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가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만난 사람이 임상우 변호사다. 그가 믿음의 변호사로 오늘을 사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본인의 결단의 열매다.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기에 합당한 결단의 삶을 살아가는 그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이 있다. 그는 십대 시절을 부적응 학생으로 보낸다. 쉽게 형용할 수 없는 방황의 세월이 있다. 혹시 방황과 반항의 세월을 보내는 십대들을 자녀로 둔 부모들이 있다면 임상우 변호사의 삶을 통해 방황하는 자녀들을 향한 새로운 소망을 품기를 바란다. 깨질 듯 깨질 듯 아슬아슬하게 걸어 온 길에서 풍성한 하나님 은혜를 경험하고 신실한 신앙인으로, 건실한 법조인으로 살아가는 임상우 변호사의 삶의 얘기를 세상에 내어 놓는다.
남가주에 단비가 내리는 이른 봄날 아침! 단비처럼 반가운 사람 임상우 변호사를 기자가 만났다. 안내를 받아 접견실에 앉는 기자를 환한 미소로 반겨주는 임상우 변호사! 다부진 체구 그리고 매서운 눈초리, 다정하고 친근하지만 확신에 찬 언어, 범상치 않은 첫인상이었다. 순간의 긴장을 환한 미소로 풀어준 임상우 변호사는 대화 내내 예수 향기 가득한 믿음의 고백들을 쏟아 놓았다.
방황과 반항의 시절을 지나
임상우 변호사는 10대에 가족과 함께 남가주로 이민을 왔다. 그 무서운 중학교 2학년 시절에 이민자의 삶을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임 변호사는 전형적인 1.5세다. 이민열풍이 한창이었던 80년대 초 온 가족과 함께 이민을 왔다. 가만두어도 어려웠을 중2 시절을 이민자로 미국 학교에서 보냈다. 얼마나 어려웠을까? 상상이 쉽지 않다. 그 시절 임상우 변호사는 그야말로 방황과 반항의 세월을 보냈다. 방황하는 십대들이 할 수 있는 탈선 과정은 거의 다 거친 것이다.
자칫 자신의 허물이 될 수 있는 찐한(?) 경험들을 너무나 진솔하게 쏟아내는 임상우 변호사에게 묘한 매력을 느꼈다. 동시에 신앙 안에서 변화된 새 삶의 능력과 담대함을 느꼈다. 그 모든 일들이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들이기에 담대하게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청소년기에 특별한 경험을 가진 임상우 변호사가 자천 타천으로 현재 한인 장학 재단 회장으로 일하고 있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한인 장학 재단은 전도 유망한 차세대 한인 학생들을 선발해 장학금을 주며, 우리 한인 2세들을 미국 땅에서 세워가는 장학 단체다.
경제적 문제가 발목을 잡고
청년 임상우는 고교 졸업 후에 9년 만에 대학을 졸업한다. 그야말로 우여곡절 끝에 대학을 졸업하고 이어서 로스쿨을 졸업한다. 대학 졸업은 어려웠지만 로스쿨은 나름대로 정상적으로 과정을 마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 온 집안은 빚더미에 앉는다. 모든 가족들이 크레딧 카드 빚을 지는 경제적 어려움을 갖게 된 것이다. 로스쿨 졸업 후 변호사 시험을 합격하는 과정에서 온 가족이 크레딧 카드 빚으로 살아온 것이다. 변호사로 일을 시작해야 하는데 개업을 할 수가 없었다. 변호사 협회에서 임상우 변호사의 경제적 불안정을 문제 삼았던 것이다.
몇 번의 청문회에서 소명 기회 가진 후에 천신만고 끝에 변호사 개업을 하게 되었다. 변호사 자격증을 받은 후 1년을 허송세월로 보낸 것이다. 어렵게 개업한 변호사 사무실은 한산했다. 급한 마음에 사무실을 얻어 놓고 기다렸던 임상우 변호사와 가족들에게는 피를 말리는 시간이었다. 물론 빚도 엄청나게 불어났다. 그야말로 악화일로였었다. 매달 빚을 갚아가는 과정을 보고하는 것을 조건으로 변호사 개업을 허락한 것인데 빚을 갚기는커녕 빚이 늘어만 가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막다른 골목에서 만난 하나님
1년 정도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고 얻은 총 수입이 5천불 정도였으니 얼마나 어려웠는지 상상이 되고도 남는다. 본인의 수입은 차지하고라도 사무실 임대 및 인건비 감당도 어려웠던 것이다. 12월이 되었는데 내년을 맞을 희망도 끈기도 없었다. 크레딧 카드 회사가 더 이상 기다려 줄 상황도 아니었고, 경제적 위기에 몰린 가정을 회복할 기력도 없었다. 아내가 이혼을 요구하면 이혼을 할 수밖에 없고, 홈리스의 삶이 눈앞에 그려지는 상황이었다.
