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는 몰랐습니다. 오로지 김일성 김정일이 신인줄 알고 삶을 바쳐 그들을 위해 헌신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을 알았으니 당신을 향해 남은 생애를 다 바치는 참된 딸이 되겠습니다”
지난 21일부터 23일까지(현지시간) 3일간 뉴욕 베이사이드에 위치한 낙원장로교회에서 열린 뉴욕전도협의회(회장 황영진 목사) 주최 탈북공훈배우 주순영 선교사 초청 뉴욕복음화 연합전도부흥성회는 철저한 김일성 부자의 신격화 앞에 억압받는 참혹한 북한동포들의 현실을 생생하게 전해듣는 시간으로 진행됐으며, 이러한 역경 가운데 주순영 선교사를 축복의 땅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위대한 손길을 찬양하는 시간이었다.
‘북녘땅 이야기: 눈물과 감동의 서사시’라는 주제로 이번 연합성회는 주순영 선교사의 간증이 3차례 시리즈로 나눠 전해졌다. 첫째 날은 ‘하나님께 드리는 시와 찬미’, 둘째 날은 ‘십일조로 만난 하나님’, 셋째 날은 ‘사막에서 울부짖는 여인들의 절규’로 진행됐다.
성회에는 날이 지날수록 더 많은 성도들이 참석해 연합성회에 대한 큰 관심을 드러냈다. 또 매 시간 성회에 앞서 김봉규 목사, CFC 찬양선교단, 뉴욕찬양마을 등의 찬양사역자와 사역팀들이 경배와 찬양으로 은혜로운 성회가 되도록 헌신했다.
이번 연합성회는 기존 성도들의 믿음을 굳게 하고 새로운 신자들을 전도하기 위해 개최된 것으로, 뉴욕전도협의회는 “예수님을 영접한 분들은 가까운 교회로 나가 등록하시고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란다”고 권면했다.
김정일의 생모 김정숙을 연기하는 공훈 1호 배우로써 화려한 삶을 살다가 북한을 탈출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거치며 4차례나 북송되는 죽음의 고비 끝에 자유의 땅을 방문한 주순영 선교사의 간증 또한 날이 갈수록 전해지는 메시지의 긴장감과 은혜가 더했다.
주순영 선교사는 이번 성회에서 결론적으로 지난 40여년 세월을 김일성 부자 앞에서 그들을 찬양하면서 모든 젊음을 다 바친 것이 후회스럽고 또 하나님께 죄송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뒤늦게 하나님을 알았고 극적인 순간마다 역사하신 하나님의 큰 능력을 체험한 것에 감사하다고 말하면서 “남은 인생을 오직 아버지만 찬양하는 참된 딸이 되리라 다짐했다”고 전했다.
북한에서 자주 불렀던 ‘반갑습니다’는 어느새 찬양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과거에는 김일성 부자를 찬양하는 동무들에 대한 반가움이었다면 이제는 예수님을 영접한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들에 대한 반가움을 표하기 위해 개사한 곡으로 ‘반갑습니다’를 부르고 있다. 3일 연합성회 기간 동안 불렀던 ‘반갑습니다’에 은혜가 더 했던 이유다.
주순영 선교사는 뉴욕을 방문하기 전 LA에서도 간증성회를 진행했다. 주순영 선교사의 비전은 북한의 어려운 이들을 돕고 세습정권 아래서 억압받는 북한 동포들에게 북한의 실태를 알리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풍선을 지속적으로 보내는 것이다. 뉴욕전도협의회는 이번 연합성회 기간 중 나온 헌금을 북한선교를 위해 전달하기도 했다.
생사 넘나들며 얻은 믿음, 이 세상 무엇보다 소중하다
주순영 선교사는 첫째날에 이어 둘째 날과 셋째 날 간증도 생생하게 이어나갔다. 특히 ‘십일조를 통해 만남 하나님’에 대한 간증은 비록 어린 초보 신앙이라해도 순수한 마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전해줬다.
