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기독교서회 서진한 사장
대한기독교서회 사장, 기독교사상 발행인 및 편집인 서진한 목사 ©기독일보DB

1.

최근에 전 총리이자, 자민련총재였던 김종필씨가 서거했습니다. 정부에서는 무궁화장을 추서했습니다. 민간인에게 주는 최고의 훈장이라는데, 그게 마땅한 일이냐는 논란이 있습니다. 누구는 김종필씨가 한국경제에 크게 공헌했고, DJP 연합으로 "수평적 정권 교체"를 했으며, 한국 정치사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고 말합니다. 2인자로서 1인자를 모시는 데 탁월했다고도 합니다. 또 말년에는 "정치는 허업(虛業)"이라고 하면서, 국민만을 위한 사심 없는 정치를 말했다고도 합니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를 어떻게 평가하든, 그 김종필이라는 인물을 관통하는 분명한 키워드가 하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권력 지향(指向)'입니다. 2인자의 역할을 한 것은 1인자가 되기 위함이었고, 쿠데타 가담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심은 권력입니다.

지금도 한일관계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한일협정'과 '김종필-오히라 메모'도 권력을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쿠데타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경제개발이 필요했고, 일본의 배상금과 차관이 급했을 것입니다. DJP연합도 정치적 생존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국민들 중에 그가 오로지 국민만을 위해 DJ와 연합했다고 여기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는 그 연합을 통해 권력의 1인자가 되는 길을 모색한 것입니다.

김종필씨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보아온 정치인이란 사람들은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악마와도 손을 잡을 수 있는 사람들 같습니다. 우리 정치사의 이질적 이합집산이 그걸 보여줍니다. 선거에 불법인 줄 알면서도 댓글 공작 하고, 초원 복국 집에서 '우리가 남이가' 하면서 선거 공작을 벌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이념과 상관없이 당을 옮겨 다닙니다. 노태우 대통령 때의 3당 합당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종필씨는 말년에 "정치는 허업"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럴 듯합니다. 하지만 그건 권력을 잡을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한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문재인이 대통령이 된다면 문제'라고 특정인을 반대하며, 권력의 영향력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심 없이 살았다.'거나 '정치는 허업'이라는 말도, 허허로움이 아니라, 권력을 좇아온 사람의 노래, 권력의 노래였습니다.

2.

사무엘하 본문은 다윗이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슬퍼해서 지은 조가(弔歌)입니다. 그 조가의 제목이 "활의 노래"입니다. 요나단이 활을 잘 쐈다고도 하는데, 아마 요나단을 생각해서 그런 제목을 붙였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활의 노래'는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를 생각나게 합니다. '활'과 '칼'은 둘 다 전쟁무기입니다. 인류역사가 늘 그렇습니다만, 특히 고대에서는 권력을 장악하고, 강화하고, 확대하는 일은 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전쟁은 고대에 권력 확장의 핵심입니다. 전쟁이란 것은 이기든 지든, 침략이든 방어이든, 옛날이든 지금이든, 숱한 목숨을 앗아가는 가장 큰 비극입니다. 이 전쟁의 비극 가운데에서 이른바 '전쟁 영웅담'이 생겨납니다. 다윗의 '활의 노래'도 영웅의 죽음을 슬퍼하는 노래입니다.

"이스라엘아, 우리의 지도자들이 산 위에서 죽었다."

"(그 영웅들이 쓰러진) 길보아의 산들아, 너희 위에는 이제부터 이슬이 내리지 아니하고, 비도 내리지 아니할 것이다. 밭에서는 제물에 쓸 곡식도 거둘 수 없을 것이다. 길보아의 산에서, 용사들이 방패가 치욕을 당하였고, 사울의 방패가 녹슨 채로 버려졌기 때문이다."

영웅이 죽임당한 그 산, 그 땅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사울의 공을 높이 칭송하며, 이스라엘 여인들에게 곡하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딸들아, 너희에게 울긋불긋 화려한 옷을 입혀 주고, 너희의 옷에 금장식을 달아 주던, 사울을 애도하여 울어라!"

