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조은식 기자] 행동하는 신학자들의 모임인 샬롬을꿈꾸는나비행동(상임대표 김영한 박사, 이하 샬롬나비)이 '2018년 사순절 논평'을 통해 "한국교회가 근신하여 세속적 권력, 부, 명예를 구하는 욕망과 독선을 회개하자"고 주장했다.
샬롬나비는 ▶한국교회는 자신의 부패와 부족함을 인정하고 회개하고 낮은 자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한국교회는 권력욕을 추구하여 연합기관을 분열 시킨 것을 회개하고 하나가 되어야 한다 ▶한국교회는 사회를 향한 봉사와 희생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교회 내 불의 고발을 통하여 한국 사회 'Me too 운동'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한국사회를 흔들고 있는 분열과 갈등을 넘어서서 사회 통합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과 북한의 교회들을 위해서 한국교회는 근신하여 기도하자고 주장했다.
다음은 샬롬나비 논평 전문이다.
한국교회는 자기 비움으로 계층과 이념 갈등 속에 있는 사회의 통합 위해 헌신하자.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항상 그리스도께서 걸으셨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길을 걷는 것으로 부름을 받는다. 사순절을 고난과 죽음을 절기로서 기념하고자 하였던 것은 중세교회였다. 교회사적으로 볼 때 초대교회에는 사순절이 없었다. 부활을 기념하는 날 전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기념하며 부활을 준비하는 몇 날을 가졌을 뿐이다. 이러한 짧은 기념은 중세교회에 접어들면서 40일이라는 기간을 정하여 금욕적인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부패와 죄를 애통해 하는 절기가 되었다. 그러나 사순절은 결국 인간의 공로를 금욕주의로 드러내고자 하는 중세교회의 부패의 결과물이 되었다. 이 중세교회의 부패한 사순절의 전통은 유럽의 종교개혁(1517년)에 의해서 타파되었다. 종교개혁자들은 중세교회가 지키던 사순절의 회개와 낮아짐은 단순히 어떤 절기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삶을 관통하는 열매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예수 제자는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사는 것을 매일의 삶에서 실현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이런 개혁교회의 가르침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그리스도의 고난과 희생을 절기같이 지키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 오히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과 부활을 경험하고 바라보는 교회와 성도가 그러한 삶을 사는 것으로 나타나야 할 것이다. 사순절을 보내면서 한국사회와 교회의 현실과 문제점들을 바라보면서 샬롬나비는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하고자 한다.
1. 한국교회는 자신의 부패와 부족함을 인정하고 회개하고 낮은 자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한국교회는 아직도 회개의 길에서 먼 것처럼 보인다. 여전히 담임목사 직분을 가족에게 넘겨주는 목회 세습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로 인하여 충돌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교회에서 시도되고 있다. 아직도 크고 화려한 교회당으로서 세상에 기독교를 드러내려고 하는 시도가 나타난다. 여전히 교회는 교세 확장을 통하여 세속적인 힘과 영광을 가지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교회가 세속의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로 인하여 한국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비난과 조롱을 받고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회개와 변화 보다는 사회의 비난에 대해서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이것은 회개하는 자의 자세가 아니다. 범죄하여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존심을 세울 여유 따위는 없었다. 오직 철저한 회개만이 요구될 뿐이었다. 한국교회는 바벨론 포로와 같은 치욕을 당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스스로의 의를 드러내거나 변명을 하는 것은 회개가 온전하지 못함을 드러낼 뿐이다.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한 낮아짐과 회개가 요구된다. 그 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바벨론에서 구원해 주셨듯이 교회의 명예를 다시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교회의 능력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부활하는 데서 나타난다.
2 한국교회는 권력욕을 추구하여 연합기관을 분열 시킨 것을 회개하고 하나가 되어야 한다.
한국교회에서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은 연합기관들의 분열이 극복되면서 교회의 하나됨을 회복하는 것이다. 교회의 하나됨을 회복하는 길은 교회가 주님의 몸으로 하나라는 것을 실천할 수 있는 낮아짐과 사랑의 봉사이다. 우리가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주님을 따라갈 때 교회는 세상에 하나됨의 빛을 비추어줄 수 있을 것이다.
