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1. 대표기도
소모임 대표기도 때마다 긴장하고 떨었습니다. 최근에야 감사하게도 하나님이 아닌 사람을 의식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모태신앙인 다른 분들은 기도를 막힘없이 잘하시던데 저 같은 경우 의식적으로 하나님께만 집중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건가요?
답변 1:
우선 “의식적으로 하나님께만 집중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히 정답입니다. 이왕에 질문을 주셨으니까 기도할 때 떨리는 몇 가지 다른 이유들도 말씀드리겠습니다.
남들 앞에 서거나 발표할 때 울렁증이 생기는 본인의 기질 성격 탓일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기도의 내용이 부적절하고 은혜롭지 못하면 어쩌나 싶은 걱정 때문이기도 한데 남을 의식하지 않았다면 자신의 믿음에 대한 자신감이 없는 것입니다. 심지어 기도할 때 떨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 자체 때문에 더 떨리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남을 의식하기 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의식하기 때문에 떨리는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기도를 술술 잘 하시는 분은 그 반대로 보시면 됩니다. 성격이 담대하거나 다른 사람에 비해 내용이 그리 은혜롭지 못해도 자기 소신껏 기도하겠다는 담대한 마음을 먹었거나, 기도하는데 떨리면 어떡하지라는 걱정 자체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요컨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전혀 의식하지 않은 것입니다.
대표기도의 경우는 처음에는 기도문을 미리 써서 보면서 읽거나 완전히 외워서 하는 편이 좋습니다. 대표기도는 말 그대로 그 모임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의 심정을 대변하면서 또 그 모임에 은혜가 넘치게 해달라는 간구입니다. 모임의 성격과 현재 상황과 각 구성원들의 처지를 계속 생각하면서 기도문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렇게 미리 작문해보는 과정 자체가 기도입니다.
기도문을 보고 읽거나 외워서 하다보면 훨씬 덜 떨립니다. 그렇게 여러 번 훈련하여서 익숙해지면 나중에는 원고 없이도 거의 떨지 않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천재가 없듯이 기도의 전문가도 처음부터 없습니다. 기도를 가장 많이 하는 자가 가장 잘할 수 있습니다. 평소에 분명하고도 구체적인 문장으로 입술로 소리 내어서 (남이 안 들리게 중얼거리는 소리로라도)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셔야 합니다.
사실은 떨리는 기도를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잘못된 것입니다. 성령에 충만하면 자신도 모르게 떨리는 음성이 될 수도 있고 조금 떨리는 기도가 더 마음에 울림을 줄 수 있습니다. 은혜로운 기도가 되는 여부는 진실하고 순전한 믿음에 바탕을 두었는지에 달렸습니다.
가장 좋은 기도는 자신도, 남도, 심지어 하나님도 의식하지 않는 기도입니다. 기도자가 생각할 때에 꼭 아뢰어야 할 것과 아뢰고 싶은 것들 모두를 있는 그대로 속 시원하게 하나님께 다 털어놓으시면 됩니다. 거짓, 과장, 강제, 아부, 의심, 두 마음, 불신, 원망, 체면의식, 자기 의, 등이 전혀 개입되지 않으면 됩니다. 말씀하신 정답대로 하나님 앞에 일대일로 서서 자신의 진심을 진솔하게 말씀드리는 것이 기도입니다.
질문 2. 개인기도
2.1. 개인기도는 주로 하나님을 만나게, 알게 해달라는 영적인 것들로만 기도하게 됩니다. 육적인 것들은 기도하여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실 거라는 생각이 들게 되어 잘 구하지 않게 됩니다. 아이가 부모에게 이야기 하듯이 구구절절 기도하시는 분들을 보면, 제가 하나님을 친밀히 만나지 못해서 영적인 것만 구하는 게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듭니다.
답변 2.1:
개인적으로는 하나님을 만나고 알게 해달라는 영적인 기도만 한다고 하셨는데 불합리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알게 되는 것이 기도만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단순히 그런 기도의 응답으로 혹은 뭔가 초자연적인 모습으로 그분을 알아갈 수는 없습니다. 아주 드물게 그런 일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분의 영광을 잠시 맛본 것에 불과합니다. 성경의 진리를 깊이 깨달아서 실제로 현실의 삶에서 그 진리를 따라서 주님이 자기에게 맡겨주신 소명을 실현해야만 그분을 실제로 만나고 더 깊이 알아갈 수 있습니다.
