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형 자체가 죄나 구원의 문제는 아니다
성형 자체는 구원이나 죄와는 직접적 관련은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오히려 의학적 치유나 교정 개념의 재건(再建) 성형은 삶에 아주 귀한 유익을 줄 수 있습니다.
제 누님은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사라진 아주 희귀한 "천연두" 전염병으로 인해 그 고운 얼굴이 어그러져 평생을 상처 속에 사셨지요. 그 옛날, 지금처럼 성형 수술이 가능했다면 삶이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문제는 좀 더 아름다워지고 싶은 인간 본성 때문에 시술하는 지나친 미용 성형이 일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2. 아름다움은 성경적이다
자비하신 하나님은 인간이 내적, 외적 아름다움을 유지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고 솔로몬은 노래합니다(전 3:11). 사랑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주시는 분(약 1:17)이시지요.
성막 제작을 위해 장인(匠人) 오홀리압과 브살렐을 예비하신 것을 보면 하나님은 인간의 문화와 예술도 귀하게 여기시는 분이심을 알려줍니다. 그들은 성막을 영화롭고 아름답게 제작하였지요(출 28장 참조). 모든 몸단장조차 하나님은 귀하게 보십니다(잠 31장 참조, 사 49:18, 렘 2:32, 룻 3:3, 계 21:2).
3. 과도한 성형이 문제
즉 죄는 외형적 시술 자체가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나옵니다. 하지만 의도적인 과도한 성형은 분명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위한 불필요한 집착적 성형이나 성형에 만족하지 못해 성형에 거듭 매달리는 중독성 성형이 되면 문제가 된다고 봅니다.
또한 이것을 부추기는 사람들도 문제입니다. 결국은 돈에 대한 탐욕과 외모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서로 상승 작용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재건 성형 의사들은 부족하고 미용 성형이 유행하는 것은 바로 그런 경제적 이유가 작용합니다.
4. 인간 탐욕이 가져다주는 참사
성경은 분명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왔다고 말합니다(요1 2:16). 에덴동산에서부터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여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것을 좋아하는 인간의 탐욕적 본성이 결국 인간을 타락의 길로 들어서게 만들었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다보면 놀랍게도 요즘 못지않게 이스라엘 여자들도 대단한 사치와 허영 속에서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루살렘 여자들이 교만하여 목에 잔뜩 힘을 주고 으스대며 아무 데서나 남자들에게 추파를 던지고 발목에는 딸랑짤랑 거리는 발목 고리를 달고 아기족거리며 걸으며 이 외에도 장식 머리띠, 장식 목걸이, 귀고리, 팔찌, 베일, 모자, 장식띠, 향수병, 어깨 망토, 호신용 부적, 반지, 코 고리 등 오늘날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치장을 하였음을 알려줍니다(사 3:16-24).
하나님께서 얼마나 진노하셨는지 그들의 (아름다운) 머리에 딱지가 생겨 대머리가 되게 하시며 썩은 냄새가 향을 대신하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백성들은 슬퍼하고 통곡하며 예루살렘은 잿더미가 되어 황폐할 것이라 했으니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요.
유다 왕국은 결국 주전 586년경 바벨론에 망해 버립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에스겔 선지자는 이 같은 사치와 허영과 음란한 문화는 결국 예루살렘이 신실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겔 16장 참조). 성형도 그 자체는 아무런 죄가 아니나 성형에 대한 집착이 인간의 탐욕과 결합할 때 죄성이 나타나게 됩니다.
5. 인간의 보편적 죄성
성형 뿐 아니라 우리 인간은 늘 죄의 성향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성경은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하다(창 8:21)고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 사람은 성형 뿐 아니라 다양한 상황에 부딪히면서 늘 죄인의 모습으로 살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의 악한 모습을 미리 아시기에 사사건건 하지 말라고 간섭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인간은 각자 믿음의 분량대로 하나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고(믿고) 바르게 적용하며(행하며) 살아갑니다. 단정함과 아름다운 것은 분명 성경적이며 하나님은 우리들이 그렇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이사야 선지자는 놀랍게도 예수님께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는 모습으로 오실 것임을 예언하고 있지요(사 53장 참조). 외적 아름다움은 꽃처럼 집니다. 우리 인생이란 잠간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처럼 지나가지요. 참 된 단정함과 아름다움은 외모가 아니라 내적인 것에 있음을 잊지 맙시다.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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