이 애가는 잘 짜여진 문학작품입니다. 조가 첫 구절(19절) "우리의 지도자들이 산 위에서 죽었다."라는 주요 문장이 25절에서는 "아, 용사들이 전쟁에서 쓰러져 죽었구나."로, 조가의 마지막 구절(27절) "어쩌다가 두 용사가 엎드러졌는가?"로 반복 변조(變調)되면서 조가 전체에 통일성을 부여합니다. 이 조가는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시(詩)가 아닙니다. 우리네가 이전에 '아이고 아이고...' 하면서 곡을 하듯이, 곡을 하는 조가입니다. 곡으로 하는 노래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다윗이 지었다는 이 조가, 왕과 왕의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애가, 참 정치적이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다윗과 사울은 왕권을 놓고 오랫동안 경쟁하는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사울 왕과 그 아들 요나단이 한꺼번에 죽음으로써, 다윗은 거리낌 없이 왕이 됩니다. 그는 이 조가를 지은 뒤 얼마 안 돼서 유다의 왕이 되고, 오래 지나지 않아서 온 이스라엘 왕이 됩니다.

사울은 북쪽의 베냐민 지파에 속해 있었습니다. 다윗은 남쪽의 유다 지파에 속했습니다. 그의 고향이 베들레헴입니다. 사실 사무엘상, 하를 읽어 보면 그 내용이 아주 드마라틱합니다. 전쟁소설도 이런 소설이 없습니다. 이 드라마틱한 과정을 거쳐 다윗은 왕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처음으로 진정한 의미에서 왕이 되었습니다. 사울은 왕이었지만, 과도적인 존재였습니다. 그는 자기 군대가 없는 왕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사울과 다윗의 이야기를 신앙적으로만 보지만, 역사라는 차원에서 본다면, 사울에 관한 이야기는 승자 다윗의 입장에서 쓰인 것입니다. 삼국사기나 유사 같은 역사서가 백제를 고약하게 그린 것도 승자 신라의 입장에서 쓰였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입니다. 그런 생각으로 사울과 다윗을 볼 필요도 있습니다.

사울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면, 아들 요나단이 사울을 이어 왕이 되었을 것입니다. 대제사장 엘리도 두 아들이 그 직을 계승했고, 사무엘의 두 아들도 제사장직을 승계합니다. 사무엘의 아들들도, 엘리의 아들들처럼 아비의 이름에 먹칠을 했지만 말입니다. 이미 이스라엘에서는 세습 문화가 자리를 잡았고, 이후의 왕의 자리도 세습됩니다.

그런데 사울 앞에 느닷없이 다윗이 등장합니다. 결정적으로 블레셋의 골리앗을 쓰러뜨립니다. 용맹하게 블레셋을 칩니다. 민심은 다윗에게로 옮겨갑니다. 사울은 왕으로서 참을 수 없었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여야만 했습니다. 그래야 민심도 돌아오고 왕권도 안정됩니다. 성서는 이 사태에 대해, 사울이 악한 영에 씌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악한 영은 하나님이 보내셨다고 합니다.

다윗은 사울의 칼을 피해 도망을 칩니다. 다윗의 형제들만 아니라, 가문 전체가 다윗을 찾아옵니다. 다윗과 함께 움직입니다. 그것은 사울이 다윗 가문 자체를 몰살시키려 했음을 보여줍니다. 얼마나 갈등이 치열했는지를 보여주는 예가 있습니다. 다윗의 무리가 먹을 것과 무기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도망을 쳐서 '놉'이라는 곳에 있는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갔습니다. 다윗이 먹을 것을 좀 달라 하니까, 제사장은 거룩한 빵밖에 없다며 성전에서 쓰는 빵을 내줍니다. 다윗이 죽인 골리앗의 칼도 줍니다.

사울의 이 일을 알게 되었습니다. 놉의 제사장들을 모두 부릅니다. 그리고 따집니다. 어찌하여 이런 일을 했느냐? 제사장들이 변명합니다. 아니 다윗은 임금님의 충신 아닙니까? 우리는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아히멜렉을 포함해서 거기 모인 제사장들을 다 죽입니다. 이날 살해당한 제사장들이 85명입니다. 사울은 그들을 죽이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놉 성의 주민들을 다 쳐 죽입니다. 사무엘상 22장은 이렇게 전합니다. 남자 여자, 어린이 젖먹이 가리지 않고 다 쳐 죽였으며, 소, 나귀, 양도 다 칼로 쳐 죽었다고 말입니다. 잔인한 박해입니다.

