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총회장 육순종 목사, 이하 기장)가 14일 오후 ‘5·18과 기장교회’라는 주제로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날 심포지엄은 유튜브 한국기독교장로회PROK 채널을 통해 실시간 방영됐다.
총회장 육순종 목사는 인사말에서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몇 가지 사건이 올해 특별한 주목을 받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40주기를 맞은 5·18광주민중항쟁”이라며 “어두운 시대를 뚫고 민주정신이 솟아난 이 사건으로 인해 한국 사회는 깨어나기 시작했고, 우리 교단은 역사적 책임과 사회선교의 사명을 새롭게 하는 계기를 맞았다. 이 행사를 통해 자랑스러웠던 기장의 정신과 역사를 되돌아보며 코로나 이후 시대에 더욱 중요해진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높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이어 광주노회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인 유옥주 목사의 사회로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김희헌 목사(향린교회, 평화공동체운동분부 집행위원장)가 ‘5·18민중항쟁과 기장교회의 참여’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김 목사는 “40주기를 맞은 5·18광주민중항쟁에 대한 오늘의 경험과 기억은 복합적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해석의 층이 두꺼워졌기 때문”이라며 “그간 5·18은 민주정신의 보루와 같은 것으로서 인권과 정의에 관한 정치적 감수성의 원천이었다. 폭압에 맞선 거족적 저항에서, 항쟁 기간의 연대와 평화를 토대로 한 절대적 공동체 구축에서, 자기 생명을 초월한 마지막 결단에서 5·18은 항구적 정당성을 얻었다. 따라서 실질적으로는 계엄군의 진압으로 민중항쟁이 종료되었음에도 그 물리적 패배는 정신적인 패배로 기억되지 않았다. 5·18은 승리로 기억되면서 진보적 시민운동을 이끌어왔고, 광주는 한국 민주주의 기지 역할을 해왔다”고 했다.
이어 “우리 교단의 활동과 역사에서도 5·18광주민중항쟁이 차지하는 의미는 중대하다. 당시 광주·전남지역의 많은 교회가 항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고 교단 차원에서도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여 후속 활동을 해왔으며 민중항쟁의 교훈을 따라 수많은 젊은 목회자들이 민중 선교를 꿈꾸며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5·18과 광주가 사회를 추동하는 가치를 제공하는 일에서 멀어지고 있다. 그 시작은 1995년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광주항쟁의 정신을 기억하고 계승하는 활동들이 공식화되어 국가적 행사가 되면서부터일 것”이라며 “5·18기념재단이 설립되고(1994) 광주 비엔날레가 창설되었으며(1995) 5·18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고(1997), 기념공원이 조성되었으며(1998), 새로운 묘역이 완공되어 마침내 국립묘지로 승격됨(2002년)에 따라 5·18은 점차 저항담론으로서의 기본성격을 잃어갔다. 당시 신군부에 의해 내란음모죄로 고난을 겪은 정치인이 대통령이 되었고 폭도로 매도된 이들이 국가 유공자가 된 상황에서 5·18이 갖는 사회적 의미는 간단치 않다”고 했다.
그는 “이를테면 5·18이라는 상징과 기능이 권력담론으로서 작동되는 현실의 한계를 피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말”이라며 “따라서 오늘 우리가 5·18민중항쟁을 논할 때 과거의 영웅적 저항담론을 반복하는 데 머물 수는 없다. 필요한 것은 세월이 흐르면서 입혀진 권력담론의 옷을 벗겨내고 5·18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를 분별하며 앞으로도 기능 가능한 진리담론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더불어 “5·18 신학을 시도하고 있는 기장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소위 ‘기장성’이라는 담론과 그 아류 담론으로서의 ‘한신성’은 과거에 많은 이들의 가슴을 뛰게 했지만, 그 기능을 잃은 지 오래”라며 “여전히 진리담론이 되기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오래 전부터 권력담론으로서 작동하며 후속세대의 외면을 받아왔다. 과거에 진보담론의 기표였던 기장성이 이제는 열매 없는 공회전을 거듭하며 허무주의를 유발하고 있다”고 했다.
