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교회 김병삼 목사가 30일 ‘화평하게 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하다’(마 5:9)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이 날 예배는 성도들이 화상회의 앱 ‘ZOOM’을 통해 온라인으로 예배에 참여했다.
김병삼 목사는 “우리의 삶은 화평을 경험하며 살거나 다툼을 경험하며 살거나인 것 같다. 영국의 사상가 존 러스킨이라고 하는 분은 산업혁명으로 영국이 힘들었던 때에 마태복음 20장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보면서 영국의 소망을 여기에서 보려고 했다”며 “주인은 모든 일꾼에게 사랑을 베풀기를 원했지만 일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일하는 것에 대한 공평한 대우를 받고 있지 못하다는 것 때문에 평화가 깨어졌다. 어떤 사람은 ‘요즘 사람은 불의한 것은 참아도 불이익당하는 것은 못 참는다’라고 말한다. 불이익이 당장 우리들에게 미친다면 우리는 참 힘들어한다. 고상한 척하면서도 불의한 일들에 대하여 침묵할 때가 많이 있다. 그래야 평화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생각하는 평화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 평화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했다.
이어 “요번 새롭게 정권이 바뀌면서 제일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공정, 공의, 평등’이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게 뭔가. 공의와 공정과 평등을 외쳐도 우리들 모두가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는 거다. 사람들은 자기의 편에서 정치적인 이야기를 한다면 진영의 논리에 서서 이것이 공의고 공정이고 평등이라고 생각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며 “그래서 존 러스킨이라는 사상가는 영국의 산업혁명 이후 공의가 깨어진 그 세상 가운데서 정의를 실현하는 것은 거기에 사랑이 더해져야 한다. 그래서 마태복음 20장의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있어야 된다고 이야기 한다”고 했다.
김 목사는 “저는 요즘 부쩍 이런 생각을 많이 한다. 내가 대한민국의 목사로 살아가는 동안 우리 교회와 목회자가 해야 될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가 정부와 세상과 이 모든 것들을 바라보며 말씀을 가지고 우리들이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때로는 우리들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면 올바른 판단. 말씀에 서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된다라고 하는 이 말도 우리가 가진 정의의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이 우리들에게 명령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될 거 같다”며 “유진 피터슨은 메시지 성경에서 오늘 본문에 대해 화평케 하는 자를 협력하는 자로 표현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고 복 있는 자로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이 세상 가운데서 우리들이 어떻게 말씀을 붙잡고 복 있는 자로 살아갈 것인가 여기에 대한 고민이 우리들에게 있어야 된다. 우리들은 세상 한가운데서 가로막힌 벽을 허무는 사람이 되어 버렸는가 아니면 벽을 세우는 사람이 되었는가. 오늘 교회가 우리 신앙인들이 하나님의 뜻 말씀 안에서 우리들이 화평케 하는 자가 되었는지에 대해 분명히 물어야 될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저는 벽을 세우는 가장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우리들이 너무 쉽게 이분법적인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성경 속에 나타난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 예수님은 이분법적이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어느 편도 아니셨다. 예수님은 어떤 진영의 논리에 갇혔던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 곳에 언제든지 하나님의 마음이 갈 수 있도록 예수님은 선을 넘는 분이셨다”며 “교회가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담을 쌓고 있는 것 같다. 벽을 쌓는 일과 허무는 일 거기에는 어떤 우리의 태도가 필요한가. 내가 옳습니다라고 이야기할 때마다 벽은 하나씩 쌓아질지 모른다. 우리가 우리의 옳음을 주장하는 것보다 우리가 해야 되는 일은 담을 허무는 일이 무엇인지를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 가운데서 보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옳음을 꺾을 수 있는 것이 용기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 세상을 향하여 우리들이 해야 될 일이 무엇인지를 우리들이 고민해야 된다”고 했다.