마침 교회에서 21일 특별 새벽기도회를 했다. 임상우 변호사는 하나님께 부르짖기로 작정했다. 모태신앙으로 자라 교회를 다녔지만 자신의 의지와 결단으로 하나님을 찾아 본 적이 없는 임상우 변호사에게는 대단한 결단이었다. 막다른 골목에서 하나님을 찾아 나선 것이다.
이 새벽기도 기간에 하나님의 특별한 손길을 경험한다. 1년에 5천불을 벌었던 변호사 사무실은 21일만에 1만불의 수임료를 받았단다.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21일째 되는 날은 더 놀라운 기적적 응답을 경험한다. 당시 가장 큰 한인 로펌에 취업이 결정된 것이다. 삶의 위기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스스로 만나는 경험을 한 것이다.
그 로펌에서 나름대로 보람된 변호사 생활을 한동안 하였다. 그런데 기도의 응답으로 취직한 그곳에서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맞이했다. 이제 겨우 살만한 상황이 되었는데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다시 그 어려운 적자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한다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다. 또 다시 막다른 골목을 만난 임상우 변호사는 아내와 함께 기도원을 찾아 금식 기도를 시작한다. 하나님 앞에서 처절한 삶의 보따리를 풀어 놓은 것이다.
금식을 작정하고 하나님께 엎드려 드린 첫 기도가 “하나님!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습니다!”였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 이 고백을 토하는 순간 가슴이 뜨거워졌고 굳건한 확신이 찾아왔다.
하나님의 응답하심을 확신하며 기도원을 내려와 새로운 변호사 사무실을 열고 법률 서비스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변호사가 필요한 사람들을 보내 주셔서 사무실이 차고 넘치게 되었다. 고객이 많아지니 수입도 좋아 지고 여러 형편이 호전되었다. 그 엄청난 빚을 2년 만에 완전히 청산하는 등 말로 형용키 어려운 축복을 주셨다.
든든한 어머니의 기도
임 변호사가 큰 축복과 은혜를 누리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러나 그 은혜가 임하도록 날마다 철야기도로, 새벽기도로 눈물 흘리신 어머니의 기도를 임 변호사는 잊지 못한다. 임 변호사는 요즘 보기 힘든 효자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그야말로 지극정성으로 섬긴다. 그는 어머니의 사랑과 눈물의 능력을 안다. 자신이 방황하던 시절에 드린 어머니의 목마른 기도를 잊을 수가 없다.
남가주의 빛과 소금으로
임 변호사는 이민 변호사로 매일 고객을 만나 법률 서비스를 제공한다. 매일 사무실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고객들을 대하고 있다.
그는 매일 성도의 삶을 살기 위해 먼저 늘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간다고 고백한다. 변호사로 생활하다 보면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과 기회가 보이지만 임상우 변호사는 늘 그런 유혹에 눈을 감는다. “변호사에게는 유혹이 많습니다. 돈이 굴러다니는 것이 보입니다. 그런 돈에 대한 욕심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돈이 하나님 앞에서 옳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힘주어 말하는 임 변호사에게 신뢰감을 느낄 수가 있었다.
또한, 나누는 삶을 산다. 임상우 변호사는 이웃을 돌보는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주변의 가족들의 필요를 채우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교회를 포함해, 소속된 공동체에 헌신하려고 노력한다. 장학 사업이나 봉사 단체에도 인색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교회 사역에도 헌신적으로 동참한다. 그래서 활발하게 변호사 활동을 하지만 늘 경제적으론 빠듯한 삶을 살아간다.
신앙인 임상우 변호사는 일상에서 주님과 동행을 사모한다. 주님이 인정하지 않는 삶을 두려워한다. 질펀한 삶의 자리에서 주님을 따르는 임상우 변호사의 몸부림에 박수를 보낸다.
/글·사진=미주 기독일보 강태광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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