3. 한국교회는 사회를 향한 봉사와 희생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예수께서 지신 십자가는 속죄의 십자가이면서, 동시에 죄인을 위한 사랑과 희생의 십자가였다. 교회는 말씀의 사역과 함께 사랑과 희생의 십자가를 질 사명을 받았다. 교회는 이 세상에서 영광을 누리게 되어 있지 않다. 우리 주님께서도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비로소 영광을 얻으셨으며, 피조물로부터 충만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은 재림 때로 미루어져 있다. 그 분이 육체로 계실 때에는 영광을 받지 못하셨다. 그러나 그 분을 따라가는 한국교회는 이 땅에서 영광을 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땅에서의 교회의 영광은 그 머리이신 예수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그 때까지 유보되어 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헛된 영광을 탐하지 말고, 이 땅에서 사랑의 봉사와 희생을 사명의 내용으로 삼아야 한다. 초기 한국교회는 이러한 희생과 봉사의 정신을 보였다. 이로 인해서 한국교회는 한국사회에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헛된 영광을 추구하다가 교회가 이 땅에서 행해야 할 희생과 봉사를 잃어버렸다. 한국교회는 스스로를 부인하고 주께서 주신 이 나라 안에서 낮은 자로서 이웃을 섬겨야 한다. 이 때에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이 이 땅에 증거될 것이다.
4. 한국교회는 교회 내 불의 고발을 통하여 한국 사회 'Me too 운동'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한국 사회를 흔드는 'Me too 운동'은 아직도 이 사회의 약자가 강자에게 의해서 약탈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사회는 자신의 부패와 죄악을 돌아보아 회개해야 한다. 한국교회의 회개는 곧, 한국교회가 자리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회개와도 연결되어야 한다. 한국사회는 최근 오랜 동안 뿌리박혀 있던 부패와 타락의 민낯이 드러남으로 인하여 큰 충격 속에 빠져 있다. 곳곳에 만연되어 있는 성적인 폭행과 착취에 대한 폭로는 우리로 경악을 금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이 폭로들은 문화계, 법조계, 교육계, 심지어 종교계에서 까지 나오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영역에서 제기되는 성범죄의 폭로는 그 동안 한국사회에 지위와 힘을 이용한 폭력과 착취가 너무나 폭넓게 만연해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회의 썩은 부분은 적당히 무마하고 넘어갈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이러한 범죄들을 대충 얼버무리고 그냥 넘어간다면 더욱 더 큰 범죄와 부패가 우리 사회를 덮칠 것이다. 한국 사회는 이러한 타락과 죄악으로부터 철저하게 자신을 반성하고 회개해야 한다. 회개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눈물이 아니라, 악에서 방향을 틀어서 선을 향하여, 그 죄가 재발되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는 것이다. 낮아짐은 맹목적인 겸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부패와 불의를 버리고 돌아서는 것이고, 뼈를 깎는 심정으로 회개하며 죄와 싸우는 것이다. 이 사회에 책임이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죄와 싸우며 회개함으로, 온 한국사회가 함께 뉘우치며 돌이켜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한국사회의 회개와 정화의 근원이 되기 위한 능력을 회복하기 위해 기도하며 깨어 있어야 하겠다.
5. 한국사회를 흔들고 있는 분열과 갈등을 넘어서서 사회 통합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더 이상 분열과 갈들이 아닌 이념과 지역을 뛰어넘어서 하나님께서 한 민족으로 묶어주신 그 뜻을 생각하여 내 주장을 잠시 낮추고 서로를 용납하여 함께 문제를 해결하며 선을 이루는 사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 인간 존엄성, 자유와 평화를 추구하면서 사회 구성원이 하나가 되자.
6.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과 북한의 교회들을 위해서 한국교회는 근신하여 기도하자
평창 동계 올림픽을 통하여 남북은 하나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남북이 자신을 조금씩 낮추고 상대방을 용납해 줌으로서 한 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역사적인 모습이었다. 낮아짐과 용납함은 십자가의 정신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것이 낮아지신 것과 죄인을 용납하신 것이다. 한국 전쟁의 쓰라린 상처를 안을 수 있는 것은 오직 기독교의 사랑으로서만 가능하다. 자신만 살기 위해서 서로 대적하여 함께 죽음과 파멸로 치닫는 것이 세상의 방법이라면, 기독교는 십자가를 지고 낮아지고 죽음으로서 부활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죽음과 부활의 신비와 역설은 오직 그리스도인과 교회만이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이다. 한국교회는 북한과 북한 교회를 그리스도 사랑과 형제애로 품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2018년 3월 4일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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