김 목사는 “경쟁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는 이유는 이기려는 마음. 저 사람보다 내가 더 잘됐으면 좋겠다는 마음 때문이다. 그럼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말씀대로 살아가는 게 얼마나 바보 같다. 경쟁력 없는 이 바보같은 크리스천들을 향해서 하나님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이 믿음이 없으면 어떻게 우리들이 말씀대로 복 있는 자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물으며 “화평케 하는 것은 우리들에게 그냥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 들어 왔을 때 우리들이 어떻게 화평케 하는 자로 살아야 되는 이유가 우리들에게 있느냐는 것이다. 오늘 저 사람과 네가 화평케 하기 위해 내가 어떻게 협력하고 내가 어떻게 함께할 것인가. 언젠가 제게 딱 와닿았던 말씀이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나타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말씀하시고 내해를 먹이라고 3번 말씀하실 때, 그 양들은 똑같은 양이 아니라 다른 양이다. 어린양, 나이 먹은 양, 젊은 양, 깨끗한 양 등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 맡겨주신 양이다. 여러분들이 살아가는 신앙의 공동체, 우리들이 살아가는 사회의 공동체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할 때 화평케 하는 자가 된다고 하는 것은 우리들에게 굉장히 무겁게 들리는 명령이기도 하다. 하나님이 말하는 화평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화평보다 더 깊은 단계”라고 했다.
이어 “세상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평화는 무엇이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평화는 무엇일까. 그것을 p1, p2라고 하는 개념으로 설명을 해보려 한다. 보통사람들이 생각하는 평화(p1)는 문제가 없으면 된다. 아마 이 코로나19가 우리들에게 너무나 적절한 예를 설명해 주고 있는 것 같다. 지금 몇 달째 다 미디어로 예배드리고 있는데, 사람들이 처음에는 예배를 못드리고 언제 같이 드릴까 하더니 이제는 미디어가 좋고 익숙해 져서 큰일 났다. 사람 만나서 부대낄 필요가 없어서 좋다. 미디어로 사역을 하다 보니 봉사, 사역을 할 필요가 없다. 이제는 이전처럼 시간을 많이 낼 필요가 없다. 예전에는 예배를 준비하고 예배를 드리고 돌아오는데 5시간 정도가 걸렸는데 요즘은 한 시간만 예배드리면 되니 5~6개의 예배를 드린다. 제가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우리들이 생각하는 평화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그런데 주님이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 평화는 p2의 평화이다. 바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가 회복됨으로 온 평화이다. 이 평화를 통해서 우리들이 이 세상을 화평케 만드느냐.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부터 나오는 화평을 우리들에게 말씀하신다. 넓은 호수에 조그만 돌 하나 톡 떨어뜨리면 평화가 깨어져 버린다. 성경이 우리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잔잔히 가라앉는 평화가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들의 관계를 뒤집어서 다 갈아엎어서 우리의 찌꺼기들이 다 드러나고 하나님 앞에 우리들이 믿음의 사람으로 자녀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분명히 이야기함을 통하여 우리의 삶에 이 복잡한 이 세상과 갈등 가운데서 너희들이 어떻게 화평을 누리고 평화를 누리는 사람이 될 수 있는가 아주 근본적인 관계에 대한 말씀을 우리들에게 하고 있다”고 했다.
김 목사는 “오늘 새벽에 제가 또다시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깨달아 진 게 있다. 하나님과의 계속되는 관계가 끊어지지 않는 것이 복이다. 우리가 화평케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데, 하나님의 자녀가 화평케 만든다. 그리고 그 화평케 만든자가 또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화평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명하는 놀라운 일이다. 화평케 하는 자가 축복이고 복으로 받는 주의 자녀가 되는 것이 축복이고 이것이 우리들의 삶에서 계속되는 것. 우리가 화평케 하는 자가 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심으로 우리들에게 관계를 만들어 주셨다”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새로 된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벽을 허무는 화평케 하는 자가 된다.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이 새로운 관계는 벽을 허무는 놀라운 힘이 있다. 베드로 전서 4장 8절을 보면 사랑이 죄를 덮으면 벽이 허물어진다. 사랑이 없어서 죄를 덮지 못하면 벽이 쌓아진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이므로 우리들이 허물 수 있는 벽이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이 믿음과 확신이 없으면 우리들의 삶이 늘 불안하다. 하나님과의 신뢰가 깨어지면 불안하다. 그래서 화평이 깨어진다. 신뢰가 깨어지는 우리는 관계로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보상받으려 한다. 사랑은 확인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리라 느껴지고 고백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림을 받는 자들이 믿음과 신뢰와 평안 가운데서 또 다른 평화를 만들어 가는 사람, 그 평화를 만들어 가는 사람을 바라보며 또 평화를 만들어 가는 사람. 하나님과의 회복된 관계 속에서 누리는 축복이 여기에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오늘 예배하는 우리들 모두가 이 평화를 누리며 이 복을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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