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칼럼] 장로교회는 칼비니즘을 신조로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전 세계 장로교회가 헌법에 자신의 신조로 규정하고 있는 웨스트민스터신조는, 퓨리탄의 원조인 스코틀랜드의 장로교회들이 주도한 3년 동안에 걸친 논의 끝에 작성한 것으로 퓨리터니즘에 기반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합니다.
칼비니즘이 오직 은혜와 오직 믿음에 치중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퓨리터니즘은 은혜와 순종, 믿음과 행위를 균형 있게 가르치며, 이러한 내용이 장로교회의 신조인 웨스트민스터 신조에 반영되고 있습니다. "복음주의인 경건주의와 퓨리터니즘은 믿음에 의한 칭의교리를 전적으로 주장하였지만, 동시에 크리스천의 삶을 강조하였다. 크리스천의 행위는 진정한 믿음의 증거이며 결과이다. 신자의 삶 속에서 그러한 행위가 보이지 않는다면, 그들이 진정으로 칭의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Essentials of Evangelical Theology by Donald G. Bloesch Vol. I P.234)"는 것이 퓨리터니즘의 가르침입니다.
■ 칼비니즘이 주장하는, 행위와 구원의 관계
칼빈은 무엇이 영생을 얻게 하는가에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행위는 은혜에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뒤따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가 자신의 구원을 이루는 자가 아니고, 구원은 그들의 행위의 결과가 아니다. 그러면 무엇이란 말인가? 그들이 복음에 대한 지식과 성령의 조명에 의하여 그리스도와 교제에 들어가는 순간에 그들의 영생은 시작된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것이다'(빌 1:6) 그리고 그것은 의로움과 거룩함 가운데 그들이 하늘의 아버지를 닮게 되어, 타락한 자녀들이 아님이 증명될 때 이루어진다.(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CH XVIII, 1)."
칼빈의 위의 진술은 다음과 같이 풀이될 수 있습니다. "신자들의 선한 행위는 절대주권의 하나님께서 은혜로 신자들로 하여금 행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신 행위이다. 그러므로 행위는 하나님 은혜의 결과이다. 따라서 구원의 원인은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다. 한편 칭의로 시작된 구원은 선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신자에게 성화의 과정(칼빈의 지속적인 중생)을 거쳐 하나님을 닮는 열매를 맺게 하실 때에 성취된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칼빈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이지 인간의 행위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그들이 성화의 과정을 거쳐 하나님 닮음을 열매를 맺을 때에 구원이 완성된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칼빈은 칭의가 구원의 완성이 아니며, 성화가 구원 완성을 위한 필수 과정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은, 구원 완성으로 가는 필수 과정 속에서 인간이 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절대주권으로 은혜를 베풀어 인간으로 하여금 행하도록 한다고 함으로써,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어떤 행위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행위가 구원의 원인이 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구원의 원인이라고 주장합니다.
■ 행위와 구원의 관계에 있어서 퓨리터니즘과 칼비니즘의 차이
한편 퓨리터니즘의 정수인 웨스트민스터신조는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선한 행위는, 진실되고 살아있는 믿음의 열매이며 증명이다. 그리고 그러한 선한 행위로 신자들은 그들의 감사를 표시하고, 그들의 확신을 강화하며, 그들의 형제들을 교화하며, 복음의 선언을 빛나게 하며, 반대자들의 입을 막고,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의 작품으로 예수 안에서 창조된 그들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웨스트민스터 신조 CF XVIII, 2)."
"선한 행위를 할 수 있는 그들의 능력은 전혀 그들의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성령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들이 선행을 하도록 능력을 받기 위해서는, 그들이 이미 받은 은혜 이외에,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저희들로 소원을 두고 그들 안에서 행하시는 동일하신 성령의 사실상 영향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성령의 특별한 움직임이 없이는 어떤 의무도 실행하지 않도록 그들이 묶여 있는 것처럼 그들이 태만해져서는 안 된다; 그들은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은혜가 움직이도록 열심을 내야 마땅하다(웨스트민스터 신조 CF XVIII, 3)."
위의 두 항목을 살펴보면, 퓨리터니즘과 칼비니즘은 둘 다 성화의 열매인 '하나님 닮음을 맺음으로써 영생에 이름'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둘 다 신자의 선한 행위는 근본적으로 성령의 능력에 의한 것임을 인식합니다.
그러나 퓨리터니즘은 "성령의 특별한 움직임이 없이는 어떤 의무도 실행하지 않도록 묶여 있는 것처럼 그들이 태만해져서는 안 된다. 그들은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은혜가 움직이도록 열심을 내야 마땅하다"고 가르침으로써, 특히 다음의 견해로 칼비니즘과 궤를 달리하고 있습니다.