육적인 것들을 기도하여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실 거라는 생각이 들게 되어 잘 구하지 않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우선 육적인 것들과 영적인 것들로 나누는 것부터 잘못된 생각입니다. 육적인 것을 구체적으로 무슨 뜻으로 말씀하셨는지는 모르지만 현실적인 필요라고 이해하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신자가 현실 세상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은 아주 영적인 일로 거룩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적인 일만 거룩하게 통치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역사는 오히려 신자더러 현실적인 일에서 영적으로 성숙되어지도록 주관하시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현실 삶에서 주님을 체험적으로 따라갈 때에 주님을 확실하게 알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현실의 일을 두고 기도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맘껏 사용하도록 허용하고도 당신의 뜻과 계획을 아무 차질 없이 이루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믿음이 좋은 신자라도 영적으로 연약하고 어리석기에 일이 진행되어 가는 동안에는 그분의 역사를 정확히 분별할 수 없습니다. 또 자신의 자유의지로 행하는 일들이 불완전하고 때로는 욕심과 죄악이 개입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기도하지 않고 즉, 하나님의 개입 간섭 없이 자기 의지대로 일을 진행시키면 그만한 교만 내지 우매함도 없습니다.
신자가 영적으로 거룩해지는 일만 기도하면 현실의 삶은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없이 진행됩니다. 육적인 것에서의 개선 발전 성장이 전혀 없습니다. 아니 하나님의 보호 인도가 없기 때문에 세상과 사람과 사탄의 훼방에 그대로 조종 농락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이야기 하듯이 구구절절 기도하는 것이 정말로 좋은 기도입니다. 그들이 현실의 형통만 바라서가 아니며 또 기도가 종교적 주문처럼 입에 붙어서 습관적으로 흘러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정말로 하나님을 아버지 같이 친밀하게 느끼고 실제로 그렇게 교제하는 것입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털어놓고 의논하지 못할 것이라곤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올바른 부모와 자식 사이가 아닙니다. 설령 아직 미성숙하기에 자식이 조금 잘못된 것을 구한다고 쳐도 부모에게 스스럼없이 요구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자식이 아닙니다. 부모는 언제나 자식의 편이며 무엇이든 자식의 유익을 위해서 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2.2. 저는 하나님께 간구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기도 중에 예수님께 간구하시는 분들도 종종 계셔서 무엇이 맞는 건지 헛갈립니다.
답변 2.2:
신약신자의 기도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대속 사역을 완성시킨 공로에 의해서 응답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는 자의 기도라야 응답해주십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에 대해서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라고 고백하자 주님은 그 믿음의 바탕에서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라고 약속해주셨습니다.(마16:19) 따라서 원칙적으로는 기도는 성부 하나님께 성령 하나님의 인도에 따라 성자 하나님의 이름으로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삼위일체 하나님은 그 속성 본질 권능 모든 면에서 동일하시고 위격만 다릅니다. 삼위일체에 대해 정확히 알고 믿는 신자가 자기도 모르게 예수님께 기도한다고 해서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질문 3. 중보기도
3.1. 직장문제나 건강문제 등 현실적인 문제의 해결을 위해 중보기도 요청하시는 분이 있으면 그분의 입장에서 애통해하는 마음보다는 육적인 것을 구한다는 거부감이 먼저 듭니다.
답변 3.1:
앞선 답변에서 언급했지만 육적인 기도가 영적인 기도에 비해서 열등하다는 인식 자체가 틀린 것입니다. 신자는 그 신분 소속 위치 자격 등은 세상에 속하지 않았지만 일생 동안 이 땅에서 불신자들과 동일한 상황과 모습으로 육적인 생활을 해야만 합니다. 그 생활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영적으로 승화시켜야 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러려면 모든 육적인 것이 당연히 또 반드시 기도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또 인생만사를 당신께서 주관 통치하십니다. 보잘 것 없고 연약한 육적인 것에도 그분의 거룩한 통치가 충만하신 은혜로 임해서 당신의 뜻대로 이끌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특별히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의 개인적인 욕심과 죄악이 개입될 소지가 전혀 없습니다. 설령 그 기도가 잘못되었다 해도 기도를 부탁한 자의 실수 내지 잘못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끼리 서로를 위해서 기도해주는 것을 아주 기뻐하십니다. 중보 기도의 요청을 받으면 결말이 날 때까지 성심성의껏 대신 내지 함께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주님의 긍휼과 권능이 필요치 않는 자는 단 한명도 없습니다. 지금 이웃이 얼마나 어려운 현실적 정신적 영적 난관에 봉착해 있는지 알아볼 생각도 않는다면 같은 교회 성도로서 자격이 없습니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잘 살펴보면 얼마나 불쌍하고 고달픈지 모릅니다. 평소부터 그런 친밀한 교제를 유지하고 있다면 그분이 중보기도 요청하기도 전에 먼저 기도해주고 있어야 온전한 성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3.2.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질 일들을 왜 기도하라고 하셨을까라는 오랜 의문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게 함으로써 그 사람에게 하나님을 증거하시고 은혜를 주시기 위함이 맞나요?