주순영 선교사가 중국에서 투자자를 유치하기 위해 연변을 찾았다가 호텔에서 뜻하지 않은 공연으로 큰 돈을 벌게 됐고 호텔에서의 마지막날 공연은 십일조를 드리며 ‘백 배, 천 배, 만 배’까지 채워달라고 했던 기도와 같이 만 단위의 돈까지 벌리게 됐다. 총 3만6천 위안이 들어온 것이다. 이런 추세의 수입이라면 한 달이면 그 호텔을 인수할 정도의 거금이었다.
주순영 선교사는 마지막 공연 이후 차안에서, 또 호텔에서 십일조를 내야 한다는 음성을 들었다고 했다. 당시는 라디오 방송 혹은 호텔 방송인줄 알았던 그 음성은 성령의 음성이었던 것이다. 주순영 선교사는 중국에서의 마지막 날 그 음성을 듣고 난 이후 아까운 마음은 모두 잊은 채 십자가가 달린 아무 교회에 찾아가 십일조를 헌금함에 넣었다. 주순영 선교사는 하나님과의 십일조를 통한 만남도 이제 마지막이라고 생각됐고 크게 눈물이 났다고 했다. 북한으로 돌아갈 경우 하나님은 이제 잊은 채 오직 김일성 부자의 찬양을 위해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지막 십일조가 될 뻔한 헌금을 놔두고 북한으로 돌아가기 위해 차에 타는 순간 극적인 탈북이 이뤄졌다. 공연 중 한국 가요를 부른 적이 있는데 이것이 북한 보위부를 통해 북한으로 들어갔고 이대로 북으로 가면 두만강에 대기하는 체포조에 큰일을 당한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다. 그러한 극적인 탈북 과정에 또 성령의 음성이 들려왔다. 반드시 이 차를 타지 말고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주순영 선교사는 숨 막히는 북한 보위부의 추격을 따돌리고 중국 연변에 홀로 탈북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주순영 선교사는 조선족 호구(주민등록증)를 사고 성형수술까지 한 후에 식당을 인수하여 오픈하게 됐고 여기에서도 탈북자들을 거두어 그들에게 십일조를 가르쳤다. 그리고 조선족을 사서 매일 트럭에 지원물자를 가득 실어 북한에 보냈다. 그 과정의 특별한 체험도 몇차례 겪는데 다른 교회에서 신앙을 했다던 탈북여성이 십일조는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 매일 드리던 십일조를 하지 않았는데 그 다음날 바로 공안이 들이닥쳐 벌금으로 딱 십일조만큼의 금액을 물고 온 것이었다. 그렇게 주순영 선교사는 십일조가 통로가 되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게 된다.
주순영 선교사는 대한민국 대사관을 통하면 편히 한국 땅에 올 수 있었지만 그 함께한 탈북 여성들의 절박한 심정을 알기에 그들을 구하기 위해 몽골과 베트남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오려다 중국 공안에 네 번이나 체포됐고 그 중 두 차례는 북한 땅에 강제북송 돼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하게 된다. 그 과정 중에도 주순영 선교사에게 힘을 더해 준 것은 끊임없이 들려오는 ‘내가 너를 지켜주겠다’는 음성이었다.
주순영 선교사는 간증에서 “당시 중국 연변으로 나를 보내신 분은 하나님이시고 이것은 창세 전에 미리 예정해 두신 것”이라며 “하나님의 은혜로 자유의 땅에서 하나님을 마음껏 찬미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주순영 선교사는 입국 이후의 삶도 평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목숨이 위태로운 위기 가운데서 십일조 등을 통해 만난 생생한 하나님이었지만 한국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가게를 열어 장사에 온 신경을 쓰다 순수하고 간절했던 그 십일조 신앙을 그만 잊게 됐고 또 한번 큰 고난을 당하게 된다.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크게 뉘우치고 회개한 이후 주순영 선교사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만 헌신할 것을 다짐하고 누드모델 제의 등 큰 돈이 되는 사업의 유혹을 모두 뿌리 치고 선교사가 되기 위해 본격적으로 성경을 공부하고 간증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다. 주순영 선교사는 “생사의 기로에서 얻은 믿음이기에 하나님은 제 마음 깊이 각인됐다”며 “지금 이 순간 간증을 전하는 자로 세워주신 하나님께 무한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