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은 의롭게 되어 구원을 받기 위한 조건으로 부과된 짐이 아니다. 오히려 율법은 이미 구속받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하나님의 복을 받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선물이다. 그 율법은 이미 이루신 구속에서 보여 주신(앞의 내용을 보라) 하나님의 은혜를 근거로 주어지고, 또한 그들이 적절한 반응을 나타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도록 돕기 위해 주어진다. 신실하고 경건한 이스라엘 백성은 율법을 선하고 긍정적인 것으로, 달콤하고 귀한 것으로, 그 안에서 기뻐하고 그것을 통해 자양분을 공급받는 것으로 여기며 찬양한다. 시편 기자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잘 보여 주는 다음의 시편들을 읽어 보자. 그들이 율법을 형식주의적 규율의 어둡고 무거운 짐으로 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율법을 높이 평가하고 참으로 귀하게 여긴다.
- 크리스토퍼 라이트, <일곱 문장으로 읽는 구약>
자기 의를 가장한 위선, 이것은 필연적으로 예수님을 파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자기 의에 도취한 사람들, 바른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항상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지나치게 옳은 것을 강조하는 배경 속에는 옳지 못한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려는 동기가 없는지 스스로 살펴야 합니다.
- 이동원, <복음으로 세상을 변혁한 열두 사도 이야기>
창세기 1-11장은 그 범위가 특이하다. 창세기 시작 부분에 잇달아 등장하는 인류 이야기에는 아주 흥미로운 주제이자 우리가 오늘날에도 고민하는 우주의 시작, 인간의 본질, 가족, 성(性), 속임, 죽음, 살해, 집단 학살, 생태학, 농업, 도시화를 포함한 갖가지 주제가 얽혀 있다. 이스라엘의 초기 역사를 폭넓게 기술하면서 세상의 모든 주제를 다 다루는 것처럼 보인다. 이 초기 역사는 인류 이야기인 동시에, 성 프란시스(Saint Francis)가 언젠가 말했듯이 “우리 왕이신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에 대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가 천문학자, 곤충학자, 지도 제작자, 역사가, 사회 복지사의 이야기인 까닭은 장소와 역사, 인간의 모든 노력의 내력을 탐구하기 때문이다. 만물이 어떻게 해서 히브리인들이 알던 방식으로, 또 오늘날 우리가 아는 방식으로 존재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내용이므로, 창세기 1-11장은 이야기 중의 이야기다. 다시 말해, 이 세상의 삶과 현실에 대한 모든 이야기가 이 이스라엘 성경의 초기 역사에 들어 있다.
- 드루 존슨, <우주의 시작 : 창세기 1-11장 >
그때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신 감사 제목이 있다. 그것은 내가 아이들에게 한 대로, 내가 아이들에게 보인 대로 아이들이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의 밑바닥 모습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아이들을 품고 지키신 흔적들, 그리고 그런 못난 어미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께서 아이들을 어루만지신 흔적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사랑하는 내 딸아, 네 여섯 자녀는 내 것이다. 내가 키우고 있다.“
- 권미나, <바보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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