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조은식 기자] 지난 5일 한국교회사학연구원 세미나가 열린 가운데, 허정윤 박사(케리그마신학연구원 연구교수)가 "신민회의 항일독립운동에 관한 일고 - 발기인 7인의 활동(임시정부 수립 이전까지)을 중심으로"란 제목의 강연을 전했다.
신민회가 창립되던 시기는 일본제국이 청일전쟁(1894-1895)과 노일전쟁(1904-1905)에서 연승하고, 한반도에 대한 지배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던 때이다. 허 박사는 "이러한 때, 신민회(新民會)는 기독교인들 주도로 창립됐으며, 대표적인 항일 독립운동단체로 서게 됐다"고 했다.
신민회의 창립목적은 ‘유신(維新)한 자유문명국을 성립케 함’이었다. 허 박사는 독립운동이라는 말에 대해 "당사자의 상황에 따라서 다른 의미를 가진다"고 밝히고, "신민회의 창립 당시 대한제국의 독립에 관한 문제는 일본제국과의 관계에서 제기되는 것이었다"고 했다. 특히 "신민회는 창립 당시 국내에서 ‘신정신(新精神)을 환성(喚醒)’하는 교육과 계몽운동을 전개하는 것이 곧 일제의 지배야욕에 대항하는 독립운동이라고 봤다"고 했다.
이후 일제의 야욕에 맞서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폭살사건 등의 폭력적 항일 독립운동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나자, 일제는 항일 독립운동을 하는 인사들에 대한 탄압과 감시의 강도를 더욱 높여 갔다. 허 박사는 "이에 비밀결사체인 신민회는 국내활동에 한계를 느끼고, 국외망명을 결정하면서 ‘독립전쟁론’을 최고의 전략으로 채택했다"고 했다.
그러나 허 박사는 "망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신민회의 존재를 알게 된 일제가 ‘105인 사건’을 조작하여 신민회의 간부들을 대량 검거했다"며 "그렇게 신민회의 국내조직은 와해되었으나, 망명지에서의 활동은 지속됐다"고 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신민회는 ‘유신한 국민’과 ‘유신한 자유문명국’, 그리고 일제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전 재산과 목숨까지 바치는 등 많은 희생자를 내었음에도 불구,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은 분열된 2개의 국가였다. 허 박사는 "그런 결과를 보면, 신민회의 활동이 전체적으로 성공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다만 "기독교인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했던 신민회의 ‘자유문명국’에는 기독교적 가치와 이상이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기독교 사학자들이 후속 연구를 계속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하고, "그렇게 할 때, 신민회의 목적에 내재된 기독교적 이상과 가치가 현재와 미래의 한반도 역사에서 실현되는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라 했다.
한편 행사에서는 정운형 박사의 인도와 설교, 홍인표 박사의 기도, 권평 박사의 사회 등으로 진행됐다. 오는 10월 10일과 11월 7일, 12월 5일에도 세미나가 열리며, 각각 최두섭 목사(순복음총회신학교), 송훈 박사(숭실대), 박종현 박사(연세대) 등이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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