김 목사는 “기장의 5·18 신학을 시도하는 이 심포지엄에서 고려해야 할 점은 5·18을 단지 기장 신학의 상징자본으로 추가시키는 방식을 피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신학을 5·18 기장 신학의 종속변수로 삼아서 5·18을 매개로 한 권력담론이 가동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라며 “물론 쉽지 않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려면 권력담론을 해체하는 진리담론의 재구축 가능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어떻게 가능할까”라고 물었다.
이어 “진리담론으로서의 5·18 신학은 단지 과거의 행위나 사건에 대한 열거일 수는 없다. 우리가 추구하는 5·18 신학은 역사적 사건과 행위의 의미를 찾아가며 그것들이 담고 있는 진실을 현재화함으로써 그 정신을 오늘의 삶에 다시 뿌리는 것”이라며 “즉 진리담론의 계승이 곧 권력담론으로 퇴화한 정신을 극복하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는 “5·18이 진리담론이 되는 것은 그 역사적 사건 자체에 오늘의 지리멸렬을 떨쳐낼 원초적 힘이 있기 때문”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5·18은 역사의 거울이자 화살이다. 마찬가지로 5·18 신학은 오늘 우리의 신앙적 무기력 또는 과잉 양면성에 대한 성찰이자 참회요 미래를 위한 상상력의 토대여야 한다. 역사가 되살아오는 것은 단지 기억으로 전승되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인 만남이다. 역사적 사실은 판단과 기억의 자료라기보다는 오늘의 실행을 가능케 하는 것”이라고 했다.
김 목사는 “생동하는 교회는 자신의 샘에서 솟아난 생수를 마셔야 한다. 기장교회에는 5·18의 경험이 그 신학적 샘물 가운데 하나이다. 5·18 민중항쟁과 교회의 투쟁 속에서 얻은 진리를 한빛교회를 담임한 故 윤기석 목사는 ‘광주민중항쟁은 5·18 한국교회의 나아갈 방향을 잡아주었고 일부 호화로운 목회에서 벗어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소외당하는 민중들의 삶의 자리에 파고들었고 바로 현장목회인 민중 목회 태동의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5·18의 정신과 항쟁에 참여한 신앙의 의미를 삶 속에서 구현해야 할 과제는 여전히 남아있다”고 했다.
더불어 “오늘날 사회의 절반을 차지하는 5·18 이후 세대의 사회역사의식은 다양하다. 이는 5·18정신이 관련자로 국한되지 않고 전 지구적 보편성을 갖도록 그 품을 넓혀야 함을 의미한다”며 “철학자 김상봉은 5·18의 세계사적 의미를 그 항쟁 공동체를 통해 새로운 나라의 이상이 열려 보였다는 점에서 찾는다. 다시 말해서 5·18은 이익의 공유에 기초한 국가적 결속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기 위해 자신을 초월함으로써 열린 공동체였기 때문에 보편적인 의미가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또 “광주의 항쟁공동체가 불과 열흘 만에 막을 내렸지만 그것을 통해서 참된 공동체를 위한 형성원리가 계시 되었다는 점에서 5·18은 패배로 기억되지 않고 승리로 기억된다”며 “그것이 5·18의 신학적 차원일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우리의 5·18 신학은 역사가 길러낸 샘물을 다시 마시고 예수 운동을 오늘에 되살리는 것이다. 그것은 끝없는 욕망과 소비의 마음에 먹잇감을 던져주는 종교가 되기를 거부하고, 율법과 교리로 인해 영혼의 날개가 부러진 종교로 남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피조물의 신음과 해산의 고통 에 참여하는 것”이라며 “신학은 5·18 눈앞의 비극을 소재로 삼아 절망과 혐오를 제작하는 종교의 낡은 습속을 멈추게 할 것이다. 대신 역사에 화육하는 그리스도의 얼굴을 드러내기 위해서 두터운 사랑과 아름다운 진리를 밀고 가는 믿음의 행진을 이끌 것”이라고 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