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구 교수(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한국복음주의신학회 회장/조직신학)가 최근 TGC 코리아 복음연합 홈페이지에 ‘섭리 아래 사는 성도들의 올바른 태도’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이 교수는 “온 세상이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소위 믿는다는 많은 사람들은 그 정확한 함의를 다 생각하지 않고 섭리에 대해서 말하기 쉽다”고 했다.
이어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는 대표적인 것으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으니 하나님이 죄를 만든 분이라고 단선적으로 생각하며 말하는 일을 들 수 있다”며 “그런 사람들은 흔히 하나님이 ‘죄의 조성자이다’(the author of sin)라고 표현한다.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자신은 하나님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하나님은 죄를 비롯해 모든 것을 다 만드신 분임을 강조해야만 하나님의 주권을 분명히 할 수 있다고 하면서 거의 결정론이나 운명론과 비슷한 입장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외국에도 있고 우리나라에도 있어서 항상 사람들을 많이 오도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그야말로 잘못된 태도를 지닌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방향으로 가든지(즉, 불신의 모습으로 가든지, 결정론적 입장에로 가든지), 이런 생각은 생각이 너무 단선적”이라며 “이런 입장을 가지는 분들은 타락도 결국은 인간을 구원하는 선한 결과를 낳았으니 그것이 적극적 의미를 지닌 것이라고 하면서 타락이 결과적으로 좋은 것이었다는 함의를 전하려고 한다. 소위 ‘하이퍼 칼빈주의자’(Hyper-Calvinism)들이 여기에 속한다(코넬리우스 반틸, 2007, 98~103쪽)”고 했다.
또 “섭리에 대해서 생각할 때 잘못 생각하는 또 다른 예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우리들이 다 설명할 수 있다는 태도를 가지면서 말하는 것이다. 나름대로 소위 ‘모든 것에 대한 이론’을 만들 수 있고 그것을 가지고 이 세상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입장은 결국 이상한 결론을 내는 경우가 많다”며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면서 하나님께서 스스로 어떤 것은 알지 않기로 하셨고, 결정하신 것이 없다는 입장을 말하는 소위 ‘열려진 유신론’, ‘개방된 유신론’(Open Theism)도 이런 문제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우리 이웃의 신학들, 2014, 141~151쪽)”고 했다.
그는 “바른 태도는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옳으시다’는 것을 참으로 믿고 그것을 모든 정황에 적용하는 것”이라며 “그러나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의 악한 일들과 도덕적인 악인 죄가 발생하는 그 모든 것을 다 옳다고 하거나 그 모든 일이 어떻게 설명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님을 잘 파악해야 한다. 그저 우리들은 구체적인 정황은 잘 모르지만, 이 모든 과정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모든 뜻을 다 온전히 이루시고야 만다는 것을 믿고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런 태도는 결국 우리가 호기심을 가지고 모든 것을 다 탐구하여 모든 설명을 다 할 수 있다는 입장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대로 바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무모한 호기심을 가지고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을 넘어서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바를 탐구하려고 하지 않는다”며 “이것은 먼저 이 세상에서는 우리가 가히 파악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고 우리의 생각의 한계, 정당한 이성의 작용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며, 둘째, 하나님께서 파악하라고 한 것까지만 우리가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셋째, 그것을 넘어서는 것에 대해서는 그저 하나님께 맡기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참으로 믿는 것이다. 이럴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생각하는 기능인 이성이 제대로 기능하는 것의 한 측면이 드러난다”고 했다.
또 “이것은 이성의 한계를 분명히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칸트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생각한 ‘이성 비판’, 즉 ‘이성의 한계를 분명히 함’ 이상의 함의를 지니는 것”이라며 “이런 칸트주의자들은 이성의 한계 내에서는 마치 이성이 주권자이며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처럼 하여서 그 한계 내에서는 겸손하지 않게 한 것이다. 그리하여 칸트는 종교도 이성의 한계 내에서의 종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결과 구속 종교를 피하려고 하면서 그저 도덕 종교로 기독교를 변용시키고 말았다”고 했다.
그러나 “제대로 하면 오히려 이성이 신앙의 한계 내에서 작용해야 한다. 이성이 제대로 작용할 때 드러나는 또 다른 측면은 이성이 하나님의 계시를 잘 정리하는 도구 역할을 제대로 하는 이성의 도구적 사용이라고 할 수 있다(Cornelius Van Til, ‘개혁주의 조직신학 서론’ 1995)”며 “이 두 측면이 ‘신앙하는 이성’, 소위 ‘중생한 이성’의 모습을 잘 드러내는 것이다. 이런 입장이야말로 섭리에 대해 바르게 생각하며 살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 가운데서 계시하신 것만을 배우고, 그 한계를 넘어 가지 않는 것이다. 즉, 우리에게 감취어진 것들이 있음을 인정하고, 겸손과 존숭의 태도로 하나님의 공정한 판단을 높이고 찬송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우리에게 코로나19 같은 상황에서 하나님께 대하여 조금이라도 불평이 있다면 우리들은 바르게 생각하며 느끼고 사는 것, 즉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며 “그렇게 하는 것은 오히려 이 세상을 따라 가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이 모든 사태를 스스로 다 설명할 수 있다고 오만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겸손하게 그리스도로부터 배우려는 사람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이어 “지금과 같은 복잡한 상황의 한 가운데서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하나님에게서만 해결책을 찾으려고 하며, 우리에게 해결의 열쇠가 없음을 분명하게 선언하고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한다”며 “이 사태는 타락한 우리의 삶은 그 자체로는 그야 말로 ‘출구가 없음’(no exit!)을 잘 드러내어 보여 주는 대표적인 예가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타락한 우리의 삶 자체는 그야말로 닫힌 세계(closed world)일 뿐이다. 오직 하나님에게만 이 세상이 문제를 해결하고 열려질 가능성이 있다”며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수 없어도 하나님은 이런 죄와 악들의 생성자가 아니시며 이런 죄와 악들을 조성하신 분이 아니시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 통제 하에 있음은 분명하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악들을 선으로 변하게 하시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 하나님을 믿으면서 생각도 겸손하게 하고, 살 때도 참으로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존해 사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며, 그것만이 우리의 살 길”이라고 했다.
아울러 “진정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만이 코로나19 상황에서도 가장 바르게 나아가는 우리의 유일한 길”이라며 “다른 길은 없다(No other way!). 구원 문제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고, 모든 문제에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참으로 그를 그의 의도대로 따라가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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