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면 하나님과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었다. 외할머니와 어머니를 통해 3대째 이어지는 하나님의 부르심, 그 사랑의 시간표였다. 지금 누가 나에게 ‘왜 사모가 되었냐?’고 묻는다면, 남편을 돕는 배필로 하나님이 부르셨다고 대답하겠다. 왜냐하면 그를 돕는 배필은 나 외에는 아무도 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니까 말이다.
임애린 - <슬기로운 사모생활>
사도들은 중생하라고 하거나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선포했다. 따라서 오늘날의 설교자들 또한 회개를 촉구하고, 그리스도와 그의 인격을 선포하며, 이미 성령을 받았으니 성령을 따라 살라는 선포를 해야 한다.
성령 충만은 물량적으로 계속 반복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내주해 계시는 성령의 지배와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삶이다. 이를 명심할 때 성령 충만의 능력과 열매 또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김규섭 - <성령에 답하다>
그리스도인들은 새로운 문화, 최소한 로마의 정의에 따른 새 ‘문화’?언어, 복장, 음식, 관습, 의례, 의식, 예술, 건축 등의 확연한 특징으로 나타나는?를 도입하지는 않았다. “그리스도인들은 나라나 언어, 관습 등에서 나머지 인류와 구별되지 않았다.” 그리스도인들은 ‘기독교’ 의상을 입거나, ‘기독교’ 상점에서 물건을 사거나, ‘기독교’ 언어를 사용하거나, ‘기독교’ 예배 장소를 짓지 않았다. 그런데도 기독교는 영향력을 미쳤다.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건물을 세우지 않고, 베드로의 표현대로 자신들이 ‘산 돌’(벧전 2:5)이 되려 했다. 이방 신전을 찾아 향을 피우지 않고, ‘그리스도의 향기’(고후 2:15)를 내뿜기를 소망했다. 로마인들과 달리 (최소한 이 초기만큼은) 하나님 형상을 그리지 않고, 삶의 방식으로 하나님 형상을 드러내려 애썼다(벧전 2:21).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의 범주를 초월하는 정체성을 형성했다. 다른 사람들과 공통점이 많은데도 여전히 달랐다. “이들은 자기 나라에서 외국인으로 산다. 시민으로서 모든 것을 공유하고, 외국인으로서 모든 것을 견딘다. 모든 외국 땅이 이들의 조국이지만, 모든 조국이 이들에게는 외국 땅이다.”
제럴드 싯처 - <회복력 있는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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