죽음 너머까지로 삼으셨다. 예수님이 한 부자와 거지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다. 부자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며 살았다. 나사로라 이름 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연명했다. 두 사람 다 죽었다. 사람이 쓰는 인생론은 여기까지를 기준으로 이 두 사람의 성공 여부를 평가한다”며 “누가 행복한 사람이고 누가 불행한 사람인지 판단하고 평가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경우는 달랐다. 죽은 후의 삶도 두 사람의 인생”이라고 했다.
그는 “이 두 사람의 경우 인생에 대해 평가 기간을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한정하면 부자가 성공한 사람이다. 그는 잘산 사람이다. 그러나 평가 기간에 예수님의 인생론처럼 죽음 후까지 넣으면 평가는 달라진다”며 “이 땅에서 사는 100년 남짓한 삶의 길이와 죽음 후에 우리가 살아야 하는 삶의 길이는 비교가 안 되게 죽음 후가 길다. 죽음 후 우리가 여전히 살아야 할 인생의 길이는 천년만년 정도가 아니다. 영원하다. 죽음 후의 인생 길이와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인생 길이를 비교해 성경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시103:15)고 묘사했다”고 했다.
이어 “사람의 인생론과 예수님의 인생론은 다르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인생론을 나의 인생론으로 받아들인 사람”이라며 “인생, 길게 봐야 한다. 멀리 봐야 한다. 길게 보고 멀리 보고 성공과 실패를 평가해야 한다. 인생의 어느 한순간을 기준으로 성공과 실패를 단정하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다. 예수님의 인생론에 근거하면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100년 남짓한 삶은 인생의 어느 한순간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인생론에 입각해 자신의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팽을 평가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분명하게 할 수 있는 말이 있다. 죽음 후의 삶을 천국에서 이어갈 사람은 복 받은 사람이다. 예수 믿는 사람은 잘 사는 사람”이라며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이 보다 더 잘한 일은 없다. 이미 그렇게 했다면, 인생 잘 살았다. 잘 살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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