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강원 고성군 제진역에서 동해북부선 추진 기념식에 참석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침목에 서명을 하고 있다. ⓒ 뉴시스
지난달 27일 강원 고성군 제진역에서 동해북부선 추진 기념식에 참석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침목에 서명을 하고 있다. ⓒ 뉴시스

미국과 영국, 일본의 한반도 전문가들이 한국 정부의 남북철도 연결 사업을 대북 제재에 전면 위배되는 비현실적 계획으로 평가했다고 VOA가 보도했다. 2017년 잇달아 채택된 3건의 유엔 안보리 결의가 해당 사업과 관련 장비의 반입을 분명히 금지하고 있고,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없는 한 미국이 제재 면제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남북철도 사업을 재추진하겠다는 한국 정부의 계획은 지난달 27일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으로 구체화됐다. 문 대통령은 “남북 간 철도연결을 위해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해나가겠다"고 말하고, "남북 정상 간 합의한 동해선과 경의선 연결의 꿈을 함께 실현해 나가길 기대한다"고 했다. 판문점 선언 2주년을 맞아 여건이 좋아지기만 기다리지 말고 할 수 있는 것부터 실천하자는 제안이다.

워싱턴의 전문가들은 문 대통령의 메시지에 남북 관계 개선 의지뿐 아니라 미-북 대화의 동력을 살리려는 목적도 담긴 것으로 풀이했다.

토마스 컨트리맨 전 국무부 국제안보·비확산담당 차관대행은 “한국 정부가 남북한 철도 연결을 계속 추진하는 것은 적어도 미-북 간 채널에서는 ‘혼수상태’에 빠진 외교의 생명줄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같은 노력을 할 가치는 있지만, 한국 정부는 각 단계를 밟을 때마다 미국과 긴밀히 상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북한과의 공동 사업은 물론, 여기에 필요한 각종 민수경제 관련 물자들에 여러 겹의 제재가 촘촘히 얽혀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2017년에 잇달아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 2071, 2375, 2397호가 철도·도로연결 사업에 필요한 자금과 유류, 수송장비 등의 이전을 금지하고 있다.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의 국제안보·제재 전문가 크리스토퍼 워터슨 연구원은 남북철도 사업과 관련해, “북한과의 신규 합작사업 또는 협력체 설립이나 추가 투자를 확장을 금지한 유엔 안보 결의 2371호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고 말했다.

이러한 이유로, 유엔에서 대북 제재 이행을 감시한 전문가들은 문 대통령이 제안한 남북철도 연결을 실행에 옮기기에는 현실적인 제약이 너무 크다고 지적했다.

2011년 10월부터 2016년 4월까지 4년 반 동안 전문가패널에서 활동했던 후루카와 가쓰히사 전 위원은 “유엔 안보리 결의 2371호 12조와 2375호 18조에 따라 모든 나라는 북한과의 합작사업 또는 협력체를 운영할 수 없으며, 이는 남북 공동 프로젝트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유엔 안보리 결의 2397호 7조는 어떤 나라도 ‘모든 산업용 기계류’, ‘운송수단’, ‘철강과 여타 금속류’를 북한에 이전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며 “따라서 한국은 철도 건설에 쓰일 어떤 금속이나 예비 작업에 필요한 어떤 차량도 북한에 이전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남북은 2018년 12월 판문역에서 '경의선·동해선 철도·도로 연결과 현대화 착공식'을 개최했지만, 본격적인 공사를 위해서는 물자와 장비 반입이 필요한 상황이다. 한국 정부가 이번에 제시한 남북철도 사업은 단절된 강릉~고성 제진을 잇는 동해북부선 연결이다. 이 구간 110km의 철도가 연결되면, 북한을 통해 유라시아 대륙 철도로 가는 초석이 놓일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때문에 내년 말 착공을 목표로 사업을 서둘러 추진하기로 했지만, 남북철도 연결 단계까지 가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북한의 호응도 따라야 하지만, 북측 철도 현대화를 위한 자재·장비 반입을 유엔으로부터 허가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스콧 스나이더 미국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은 “반입 가능한 일부 요소가 있겠지만 유엔 안보리 결의를 면제받지 않고 자금이나 제재 대상 품목이 북한으로 이전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후루카와 전 위원도 “남북철도 연결은 유엔 안보리와 미국 정부로부터 제재 면제 승인을 받아야 하는 프로젝트”라고 밝혔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남북한 정부는 물론 관련 단체·개인은 유엔 안보리 결의와 미국 독자제재를 불이행한 것이 된다”고 이야기 했다. 또 “이는 전적으로 미국 정부의 결정에 달렸다”면서, “유엔 안보리에서 미국에 반대할 나라는 없으며, (미국이 동의한다면) 유엔 안보리는 남북한 프로젝트에 대한 제재 면제를 승인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한국 청와대는 이 같은 남북 협력 사업이 유엔 대북 제재와 무관하고, 미국과도 긴밀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며 성사 전망에 무게를 실었지만, 美국무부는 "먼저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있어야 남북 협력도 가능하다"는 원칙을 일관되게 강조해왔다.

