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행위의 아이러니
1975년 제1회 한국아동문학상을 받았던 '몽실언니' '강아지 똥' 등의 베스트셀러 동화로 유명한 아동문학가 고(故) 권정생 선생(1937-2007)의 사인(死因)이 사망 10년 만에 결핵이 아닌 다른 문제로 숨진 사실이 뒤늦게 법원 판결로 최근 밝혀졌다. 사인은 의료진들이 부인하던 의료 과실이었다. 193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1946년 귀국한 후 그 이듬해부터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에 정착하고 1968년부터 마을의 교회 문간방에서 종지기를 하며 혼자 살다가 이후 교회 뒤에 오두막을 지어 살았던 권 선생은 1969년 단편 동화 '강아지 똥'을 발표해 동화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1966년 신장 결핵 진단을 받고 오른쪽 신장을 적출하는 등 오랜 투병을 하면서도 어린이와 자연, 생명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작품을 썼던 모든 독자들로부터 사랑 받던 한국의 귀한 아동 문학 작가였다.
의사가 파업하면 사망자가 급격히 준다는 통계 자료가 있다. 1967년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서 의사들이 52일간 파업을 하였더니 평소보다 사망률이 35%나 급격히 줄었다. 같은 해 미 캘리포니아 LA에서도 의사들이 파업을 하였더니 사망률이 18%나 감소했다. 1973년 이스라엘에서 의사들이 1개월 동안 파업하였더니 파업 기간 중 사망률은 50%나 감소하였다. 이스라엘에서 사망률이 감소한 경우는 그 20년 전 역시 의사들이 파업했던 때 외에는 없었다. 당시 의사들은 그런 통계가 나온 이유로 고작 “중증 환자들 치료에 전념했기 때문”이라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럼 파업 이전에는 중증 환자는 대충 방치했다는 말인가? 구차한 변명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식으로든 불필요한 의료 행위를 줄인다면 사람들의 사망률을 오히려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적확한 통계자료임이 분명하다.
약이 아닌 먹거리를 소개하는 방송 전문 의사들의 아이러니
최근 대중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아주 다양한 건강-의학 관련 프로그램들이 다양한 대중 매체들에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아주 특이한 현상을 자주 보게 된다. 패널로 등장하는 소위 의학 전문가라는 양의사와 한의사 간에 동일한 문제 앞에 전혀 상반된 충돌이 잦은가하면 의사와 한의사란 분들이 최신 치료약에 대한 정보나 진술은 찾아보기 어렵고 무슨 영양학 강의나 식품 소개나 헬스 트레이너 마냥 운동 요법에 대한 설명으로 일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저명 소아과 의사인 R. S. 멘델존은 미국 의과대학에서 학부 4년 동안 영양학 강의는 겨우 3시간(3학점이 아님) 정도요 그것도 필수 과목이 아니라 (의사 면허 시험에 없는 과목이라) 의대생들이 영양에 대해 전혀 모르는 채로 의사가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미국 의학 제도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영양학과 식품학을 잘 모르는 의학 패널들이 소개하는 식품과 영양에 대한 언급을 듣다보면 식품과 영양과 환경과 화학을 전공한 신학자인 필자가 보기에 TV에 출연하기 위해 저분들이 얼마나 열심히 사전 공부를 해서 나올까 안쓰럽기조차 하다.
경제적 유익을 따라 발전되어 온 의료 행위
세속 의학은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그 치료법이 점점 더 고도화 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던 결국 현대 의학은 경제적 유익을 위한 쪽으로 만 발달되어 왔다. 좀 더 가난하고 소외 된 사람들도 경제적으로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치유 방법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 따라서 건강 진단법과 치유 방법은 고도화 되어 왔으나 경제적 부담도 만만치 않게 늘어난 것이 사실이다. 의학이 너무 전문 영역이라 대중들은 다른 선택의 여지없이 피동적으로 현대 의학에 의지할 뿐이다.
과거 다양하게 요긴한 치료제로 쓰이던 많은 약제들이 이제는 단순히 제품 단가가 너무 낮아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 하나로 메이저 제약 회사들이 생산을 포기함으로써 많은 환자들이 치료 효과가 뛰어난 값싼 약들을 구하지 못해 고통을 당하는 경우들이 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특별히 가난한 국가들의 고질병(에이즈, 말라리아 등) 치료에 있어 그런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항생제인 페니실린이나 페니실린 내성균에 유용한 메치실린, 암 환자 폐렴 치료에 쓰이는 박트림(주사), 결핵치료 2차 약인 사이클로세린, 주정맥치료제인 프로케인아마이드, 과거에 많이 쓰이던 맥소롱이나 네오마이신(수술전 장내부 살균) 등이 국내에 공급이 잘 안 되는 약들이다.
