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폐지 반대를 위해서 국회 앞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여자 분의 글을 보게 됐다.
“부리나케 피켓을 만들어 퇴근시간 국회로 갔다. 맞은편에서 동물보호를 요구하는 여러 사람들 옆에서 우리 피켓을 들고 있는 동역자의 모습을 보니 기가 막혔다. 동물보호법은 있는데, 태아보호법은 없다. 본래 낙태법이 태아를 보호하는 법인데, 이게 폐지되면 태아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는 없어진다. 강아지보다 못한 처지가 될 뱃속 아기들… 진짜 이건 아니다.”
이 글을 읽고 마음이 먹먹해졌다. 마치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이었다. 한 참을 생각했다. “강아지(개)보다 못한 처지가 될 뱃속 아기들….” 이 글을 읽을 때 머리에 떠오르는 뉴스가 있었다.
올해 8월, 물 폭탄으로 경기도 이천의 주택들이 무너졌다. 주민들이 복구 활동을 하다가 개 한 마리가 땅을 파면서 울부짖는 것을 목격했다. 거칠고 두꺼운 건물 잔해로 인해, 개가 땅을 제대로 파지 못하고 울부짖는 애처로운 행동을 본 주민들이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구호활동을 멈추고 그 개가 파던 땅을 팠더니 땅 속에서 강아지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그 속에서 강아지들을 발견하여 구출했다는 뉴스.
이 뉴스가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어미 개의 모정어린 행동에 감동을 받았다. 그 어미 개의 아름다운 모정은 TV와 신문 등을 통해서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이 사건으로 인해 개들의 반려 동물로서의 지위는 더욱 더 확고해질 것이다.
그런데 개의 지위를 반려동물의 위치로 견고히 높이고, 개의 생명을 존중하는 것을 하나의 덕으로 생각하는 인간 사회가, 정작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인간 태아(뱃속 아기)의 생명을 개(강아지) 만큼도 존중하지 않는 현실에 충격을 받는다.
이 시대는 인간의 태아(뱃속 아기)를 개만도 못한 신세로 만들고 있다. 인간의 뱃속에 있는 태아는 땅 속에 있는 개(강아지)만도 못한가? 땅 속 깊은 곳에 있는 강아지를 구해내려고 애쓴 어미 개의 행동에 감동을 받고 찬사를 보내면서, 한 뼘도 안 되는 인간의 배 속에 있는 태아를 죽이는 법을 만들겠다고 난리치는 사회라니. 그리고 태아를 살리기 위해서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는 것을 비난하는 사회라니.
더욱이 출산 저하로 인한 국가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출산을 장려하는 정부가 출산을 가로막고 태아(뱃속 아기)를 죽이는 입법을 추진한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당정청 ‘낙태죄 폐지’ 정부입법으로 추진한다. 秋법무, 시민단체 만나 정부입법 약속”(서울신문)」
「“복지부, 낙태죄 의견수렴 부실 비판에도 ‘졸속 간담회’”(한겨레)」
더욱 괴상한 것은 흉악한 살인범을 죽이는 사형제를 반대하는 국가인권위원회를 비롯한 인권주의자들이 태아를 죽이는 것을 금지하는 낙태죄를 폐지하는 것을 환영한다는 것이다.
「‘헌재, 낙태죄 폐지 결정…인권위 ”환영” 종교계 “유감”’ (서울신문)」
「정의당 ‘낙태죄 전면폐지 3대 법안’ 당론 발의··· “낙태가 죄라면 범인은 국가” (경향신문)」
인간을 죽이는 것을 금지하자고 주장하면서, 인간 뱃속 아기를 죽이는 것은 찬성하고 환영한다는 이런 모순되고 비정상적인 주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당황스럽다.
사형법을 폐지하자고 하면서 태아 사형법을 만들자고 하는 것이 인권의 실체이고 정의란 말인가?
개의 새끼인 강아지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인간사회라면, 인간의 아기인 태아의 생명은 더욱 더 소중히 여겨야 한다. 흉악한 살인범의 생명도 소중히 여기고 살인범을 죽이는 사형제를 폐지하자고 주장한다면, 죄 없는 인간 뱃속에 있는 아기의 생명은 더 소중히 여기고 뱃속 아기를 죽이는 법안을 만드는 것을 반대해야 한다. 이런 사고 구조가 정상적인 사고 아닌가?
땅 속에 있는 강아지를 포기하지 않는 어미 개는 찬사를 받는데, 뱃속에 있는 태아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은 비판을 받는 것이 정상적인 사회일까? 그렇다고 우리나라의 국민들이 모두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부 편협한 인권주의자들, 동물과 사람의 가치에 대해 혼돈하고, 흉악한 죄를 지은 범죄자보다 죄 없는 인간 뱃속의 아기의 인권을 하찮게 여기는 비정상적인 인권주의자들의 능수능란한 선동질이 사회를 왜곡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태아를 죽이자고 주장하는 분들도 한 번 생각해보라. 그대들도 엄마 뱃속에 있었던 때가 있었지 않았는가? 그리고 어쩌면, 당신들 중에는, 당신들이 엄마 뱃속에 있었을 때 누군가 당신들을 낙태시키려고 했었지만 그 낙태를 반대하는 분들이 있었기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경우는 없었을까?
오늘날 이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에 서서 세상을 위해 공헌하는 분들 중에는 누군가의 낙태 만류로 세상에 태어난 분들임을 기억하라. 낙태주의자들이 죽이려고 하는 엄마 뱃속에 있는 아기들 중에도 미래를 위해 공헌할 위대한 아기들이 있음을 인정하자.
죄가 있다면 자신의 즐거움을 절제하지 못한 남자 또는 여자다. 그리고 흉악범이다. 태아는 죄가 없다. 흉악범 때문에 또는 절제하지 못한 인간 때문에 뱃속의 아기를 죽이는 것이 인권이고 정의인가?
희대의 연쇄 살인범이 잡힌 후에 죄 없는 억울한 사람이 대신 불행한 삶을 살았음이 밝혀졌다. 비난을 피하기 위해 또는 공적을 쌓기 위해서 억울한 사람을 처벌하는 사회는 불행할 수밖에 없다. 부디, 죄 없는 엄마 뱃속의 아기를 죽이지 말라. 처벌하려면 뱃속에 태아를 만든 죄인을 처벌하라.
“강아지보다 못한 처지가 될 뱃속 아기들…” 이 말이 나를 계속 괴롭힌다. 뱃속 아기들이 강아지만도 못한 신세가 된다면, 그 뱃속 아기들의 잘못이 아니라 뱃속 아기를 죽이려는 인간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개 어미는 자신의 행동과 상관없는 자연현상에 의해서 땅속에 갇힌 새끼 강아지를 구하기 위해서 울부짖고 발바닥에서 피가 나도록 땅을 파는데, 인간은 인간에 의해서 탄생한 뱃속의 아기를 죽이려고 인권과 국가법을 동원한다. 아! 인간이여! 정말 생명을 존중하고 구하려는 노력에 있어서 개만도 못한 존재가 되려는가?
태아를 살리기 위해서 헌신하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거룩한 사역이 승리하기를 위로와 평안이 함께 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김영태 목사(참빛순복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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