미국은 동맹인 한국 정부가 남북철도 사업을 언급할 때는 미-북 공조와 비핵화의 중요성을 거론하는 선에서 정면 반박을 자제해왔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똑같은 요구에는 일일이 맞대응하며 시기상조이자 잘못된 신호로 일축해 왔다.

국무부는 지난해 12월 중국과 러시아가 유엔 안보리에 남북철도 협력사업 등 북한에 대한 제재를 일부 완화해줘야 한다는 내용의 결의안 초안을 제출하자 제재 완화를 고려할 때가 아니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스나이더 연구원도 “남북철도 연결 사업에 제재 면제를 승인할 때는 아니다”라면서 “북한도 책임을 안고 현실에 참여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더 나아가 독자적인 남북관계 개선이 결과적으로 미-북 대화를 추동하고, 이로 인해 다시 남북협력이 강화하는 '선순환'에 물꼬를 터야 한다는 한국 정부의 입장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북한은 그런 기대를 실현할 만한 근거를 전혀 제공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컨트리맨 전 차관대행도 “북한이 도발적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긍정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유엔 제재가 완화될 가능성은 작다”며 남북한 철도 연결사업의 현실화를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무엇보다 국무부가 밝힌 대로 남북협력 사업 재추진이 비핵화 협상과 연동돼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한계로 작용한다. 북한이 당장 핵무기를 포기하고 관련 시설을 폐기하라는 요구는 아니지만, 적어도 그런 절차에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신뢰할 만한 물리적 조치를 취해야 남북 경협을 비롯한 제재 완화가 뒤따를 것이라는 게 국무부의 변함없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후루카와 전 유엔 전문가패널 위원은 “미국 정부는 북한 비핵화가 상당히 진전돼야 해당 프로젝트가 승인될 것이라는 점을 일관되게 강조해왔다”며, “현재 그런 진전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만큼 미국 정부가 이를 승인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고 내다봤다.

이어 “미국은 김정은 위원장의 핵 프로그램 포기 결정을 기대하고 있다”며 “김 위원장이 그런 전략적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남북철도 연결 프로젝트는 설령 시작된다고 하더라도 교착 상태에 직면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전망했다.

워터슨 연구원도 “미국에 난제는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인 만큼, 남북 경제 협력 확대가 북한에 대한 비핵화 압박을 완화한다고 보고 여기에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정작 북한은 한국의 철도 연결 협력 제안에 아직 화답하지 않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한국 언론에 “북쪽의 반응은 아직 없다”며 “북쪽의 반응이 오는 대로 대통령께서 제안하신 것들을 받아들인다면 곧바로 실행할 준비는 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의 입장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미첼 리스 전 국무부 정책기획실장은 “남북한 철도 연결 사업을 추진할 경우, 북한은 긴장을 낮추고 미-한-일에 대한 위협을 중단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한국 정부에 묻고 싶다”고 말했다. “‘북한이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혹은 ‘모르겠다’는 것이 한국 측 대답이라면, 이는 북한에 대규모 자금을 넘기는 한국의 헛된 프로젝트가 될 것”이라는 비판이다.

 이어 “북한이 최소한 협상 테이블로 돌아오겠다거나, 한국과 미국에 대한 선전선동을 중단하겠다거나,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중단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적이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북한의 현재 태도는 이미 과거에 수없이 봐왔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덧붙여 북한과 이런 방식의 협력을 하는 것은 “경험을 무시한 희망의 승리”라 덧붙였다.

리스 전 실장은 “광신자의 정의는 똑같은 일을 계속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사람”이라면서 “한국 지도자들 가운데 해당 프로젝트를 옹호하는 이들을 적절히 묘사한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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