사울은 다윗의 조력자들의 씨를 말립니다. 만주에서 대한 독립군과의 전투에서 패한 일본군이 그 주변에 거주하는 조선인 주민들을 몰살한 일과 다를 바 없습니다.

다윗 집단의 도망 길은 생사를 넘나드는 험한 길이었습니다. 사무엘상에 있는 대로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라마의 나욧에서 놉으로 갔다가, 길이 없어서 이스라엘의 원수인 블레셋 지역으로 도망갑니다. 가드 왕 아기스에게 갔는데, 신하들이 난리가 납니다. '이 사람이 블레셋을 친 장수다, 골리앗을 죽인 놈이다.' 곤궁에 빠진 다윗은 살아남기 위해 미친 사람 연기를 합니다. 침을 질질 흘리고, 성전 문짝에 알 수 없는 글자를 긁적거리기도 합니다.

블레셋에서 빠져 나온 다윗은 아둘람 굴로 도망갑니다. 그리고 모압 미스바로 갑니다. 모압왕에게 간청합니다. 자신이 부모를 제대로 모실 수 없으니, 그곳에 머물게 해달라고 합니다. 다윗이 도망 다닌 곳은 주로 유다 땅이었던 것 같습니다. 북쪽 이스라엘에서는 숨어 있기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헤렛 숲에 머물다가, 그알라 성으로 갑니다. 하지만 밀고를 두려워해서 거기를 빠져나와, 광야의 산성에 갑니다. 십 광야의 호렙 산성에 숨어 있는데 또 밀고당합니다. 사울의 군대가 근처를 수색합니다. 사울은 유대 지역 전체를 뒤져서라도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십 광야로, 마용 광야로, 엔게디 성으로, 추격과 피신이 이어집니다.

생명을 부지할 수 없게 된 다윗은 할 수 없이 다시 블레셋으로 넘어갑니다. 블레셋 왕 아기스의 부하가 됩니다. 다윗의 교활한 연기에 속은 아기스는 그를 종신경호대장으로 삼기도 합니다. 그제야 사울은 추격을 멈춥니다.

왕위를 놓고 이토록 갈등이 컸고, 다윗은 물론 주위 사람들도 생명도 끊임없이 위협받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습니다. 이런 전후 사정을 감안한다면 사울이 죽었다고 해서 다윗이 진심으로 슬퍼하고 울었다고 믿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물론 요나단의 죽음에는 슬퍼했을 것입니다. 그는 다윗을 살리려고 아버지를 속이기까지 했으니 말입니다. 다윗은 조가에서 요나단과의 우정이 "여인과의 사랑"보다 더 컸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자신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었던 사울의 죽음까지 그리 슬퍼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요나단까지 죽은 것은 자신이 왕이 되는 데에 큰 걸림돌이 없어졌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사울의 죽음을 몹시도 슬퍼하여, 조가를 짓습니다. 특히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은, 다윗이 이 노래를 지어서 자기만 애곡한 것이 아니라, 온 유다 사람에게 가르쳐서 부르게 했다는 것입니다. 남쪽 유다 사람들의 애곡은 북쪽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보내는 사인(sign)입니다. 다분히 의도적입니다.

사울이 죽자 곧바로 유다 사람들은 다윗에게 기름을 붓고 다윗을 유다의 왕으로 세웁니다. 그러고 나서 사울 집안의 세력이 여전히 버티고 있는 북쪽 이스라엘과 전쟁을 치릅니다. 다윗이 왕이 된 뒤, 남쪽 유다와 북쪽 이스라엘의 전쟁은 무려 7년 반 가까이 계속됩니다. 이스라엘의 남북 분열은 왕조 초기부터 이미 배태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양쪽의 전쟁에서, 젊은이들을 동수(同數)로 선발하여 싸우게 하였는데, 서로 상대의 머리카락을 거머쥐고 서로 찔러 모두 죽었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죽어 갔습니다. 그 전투가 벌어진 벌판을 "칼의 벌판"이라고 불렀습니다.

