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루한 옷에 얼굴이 쪼글쪼글한 여인이 내민 손은 떨리고 있었습니다. 눈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듯 붉었고, 어조는 왠지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입에서 나온 말 한 마디.
“그 성경 우리에게 주고 갈 수 없소?” 그 여인의 말에 저는 그 무언가에 끌리듯 성경을 건네 주었습니다. 1983년 우중충한 낡은 건물에서 조선족 한 분을 기다리는 동안 있었던 일입니다. 그리고 2년 후, 모퉁이돌선교회가 서울에 조직되어 성경 배달이 시작되었습니다. 2년 후 여인을 만나 그 성경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을 때 “없어요.”라고 답하더군요.
“왜요?”라고 물었더니 “그 성경을 보고 달라는데 어떻게 해, 한 선생이 또 개져다 주겠지 뭐! 그래서 주고 말았어.” 그러면서 여인은 겸연쩍은 듯 씨익 웃었습니다.
33년 전의 일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성경을 달라는데, 그것도 몇 십 년 동안 성경 없이 살았다는데, 저는 서울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데, 돈을 달라면 이유를 물어야 했을 터이지만 성경을 달라는데…
그 후 150번 이상 중국을 드나들며 성경을 보급하던 일이 그만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중국 교회는 십자가를 세울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여기저기서 부흥의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저의 부친도 제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만주에 들어가서 부흥회를 인도하다가 억류되어 벌금을 물고 나오셨습니다. 부친께서는 38선을 여덟 번 넘어 다니시면서 잡혔다 풀려나고 또 잡히셨던 분이십니다. “아니 어쩌자고 중국에까지 가셔요?”라고 물었더니 “죽이기밖에 더 하겠냐?”라며 피식 웃으시던 아버님이십니다.
그러나 지금 저는 중국을 드나들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중국은 성경 보급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습니다. 성경 판매를 중지했습니다. 인터넷으로도 불가능합니다. 성경을 대량으로 중국 땅에 보내는 것은 정말 어렵게 되었습니다. 중국 내 한족들은 이미 배달된 성경을 받는 것조차 두려워합니다. 옛날 공산당들의 횡포 혹은 문화혁명 당시를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인가요? 1983년에 처음 성경을 요청 받은 당시와 같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정말 성경을 가져다 주어야 할 때가 된 것을 느낍니다. 상황이 어려우면 오히려 기회가 있기 마련입니다. 일이 잘 되면 열심히, 막히면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 당시의 두렵고 떨리던 마음이 제게 다시 생성되고 있습니다.
이제 성경을 다시 배달할 방법을 찾기 시작합니다. 중국어 방송을 다시 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겠습니다. 비밀리에 성경을 배달할 방법을 다르게 시도하려고 합니다. 성경을 달라는데, 성경이 필요하다는데, 말씀을 읽고 듣고 싶다는데, 이 말씀을 먹어야 산다는데, 죽음이 와도 이 길을 가야하겠다는데…
믿음을 지킨 할머니들만 성경을 요구하는 게 아닙니다. 젊은이들이 성경을 읽기 시작했고, 그 인구가 1억이 넘었습니다만 아직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13억이 있습니다. 이때를 위하여 하나님이 성경을 운반하게 하신 것일까요? 이때를 위하여 신학교에서 말씀을 전하게 하신 것일까요?
신학교에서 자란 조선족들이 지금 중국 내 소수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때 준비되었던 주의 종들이 이제는 현장에서 일합니다. 교회는 나누어져 모이고 있습니다. 싸워서 분리된 게 아닙니다. 교회를 나누어서 더 많은 작은 교회로 탈바꿈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소위 셀 그룹 형태로 바뀌고 있기에 더 많은 교육이 필요해졌습니다. 또 더 많은 서적이 필요할 것입니다. 성경은 판매가 가능하지 않지만 다른 길은 있습니다. 지도자들은 숨어야 합니다. 일단 피해야 합니다. 인터넷으로 숨어서 일할 길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이제 우리는 숨어서 일하는 지도자들을 뒤에서 도와야 합니다. 어쩌면 지도자들을 해외에서 일하도록 만들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사실 이 일은 이미 시작되어 오랫동안 감당해 온 일이었기도 합니다.
어려운 시기마다 뱀 같은 지혜와 비둘기 같은 온유함이 필요합니다. 표면적으로 성경 배달을 외치면서 한편으로는 다른 길로 진행하여야 합니다. 여호수아가 두 정탐꾼을 보내고 여리고가 무너질 때 라합을 구해내는 지혜를 우리는 가져야 합니다. 그 라합은 예수님의 족보에 올려집니다.
그 여인의 한 마디 말이 저로 성경 배달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두 데나리온이 한 사마리아 사람의 주머니에 있었고, 그의 헌신으로 한 사람이 살아났습니다. 한 사람의 가르침이 조선족의 지도자들을 배양했습니다. 북한에 재파송된 일꾼들이 일어나 주를 찬양하는 날을 여러분들은 보게 될 것입니다.
* 위 글은 모퉁이돌선교회 소식지 '카타콤 소식' 4월호에 나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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