공급이 막힌 이유는 단순하다. 경제적 채산성 때문이다. 해마다 수십 만 명의 환자들이 이들 생산, 수입이 안 되는 특수의약품을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운다. 의사들도 국내 공급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나 구하지 못하는 요긴한 약들이 1천 종에 달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들 약들이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값이 싸 생산의 채산성이 없기 때문이다. 과거 한 때 약이 없어 병원약국에서 직접 만드는 원내제제가 2천여 종에 달하던 적도 있다. 이것이 바로 의료 현실이다.
경제적 탐욕은 과잉 진료를 부른다
경제적 유익을 위한 의사의 욕심은 과잉 진료로 이어질 유혹을 뿌리칠 수 없게 만든다. 변호사들이 소송을 권유할 수 있듯이 의사도 고의적으로 환자의 치료 기간을 과도하게 연장하거나 환자를 창출할 수 있는 직업이다. 여기에도 경제적 유익을 위해 도덕성이 결여된 의사의 과잉 진료나 철저하게 환원론적 기계론적 사고에 사로잡힌 의사의 과잉 의욕이 폐단으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저선량(低線量) 컴퓨터 단층 촬영(LDCT)’ 검사를 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위양성률(암이 아닌 데도 암같이 보이는 비율)에 대한 한 보고의 경우 LDCT 검사를 거쳐 폐암이 의심돼 흉강경 또는 개흉 수술까지 실시한 사람의 18∼28%가 폐암이 아니었다는 통계가 있다.
더욱 심사숙고하여 노련한 진료와 진단 계획을 진행하기를 전문 의사들에게 바라는 것은 무리일까? 첨단 기계도 이렇게 오류가 많다는 것을 전문가가 아닌 일반 환자들은 먼저 알아야 한다. 문제는 이런 ‘과잉 진단’이 쓸데없는 내시경 검사, 항암제 투약과 수술, 방사선 치료 등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 피해는 경제적 부담과 함께 고스란히 환자들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핀란드 정부는 40대 초반의 관리직 공무원 1200명을 정기검진과 함께 영양 상태, 운동, 금연, 금주 등 건강생활을 철저히 지키게 한 그룹(A)과 그렇지 않은 그룹(B)으로 나눠 15년간 비교, 관찰 실험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심장혈관 질환, 고혈압, 암, 각종 사망률 등의 모든 항목에서 B그룹이 A그룹보다 좋게 나왔다. 심지어는 와병 비관 자살률까지도 높았다. 이것이 ‘핀란드 신드롬(증후군)’이란 의학용어이다.
원인은 크게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철저한 검진에 따라 나타난 건강 이상에 대한 스트레스가 면역력을 떨어뜨린 경우였고, 다른 하나는 각종 투약이나 시술에서 오는 부작용이 치료 효과보다 더 컸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은 지극히 가난하고 연약한 자들이 경제적 고통 없이 치유 받고 자유함 얻기를 원하신다
예수님은 늘 약자의 편이셨다. 그는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리 나사렛의 서민들과 함께 하였으며 그들을 영육 간에 치유하였다. 그들은 예루살렘 사람들과 달리 가난하고 소외되고 병들고 때로는 귀신들리고 문둥병과 같은 치명적 질병을 지닌 서민들이었다. 오죽하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되물은 예수 제자도 있지 않았는가. 예수님은 오늘날에도 예수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예수 제자들이 지극히 가난한 자들과 어울리고 그들이 경제적 고통 없이 치유 받기를 원하신다. 바로 교회가 그 같은 일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반대로 오늘날 교회는 얼마나 갑질의 교회가 되어버렸던가.
성경적 전인 건강론은 일반 계시와 은총으로서의 현대 의학의 공헌을 일정부분 인정하지만 창조 신앙의 관점에서 반성할 부분을 찾는데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그 핵심은 연약한 자들이 어떻게 하면 물질적, 정신적, 심리적 큰 고통 없이 자유함을 누리고 치유 받을 수 있느냐에 집중해야 한다. 그런 치유법이 있는 가? 그런 국가적 제도적 장치는 어떻게 마련해야 하는가. 그런 것들이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져야” 하기에 거듭난 성경적 창조 신앙에 대한 관심을 통해 앞으로 이런 하나님의 바른 참살이 운동이 일어나고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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