7년에 걸친 지난한 전쟁 끝에 사울의 장수였고, 북쪽의 세력가가 된 아브넬이 다윗과 협상하고서, 북쪽 이스라엘 사람들을 설득하여 다윗을 왕으로 인정하기로 하고, 다윗을 찾아와 만납니다. 그런데 돌아가는 길에 다윗의 부하들이 아브넬을 추적하여 붙잡아 살해합니다. 다윗은 몰랐다며, 또 다시 아브넬을 위해 애가를 짓고 슬퍼합니다. 성서는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브넬의 살해에 다윗이 무관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북쪽은 완전히 무너졌고, 다윗은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사울이 죽은 뒤에 다윗은 사울의 세력인 북쪽 이스라엘 민심을 움직여야 했던 것입니다. 다윗을 평가 절하할 필요는 없지만, 다윗을 거룩하게 만들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고, 사람의 한계 안에 있는 자였습니다.

3.

다윗의 애가, 다윗의 조가는 용맹스러운 용사의 죽음을 기리는 '현충(顯忠)의 노래'입니다. 그러나 최고 권력을 향해가는 사람의 '정치적 노래'입니다. '권력의 노래'입니다. 본래 국가가 주도하는 '현충'이라는 것이 권력을 위한 일 아니겠습니까? 왕조 시대에 전쟁에서 죽은 용사들을 위한 노래를 짓고, 그들을 기리는 사당이나 상징물을 세우는 것은 왕조에 대한 충성을 확인하고 확립하며, 강화하려는 의도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우리 역사에서도,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현대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일본은 전범자까지 안장되어 있는 신사에서 주요 정치지도자들이 참배를 합니다. 주변국의 항의에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자국민들에게 나라에 대해, 국가 권력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를 각인시키고 강요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현충원에도 친일 부역자들이 안장되어 있습니다. 그들 아래쪽에 독립유공자들의 묘지도 있습니다. 아예 현충원에 안장되지 못한 독립유공자들도 있습니다. 그 묘역들은 제대로 관리도 받지 못합니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현충'은 친일에서 독재로 이어진 그 권력의 의지가 음으로 양으로 관철되어 있습니다.

사울이 전사한 길보아 전투에서는 사울만 아니라, 수많은 젊은 사람들이 산화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만을 언급하며 슬퍼합니다. 그의 조가에서는 이름 없이 스러져 간 젊은이에 대한 언급은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 가족들의 고통이 너무나 컸을 것이며, 그들의 통곡소리가 이스라엘 땅에 넘쳐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언급은 아예 없습니다.

그러니 이 조가는 전형적인, 영웅을 위한 조가입니다. 영웅들이 얼마나 용감했는지, 얼마나 날쌨는지, 얼마나 헌신적이었는지를 강조합니다. 그 영웅담이나 조가에는 칼받이, 창받이, 화살받이로 스러져간 청춘들은 그 이름도, 역할도 없습니다. 이건 동서양을 막론하고 마찬가지입니다.

형평(衡平)에 맞지 않습니다. 평형(平衡)에 맞지 않습니다. 모든 목숨은 다 소중하고, 모든 희생은 다 고귀합니다. 그러니 불공평(不公平)합니다.

6월은 현충의 달입니다. 현충일이 있을 뿐 아니라, 25일은 한국전쟁 발발일도 있습니다. 지난6월 6일 제63회 현충일 기념식이 대전 현충원에서 있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추념사, 저는 놀랍게 들었습니다. 언론들은 제가 생각한 부분에 대해서는 별로 다루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추념사는, 제가 보기에 현충에 대한 반란이자 혁명입니다. 추념사의 그 대목은 이렇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대한민국의 역사는 우리 가족과 이웃들이 평범한 하루를 만들어 온 역사입니다. 아침마다 대문 앞에서 밝은 얼굴로 손 흔들며 출근한 우리의 딸, 아들들이 자신의 책임을 다하며 일궈온 역사입니다. 일제 치하, 앞장서 독립만세를 외친 것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쟁터에 나간 것도,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하며 경제 발전에 이바지 한 것도,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을 때 두 주먹 불끈 쥐고 거리에 나선 것도, 모두 평범한 우리의 이웃, 보통의 국민들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희생된 대부분의 사람들도 우리의 이웃들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카센터 정비사, 농업기술센터 행정인턴 어린이집 교사, 성우를 꿈꾸었던 대학생들의 이름을 열거합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용기가 깃들어 있다는 것을 그들이 우리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이웃을 위한 따뜻한 마음이 의로운 삶이 되었습니다.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온 하루가 비범한 용기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분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우리 자신처럼 평범한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자각할 수 있었습니다."

