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추석 연휴 ‘대한민국 어게인’이라는 제하의 나훈아 콘서트가 시청률 29%를 기록하며 ‘나훈아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콘서트는 여러 가지 면에서 특별함을 보여주었다.
거대한 스케일에 깨알 같은 디테일을 채우는 게 나훈아 공연의 핵심이었다. 직접 북을 치며 ‘잡초’를 부르는 무대나 와이어를 타고 공중에 매달리는 퍼포먼스까지 모두 나훈아씨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한다.
[2] 그는 ‘관객이 숨 쉴 틈을 주면 안 된다, 눈을 못 돌리게 해야 한다. 2시간 40분 공연을 2분 40초처럼 느끼게 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세 시간 가까운 방송 시간 동안 중간 광고가 단 한 번도 없었던 점이 특이했다. 무대에서 옷 갈아입는 장면까지 공연의 일부로 구현한 건 그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의 신곡 ‘테스형!’은 나훈아 신드롬의 절정으로 평가되고 있다. 왜 ‘테스형’인가? ‘테스형’이 무슨 뜻인가?
[3] 어째서 ‘테스형’이란 말에 사람들이 열광했을까를 생각해보았다. 우선 ‘소크라테스’라 하면 단어가 길지만 ‘테스’라 하면 우리식의 익숙한 두 글자 이름이기에 우리나라 시청자들에게 어필되기 쉬웠을 것이다. 무엇보다 소크라테스를 가리켜 ‘형’, ‘테스형’이라 한 점이 특이하고 신선하게 느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 가사 속에 소크라테스가 즐겨 활용했던 문답법식의 철학적 질문이 등장하기 때문에 돋보였으리라 본다.
[4] ‘노래는 잘하지만 머리는 좋지 않은 딴따라’라는 대중의 고정관념을 확 깨버린 수준 높은 철학자 나훈아의 모습을 새롭게 각인시켜 주었다. 가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의미가 심장한 질문들이 이어진다.
“아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 왜 이렇게 힘들어.
아 테스 형 소크라테스형 / 사랑은 또 왜 이래...“
[5] 그러다가 2절 부분에서 기막힌 대목이 등장한다.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 세월은 또 왜 저
먼저 가본 저 세상 어떤가요 테스형
가보니까 천국은 있던가요 테스형
아 테스형 아 테스형 / 아 테스형 아 테스형”
[6] ‘먼저 가본 저 세상 어떤가요? 가보니까 천국은 있던가요?’ 크리스찬이라면 누구나가 다 자막으로 나온 이 가사의 내용에 눈길이 갔을 거라 생각한다. 그뿐이 아니다. <내게 애인이 생겼어요>라는 노래 속에 이런 가사의 내용이 나온다.
“내게 애인이 생겼어요 내가 사랑에 빠졌어요 자랑하고 싶다구
난생 처음으로 향수도 뿌리고 핑크색 셔츠로 멋도 부리구요
교회도 가려구요 왜냐면 그녀가 기도하는 모습을 봤거든요...”
[7] “교회도 가려구요 왜냐면 사랑에 빠진 애인이 기도하는 모습을 봤거든요.”
사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나훈아씨를 불신자로 알고 있다. 하지만 위에 소개한 가사의 내용에 기독교적 냄새가 물씬 풍겨남을 확인할 수 있다.
오늘 페친을 통해 안 바이지만, 그도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이란 얘기를 처음 들었다. 인터넷으로 확인해보니, 1982년 2월 23일자 중앙일보에 그에 관한 짧은 내용이 소개되어 있었다.
[8] “배우 김지미씨는 지금까지 수덕사를 시주절로 정하고 매달 불공을 드리러 다닐 만큼 독실한 불교신도였으나, 가수 나훈아군의 간곡한 권유에 따라 지난달 초부터 성당에 함께 나가고 있다.”고 말이다.
그럼 성당이 언급되어야 하건만, 교회서 기도하는 여인의 모습이 가사 속에 언급되고 있는 것은 어찌 된 건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9] 그 사이에 성당에서 교회로 옮겨 기독교인이 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윤형주 장로와 같이 무대에 섰던 김세환씨로부터 나훈아씨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얘기를 페친이 직접 들었다고 전해줬다. 어쨌든 천국이 정말 존재하는지에 관해서 소크라테스에게 묻는 내용이나, 교회에서 기도하는 소녀와 사랑에 빠졌다는 내용을 통해서 분명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지 않았나 짐작해본다.
[10] 우리는 지금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무엇보다 코로나19로 인해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 국민들과의 소통과 공감을 위해 74세란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줬던 나훈아씨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그동안 나는 남진만 좋아했지 솔직히 나훈아는 별로였다. 왠지 모르게 까다롭고 괴팍하고 막무가내 고집불통처럼 느껴져서 아주 비호감이었다.
[11] 하지만 이젠 열정의 사나이, 국민과 소통하는 사나이, 소신의 사나이 나훈아씨가 난 참 좋다. 은둔주의와 신비주의의 탈을 벗고 15년 만에 국민 앞에 서서 74세란 나이가 무색하리만치 열정적이고 감동적인 콘서트를 선물해 준 나훈아씨가 다시 한 번 고맙게 생각된다. 그가 원했던 바대로, 2시간 40분의 콘서트가 2분 40초로 짧게 느껴질 만큼 박진감 넘치는 열기 속으로 시청자들을 몰아넣었다.
[12] 무엇보다 가사 중간에 나온 기독교적 질문과 사랑고백은 큰 감동을 던져주었다.
물론 소크라테스에게 던진 질문으로만 끝낸 것에 대한 아쉬움을 지적하면서 그가 신앙적 삶으로 회심하길 바란다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나훈아씨는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세월은 또 왜 저래?’ 물어봤더니 테스형도 모른다고 하네요”라고 말해 관객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13] 소크라테스도 답을 얻지 못했다고 하는 그의 말에서 우리는 그가 전하고자 하는 숨은 메시지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선명한 정답만이 능사는 아니다. 부정적 대답에서 역설적인 해답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행간의 숨은 의미’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단 말이다.
‘돌아온 풍운아 가황 나훈아.’ 그가 진정 그리스도의 사람이 맞다면 우리는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귀 기울여야 한다.
[14] 혹 그가 신앙인이 아니라 해도 우리가 알아야 할 정답은 변함이 없다.
성경은 사람이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고(히 9:27), 그리스도의 신부들을 위해서 천국이 예비 되어 있다(계 19:7-8)고 말한다. 그 말씀이 진리이기 때문에 주의 말씀대로 이뤄짐을 확신한다.
나 훈아형에게 부탁이 하나 있다.
“더는 테스형에게 물어보지 말고 예수형에게 물어보오!”
신성욱 교수(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설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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