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행하신 하나님 나라 복음 사역은 설교, 치유, 가르침으로 특징지워진다. 설교, 치유, 가르침은 예수 복음 사역의 3대 사역이다. 복음서는 이 3가지 사역 가운데 설교나 가르침 보다 그의 치유 사역에 관하여 더 많이 기록하여 전해주고 있다.
I. 설교: 하나님 나라 복음의 선포
1. 하나님의 통치로서의 하나님 나라
나사렛 예수는 당시 로마가 제국으로서 세계를 지배한 시대에서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선포하셨다. 그의 메시지는 헤롯이나 유대총독이나 로마황제에게는 불손하게 들리는 내용, 즉 세상의 권력에 저항하는 정치적인 함축성을 지니고 있다. 당시 로마는 이 지상에서 이루어진 제국이었다. 로마의 평화(pax romana)는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평화의 왕국을 의미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라는 나사렛 예수의 메시지는 로마의 통치와 평화를 부정하는 반체제적인 선동으로 오해될 수 있었다. 그래서 예수는 나중에 빌라도에 의하여 반체제 선동가의 누명을 쓰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가 전파한 하나님 나라 메시지는 세상 권력에 대항하는 반체제적 설교라기 보다는 이것을 너머서는 하나님 통치의 메시지였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예수는 하나님 나라가 왔고 그리고 가까이 오고 있다고 설교하셨다.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삶을 지배하시고 통치하시고 로마제국까지도 통치하신다. 예수는 세상을 궁극적으로 통치하는 것은 인간 권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사실을 설교하셨다. 예수는 로마 황제 까지도 하나님의 통치 앞에 서야 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의 통치는 구체적인 그의 사역, 신체적으로 병든 자들의 질병을 고치시고, 병든 영혼을 고치시고, 인간 마음 속에 하나님의 평강을 주시고, 영적으로 확장되는 실재로 나타났다. 예수는 그의 메시아적 사역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 임재가 가시화했다고 설교하셨다.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마 11:5, 눅 4:18).
나사렛 예수가 행하신 설교들 가운데 오늘날 우리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내용이 바로 마태와 누가가 그들의 복음서에 기록한 산상설교이다. 이것은 나사렛 예수가 전파한 복음의 핵심이요 하나님 나라의 윤리적 헌장이다. 예수는 산상설교에서 그의 메시아적 사역 가운데서 다가오는 하나님 통치를 기대하는 신자들의 삶의 원리를 설명해주고 있다. 산상설교에서 예수는 하나님 나라를 이 땅 위에 실현하기 위하여 신자가 살아야할 윤리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다가오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 신자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을 교훈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 복음은 전혀 새로운 내용이 아니라 이미 구약성경을 이루는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예언이 증거한 하나님의 약속의 구체적인 성취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예수는 그가 청소년 시기를 보내신 나사렛에 이르러 회당에 들어가 이사야의 글 61장 1-3절을 펴시고 이사야의 글이 오늘날 성취되었다고 구약의 예언을 해석하셨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 4:18-19).
2. 하나님 나라의 비유(parable)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비유로써 설교하신다. 예수께서 사용하는 비유는 보편적이고 타당한 추상적 진리에 관하여 말하지 않고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삶의 세계의 진리에 관하여 가르치고 있다. 예수의 비유는 팔레스타인 농민들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씨 뿌리는 일들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이것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씨를 뿌림과 연결시켜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가르치고 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농부들이 씨를 뿌릴 때에 땅을 갈아 엎기 전에 그냥 맨땅에 먼저 씨를 뿌린다. 그 다음에 갈아 엎어서 씨를 덮는다. 그래서 씨는 아무 곳에서나 다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뿌린 씨는 그것이 자리잡은 토양의 조건에 의하여 그 결실을 가져온다. 한 알의 씨알에서 여러 개의 줄기가 자라나 30배, 60배, 100배의 씨알이 결실한다. 자라나는 묘목에 길쌈을 하며 가꾸며 풍성해진 결실을 거두는 농부의 즐거움은 창조주께서 주신 일반 은총이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씨도 그 전파와 수용과 추수과정에 있어서 농부가 씨를 뿌리고 각종 어려움과 장애물을 통과하면서 여러가지 형태의 결실을 하는 것과 유사하다. 마태복음 13장(1절-52절)은 예수의 인격과 사역 안에서 이미 시작한 하나님 나라의 진리의 비밀을 들려주고 있다.
이러한 예수의 언어는 우리들에게 친숙한 일상적인 삶의 언어였다. 나사렛 예수는 당시 시대가 사용하는 농경사회의 일상생활의 용어를 사용하셨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농부가 밭에 뿌리는 씨로 비유하여 말씀하셨다. 씨가 뿌려지는 밭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길가, 돌짝 밭, 가시떨기의 밭, 옥토이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마음은 이 네 가지 종류 밭에 비유된다. 같은 씨나 뿌려지는 밭(받아들이는 자의 마음)의 상태에 따라서 나오는 결실은 다르다. 씨는 아주 작은 것이나 그것이 마음에 떨어져 싹이 나서 거대한 식물체가 되고 많은 새와 동물이 거하게 되고 많은 결실을 낸다. 그처럼 복음은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놀라운 결실을 가져다 준다.
II. 신체, 마음, 영의 질병 치유
1. 신체의 질병을 고치심
예수의 복음 사역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신체적인 질병의 치유였다. 사복음서에는 41가지 예수의 치유사역들이 기록되어 있다. 사복음서에 기록된 총 3,774절 중 484개의 절이 육체적, 정신적 질병의 치유와 죽은 자의 부활에 관한 내용이다. 그리고 총 1,257개 절의 대화체 가운데 485개의 절, 말하자면, 무려 38.5퍼센터가 예수의 치유사역을 다루고 있다.