대통령은 평범한 이웃이, 일상을 성실히 산 딸, 아들들이 현충의 주인공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그 추념사를 이렇게 마감합니다.

"우리가 서로를 아끼고 지키고자 할 때 우리 모두는 의인이고 애국자입니다."

4.

마가복음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집으로 갑니다. 회당장은 당시의 대단한 지역유지이자 세력가였습니다. 회당은 당대 유대교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회당을 세우고 관리하는 회당장은 해당 지역의 중요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성전이 파괴된 뒤에는 회당장의 역할은 더욱 커졌습니다. 한 회당장의 딸이 죽어갑니다. 성서는 그 회당장의 이름을 기억합니다. '야이로'입니다. 그는 자기 집으로 가서 딸을 났게 해달라고 예수님께 간청합니다.

그 집으로 가는 길에 많은 사람들이 따라 오면서 밀치는데, 한 여자가 그 틈새로 비집고 들어와서 예수님의 옷깃을 만집니다. 그 여인은 무려 열두 해 동안 하혈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생리기간에는 여자는 부정했고, 끝난 뒤에도 칠일 동안 부정했습니다.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것이 유대교의 신앙이었습니다. 그러니 늘 피가 비치는 사람은 늘 부정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숨길 수밖에 없는 병이었을 것입니다. 여러 의사를 만나고, 많은 고생을 하며 재산을 탕진했지만 낫지 않았습니다. 복음서의 이런 서술은 그 여자의 고통이 얼마나 크고 오래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예수를 둘러싼 무리 속에서 여자가 생각했습니다. '저분의 옷에 손만 대도 낫지 않을까?' 몰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피가 멎었습니다. 예수께서 바로 돌아보며 묻습니다. "내게 손을 댄 사람이 누구냐?" 여자가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돌에 맞아 죽을지도 모릅니다. 여자는 두려워 떨며 나와 엎드려 실토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여인이여 그대의 믿음이 그대를 구원하였다. 안심하고 가거라. 그리고 이 병에서 벗어나 건강하여라." 이 일로 시간은 지체되었고, 회당장의 딸은 죽고 맙니다. 물론 성서는 예수님께서는 그 죽은 딸을 살려주셨다고 전합니다.

'야이로'라는 회당장이 등장하고, 그의 죽은 딸을 살리게 되는 이 놀라운 일 중간에, 이름 없고 부끄러운 병을 앓는 한 여인의 이야기가 끼어 있다는 것은 특이합니다. 성서에는 그 여자의 이름도 없습니다. 야이로에 비해 중요도가 확 떨어집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 여인에게 하신 "그대의 믿음이 그대를 구원했다."는 말씀입니다.

이 여자의 믿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교리적인 '믿음', 특히 종교개혁 이후로 금과옥조처럼 떠받드는 '믿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성서를 보면, 그의 믿음은 미신에 가까웠을지도 모릅니다. 신성한 물건을 만지면 병이 낫는다고 믿듯이, 그분의 옷만 만져도 나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 믿음이 그 자신을 구원했다고 합니다. 그 여인은 단지 치유의 대상이 아니라, 치유의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는 뜻입니다.

마가복음은 놀라운 구원사건이, 병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한 여인의 갈망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맞닥뜨렸을 때 일어났다고 전합니다. 그 둘이 조우했을 때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마가복음에는 이것과 비교해볼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가복음 6장 1~6절에 보면, 예수께서 고향에 가셨습니다. 그런데 고향 사람들이 그를 불신합니다. 못마땅해 합니다. 그래서 "거기에서는 아무 기적도 행하실 수 없었다."(6절)고 합니다. 안 한 것이 아니라, 못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마가복음의 독특한 측면입니다. 마태나 누가복음서는 이 구절을 불편하게 여겼던 것 같습니다. 고향에 들른 이야기를 좀 다르게 전합니다.