답변 3.2:
모든 신앙상의 문제는 특별히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발단되는 것들은 그분을 육신의 아버지라고 가정해서 추적해보면 쉽게 풀 수 있습니다. 부모는 어린 자식이 지금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갖고 싶어 하는지 훤히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자식이 요청도 하지 않는데 미리 다 알아서 사주지 않습니다. 그런 부모는 자식을 망치는 것이며 잠언 말씀대로 초달하지 않는 부모는 자식을 미워하는 꼴입니다.
부모는 자식이 구체적으로 그것을 요구하면서 납득할 만한 정당한 사유를 본인의 입으로 말하기를 기다립니다. 자식더러 현재 자기가 당면한 문제가 무엇이며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이며 그것이 과연 최선의 방책인지 스스로 잘 따져보라는 뜻입니다. 왜 그것을 요구하는지 과연 그것이 지금 꼭 필요한 것인지 정확한 문장으로 진술할 수 있다면 문제의 본질을 거의 파악하고서 부모에게 대신 해결해 달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자식은 그만큼 자라는 것입니다.
자식에게 자의식이 생기기 전까지는 부모더러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만도 귀여워서 자꾸 말을 시키려고 합니다. 자식과 친밀하게 교제하는 것이 너무 좋기 때문입니다. 청소년기에는 자식이 분명한 문장으로 나름의 이유를 대며 요청해도 때로 아무 말도 않고 전혀 들어주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식이 말하는 내용이 잘못되었거나 아직 때가 아니라고 부모는 더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반대로 그 내용이 올바르고 그 또래로선 생각도 못할 만큼 뛰어나다면 자식이 요구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을 사줄 수도 있습니다. 나아가 자식의 요구를 들어보고는 부모가 그 상황에 가장 합당한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자식더러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거꾸로 요구 내지 명령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첫째 신자와 교제하기 위해서, 둘째는 신자의 거룩한 성장을 위해서, 셋째는 당신의 뜻대로 이끌어가기 위해서, 넷째는 신자는 예상치도 못한 당신의 큰 영광에 참여시키기 위해서 등등의 이유로 신자가 무엇이 필요한지 다 아시면서도 기도하길 요구합니다.
따라서 기도를 하지 않으면 당신은 침묵 외면하면서 신자에게 베푸실 은혜와 권능을 유보해 놓고 계십니다. 아주 위급해서 생명이 날아갈 처지가 아니면 먼저 움직이지 않습니다. 만약 신자가 무엇이 필요한지 다 아시므로 기도하지 않아도 다 채워준다고 가정해보십시오. 대부분의 신자는 로토 당첨 같은 현실의 큰 축복만 바라기에 하나님이 응해줄 리도 없습니다.
역으로 말해 신자의 요구와 하나님의 뜻이 일치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에 기도를 통해서 조정 변경 시켜서 당신의 뜻에 순종시키려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또 뒤집으면 신자가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손을 놓고 계시고 신자 혼자 자신의 탐욕과 교만과 어리석은 판단에 따라서 행동하기에 매사 실패로 끝난다는 뜻이 됩니다. 많은 신자들이 그렇게 평소에는 기도에 손을 놓고 있으니까 고난이 생겨야 겨우 어서 빨리 구해달라는 기도밖에 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세 가지 질문에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자신을 위해 영적인 것만 기도하려면 솔직히 기도할 내용이 거의 없습니다. 저를 비롯해 우리 모두는 영적으로 너무나 미숙합니다. 그리고 신자라면 누구나 반드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영적인 기도는 자신의 죄를 하나 숨김없이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토설하며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 죄는 육적인 세상에서 다 짓게 된 것입니다. 마음으로 짓는 죄도 있겠지만 그것도 실은 육적인 것을 대상 내지 바탕으로 지은 죄입니다. 영적인 기도 자체가 현실의 육적인 것과 완전히 초월한 백 퍼센트 순전한 영적 기도는 거의 없다는 뜻입니다.
영적인 기도만 한다면 정작 기도의 은혜롭고도 권능이 넘치는 의미와 가치를 누리지 못합니다. 신자는 영적이든 육적이든 구분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당면한 문제와 고난은 물론 현재 하고 있는 일과 미래의 일들 모두를 부모님께 의논하듯이 하나님께 구구절절 아뢰어야 합니다. 기도는 신자의 신앙생활의 호흡으로 말씀과 함께 그분과의 교제와 동행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방안입니다. 기도에 대해서 더 말씀드릴 내용이 많지만 제 지난 글들을 참조하십시오. 지금은 일단 육적인 것이라도 아니 그것부터 쉬지 말고 기도해보시길 간곡히 권해드립니다. 그러다보면 기도에 대한 살아있는 지식과 성찰을질문자님 스스로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2020/10/20
* 이 글은 미국 남침례교단 소속 박진호 목사(멤피스커비우즈한인교회 담임)가 그의 웹페이지(www.whyjesusonly.com)에 올린 것을 필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입니다. 맨 아래 숫자는 글이 박 목사의 웹페이지에 공개된 날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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