누가는 다음같이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 그 제자의 많은 무리와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받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눅 6:17). 마가는 다음같이 기록하고 있다: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온 동네가 문 앞에 모였더라. 예수께서 각색 병든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어 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막 1:32-33). 예수는 베드로 장모의 열병, 나병, 귀먹음, 눈멈, 중풍병, 혈루병 등 각종 난치병까지도 치유하셨다. 하나님의 통치는 질병을 치유하심으로 매우 구체적으로 나타났다. 예수의 치유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은 인간이 신체적으로 당하는 가장 중요한 일상적인 고통의 하나인 몸의 질병을 치유하신 것이다. 한국교회의 초창기 그리고 오늘날 복음전파에 있어서도 항상 치유사역은 뒤따르고 있다. 몸의 질병 치유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 통치의 구체적인 모습이다. 나사렛 예수께서 그의 복음 사역에서 일차적으로 각색 병든 자들의 신체적인 질병을 치유하신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건강한 신체가 중요하다는 것을 교훈하시는 것이다.
예수는 신체의 질병을 고쳤을 때 고침을 받은 자들에게 “아무에게라도 이르지 말라”(막 7:36)고 경계하셨다. 예수는 자신이 기적 행위자로 오해받는 것을 원치 아니하셨다. 예수는 고치시기 전에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기”조차 하셨다(막 7:34). 탄식하신 것은 질병 예수는 병자에 대한 그의 긍휼스런 태도에서 나은 것이다. 그리고 “에바다”(ΈΦΦαΘά, (아람어), Be opened! 열리라!)라고 말씀하시며 귀먹고 어눌한 자를 고치신다. 그리고는 아무에게도 말하지말라고 엄히 명하신다. 치유로 인해 자신의 복음 사역의 목적이 오해받을까 염려하신 것이다.
2. 영과 마음의 질병을 고치심
예수는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 치유(막 2:1-12; 마 9:2-8; 눅 5:17-26)에서 “소자여, 안심하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마 9:2)고 말씀하시고는 그를 고치셨다. 예수는 자기에게 다가온 사람들의 육체의 병만 고치신 것이 아니라 이들의 영의 병을 고치셨다. 예수는 이들이 죄를 깨닫고 사(赦)함을 받도록 하셨다. 친구들이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달아 내린 이 중풍병자에게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막 2:5) 라고 말씀하신다. 이에 대하여 힐난하는 자들을 향하여 예수는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신다”(막 2:10)고 말씀하신다. 예수는 이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막 2:11)고 명하시니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간다”(막 2:12a). 예수는 이 중풍병자에게 정신적인 것, 즉 죄가 육체적인 것, 즉 질병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교훈하신 것이다. 예수는 이 중풍병자에게 중풍병의 원인이 된 죄의 사함을 선언하심으로 그의 죄를 용서해주셨다. 그래서 그의 몸만이 아니라 영을 치유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몸의 치유자가 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몸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건강한 몸으로 살아가는 것을 원하신다. 그러므로 예수는 의학이 발달되기 전의 시대에 사람들이 가진 각색 어려운 질병들을 치유하신 것이다. 예수의 병든 몸 치유사역은 하나님 나라가 단지 영적인 실재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신체적인 새로움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실재임을 알려 주는 것이다. 천국에서 신자의 상태는 영지주의자들이 말하는 바 같이 몸 없는 영적 실재가 아니라 몸을 가진 영의 온전한 상태를 가리킨다. 기독교는 영의 종교만이 아니라 건강한 신체를 가진 영의 종교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영의 불멸만이 아니라 죽는 몸의 부활과 영의 새로움을 믿는다.
여기서 예수의 의도는 일차적으로 병 고치는 기적을 보이시고자 하는 것이기 보다는 병의 근원적인 이유에 관하여 교훈하시는 것이다. 죄란 단지 도덕적인 허물의 차원을 너머서서 하나님과의 관계의 왜곡이다. 죄란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이요, 불신앙이다. 이것은 모든 왜곡의 근원이다. 하나님과의 왜곡된 관계가 바로 될 때 우리의 질병은 치유된다는 것을 교훈하시는 것이다. 예수는 인간 질병이 갖는 왜곡된 영적 차원을 지적하신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될 때 여기서 인간에게 자신과의 왜곡, 이웃과의 왜곡, 사회와의, 자연환경과의 왜곡이 야기된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될 때 자신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사회와 자연환경과의 관계가 새로워지고 바로 된다. 이 새로운 관계는 바로 나사렛 예수의 인격과 사역 안에서 구체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복음, 즉 하나님 나라의 복된 소식이다.
예수는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잡아와서 판결을 묻는 바리새인들에 대하여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 8:7)고 명령하신다. 고발자들이 하나 둘씩 양심의 가책을 받아 모두 사라져 버리자, 예수는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말라”(요 8:11)고 말씀하신다. 예수는 간음한 여인을 정죄하지 아니하시면서 다시는 죄를 범치말라고 권면하신다. 예수의 독특성은 율법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고차원적인 사랑과 인자(仁慈)의 법으로 완성시키는 데 있다. 예수는 간음한 여인에게 “다시는 죄를 범치말라”고 하시면서 율법을 정죄의 도구로 사용하시지 않고, 죄를 깨닫게 하시면서 용서와 새로운 기회로 사용하시고 계신다. 그의 사랑의 법 안에서 율법은 정죄의 기능을 상실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드는 사랑의 계기로 전환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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