고인이 된 민중신학자 안병무는 마가복음을 연구하면서, 성서해석의 기존 방식, 곧 "주객도식(主客圖式)"을 거부했습니다. 예수는 구원을 베푸는 분이고, 그를 따르던 무리(민중)는 단지 수혜자라는 생각을 버리라고 합니다. 예수의 구원 사건은 베푸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따로 없다. 주객이 따로 없다. 분리되어 있지 않다. 구원과 해방을 갈망하는 민중들과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서, 그 둘이 만나고 부딪히고 끌어안는 거기에서 구원사건이 일어났다, 거기에서 해방이 경험되었다고 합니다. 이름도 없는 일상적인 사람들, 보통사람들이 구원사건의 한 역할을 맡는 주체라는 뜻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주체로 세우셨다는 말입니다.

바울의 서신을 비롯한 서신서들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그냥 베푸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복음서의 그분은 '더불어' 이루신 분입니다. 신약성서에도, 영웅담은 아니지만, 그것에 빗대볼 책이 두 권 있습니다. 사도행전과 복음서입니다. 사도행전에는 사도들의 놀라운 영웅적 이야기가 잘 그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복음서는 자기를 낮추어서 낮은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 성취하고 이루신 분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구원사업을 다윗의 '권력의 노래'에 빗대어 묘사한다면, 그것은 '만남의 노래'이고 '사랑의 노래'입니다. 민초, 민중들을 객체로 만들지 않고, 함께 만든 기적, 구원의 노래입니다. 권력과 상관없는 '사랑의 노래'였습니다.

5.

바울은 오늘 서신서에서, 부요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위해서 가난해 지심으로, 여러분이 부요하게 되었으니, 여러분도 어려움을 당하는 교회를 도와야 한다고 말합니다. 유대지역의 교회가 궁핍에서 벗어나도록 돕자는 것입니다. "구제"는 어려운 교회를 돕기 위해 재물을 내놓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것을 "하나님께 바치면"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을 향한 구제가 하나님을 향한 제물이 됩니다.

바울은 우리가 구제하여 서로 도우는 일을 통하여, 우리 사이에 평형(平衡), 형평(衡平)이 이뤄진다고 합니다. 불공평(不公平)이 시정된다고 합니다. 평형을 영어성서(RSV)는 'equality'라고 번역합니다. 바울은 이어 말합니다. "이것은 성서에 기록하기를. '많이 거둔 사람도 남지 아니하고, 적게 거둔 사람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다.'한 것과 같습니다." 말하자면 서로 힘에 닿는 만큼 돕는 일을 통해서, 엄정한 '정의'는 아니지만, 적어도 공평, 형평은 맞출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불공평을 극복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 이후에, 교회는 성령의 시대에 존재합니다. 성령의 권능 안에 있습니다. 성령의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해야 합니다. 그 일은 이제, 원수들을 칼로 쳐부수거나, 기적을 일으키는 일은 아니더라도,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 가능한 만큼만 하는 되는 일입니다. 그것은 어마어마한 일이 아닙니다.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 우리 모두의 일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행한 그 작은 일들이 하나님의 일이 됩니다. 형평을 이루는 일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노래는 '일상의 노래' '보통사람의 노래' '시민의 노래'가 됩니다. 위대한 영웅의 노래가 아니라, 존재감 없어도 좋은 작은 사람들의 노래가 됩니다. 우리의 별스럽지 않은 하루, 우리의 작은 고민, 우리의 소소한 결행, 우리의 변변찮은 참여 한번, 그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부족할지라도, 그것으로 하나님은 우리 사이에 형평을 세우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거대한 것, 소위 거대담론을 말하는 데 익숙해 있습니다. 그러나 거룩한 순교자, 위대한 신앙의 영웅, 고귀한 선교자만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신실하고자 하는 신앙인들의 일상의 삶이 위대한 구원의 주춧돌이기 때문입니다.

* 설교는 지난 2018년 7월 8일 '함께 하는 예배' 공동체 성령강림절 후 6째 주일예배 설교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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