1. 인간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의하여 묶여 있지 않다. -인간의 자유의지 인정
2. 인간은 자기 구원의 완성에 일말의 의무를 가진다.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몫을 인정
3. 인간은 자기 구원 완성을 위하여 성령님의 은혜가 움직이도록 열심을 내야 한다. -인간의 행위가 필요함을 인정
이와 같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인정하고, 인간이 구원 완성에 있어서 담당해야 할 의무를 수행할 것을 격려하며, 자기의 구원 완성을 위하여 성령님의 은혜가 자기의 행위에 영향을 미치도록 열심을 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퓨리터니즘은, "예정으로 선택된 신자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의한 성도 견인으로, 자신의 구원에 있어서 수행해야 할 의무를 지지 않고, 하나님께서 반드시 영생을 얻게 해주신다"고 주장하는 칼비니즘과는 다른 구원 교리를 가르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은 독생자를 통하여 신자의 행위를 보신다
퓨리터니즘은 인간은 순종을 통한 선한 행위로 그들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며, 최선의 행위도 영생을 얻을 만하지 못한 것임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행위도 받아 주신다. 그의 독생자를 통하여 그들의 선한 행위를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많은 연약함과 불완전함을 가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신실한 행위를 기뻐 열납하시고 상을 주신다"고 웨스트민스터신조에서 가르칩니다.
"그들은 순종함으로 이생에서 가능한 최고의 높이에 도달할 수 있으나, 그들이 마땅히 이르러야 할 수준, 또는 하나님께서 요청하시는 수준에는 크게 미치지 못한다. 즉 그들은 그들이 의무적으로 행해야 할 의무를 다 행하지 못하는 것이다(웨스트민스터 신조 CF XVIII, 4)."
"우리의 최선의 행위로도 우리들은 하나님께 죄를 용서받을 만하거나 영생을 얻을 만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최선의 행위와 우리가 받게 될 영광 간의 지대한 불균형, 그리고 우리들과 하나님 간의 무한한 거리 때문이다. 우리의 최선의 행위로 우리는 우리들이 전에 지은 죄의 빚을 갚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을 때에도 우리는 우리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며, 우리는 여전히 무익한 종이다. 그리고 우리의 행위가 선한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성령으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최선의 행위가 우리가 행한 것일 때에는, 그 최선의 행위는 불결하고 하나님의 심판의 엄격함을 견디어 낼 수 없이 매우 연약하고 불완전하다(웨스트민스터 신조 CF XVIII, 5)."
"하나님 보시기에 이 세상에서 전적으로 나무랄 데가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신자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그들의 행위도 하나님께서는 받아주신다. 그의 독생자를 통하여 그들의 선한 행위를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많은 연약함과 불완전함을 가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신실한 행위를 기뻐 열납하시고 상을 주신다(웨스트민스터 신조 CF XVIII, 6)."
칼빈은 신자가 육신적으로 살면, 성령님께서 그에게 삶 속에서 고난을 주심으로 거룩한 삶을 살도록 만들어 간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하는 일은 고통을 감내하는 일에 불과하며, 그 고통을 감내함에 대한 상급은 있으나 인간의 행위는 구원과는 상관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칼비니즘과는 대조적으로 퓨리터니즘은 "하나님께서는 많은 연약함과 불완전함을 가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신실한 행위를 기뻐 받으시고 상을 주신다"고 가르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칼비니즘은 인간이 행위가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만 영생을 얻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데 비하여, 퓨리터니즘은 예수님의 공로를 보시고 칭의 구원을 주신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우리의 행위를 기뻐 받으시며 영생을 주신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성화의 열매를 맺음으로써 마침내 영생에 이를 수 있게 된다"는 로마서 6장 22절을 인용한 신조 CF XVIII, 2의 끝마디가 재확인하는 가르침입니다.
■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인간의 순종을 강조하는 '퓨리터니즘'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1백 년 동안 칼비니즘의 예정론과 성도견인론은, 오직 은혜와 믿음을 구호로 하는 개혁주의의 핵심 교리로서, 면죄부를 팔 정도로 극도로 타락한 로마가톨릭의 신인협력설에 대하여 투쟁하는 데 매우 강력한 무기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칼비니즘은 다른 한편으로 신자들에게 "나는 하나님의 예정에 따라 선택되어 구원을 받았으니, 성도 견인으로 반드시 천국에 간다"는 그릇된 확신을 갖게 하여, 육신 대로의 삶이 유행되게 하였습니다.
구원은 오직 은혜로써 충분하게 완성된다는 칼비니즘의 성도견인·구원보장론이, 은혜와 값비싼 제자도의 불가분의 관계를 와해시켰습니다. 한번구원영원구원론의 시작인 즉석 구원론이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졌습니다. 법적 선언인 칭의가 곧 완성된 구원인 양 여겨지고, 의로움은 생애에 걸친 성화를 통하여서만 성취되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바울 당시에도 칭의구원론을 신봉한 신자들에게 있었던 일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에게 로마서 6~8장에서 강력하게 성화필수구원론을, 12~13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산상수훈을 반복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퓨리터니즘은 종교개혁에 뒤따른 위와 같은 현실 속에서 상실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인간의 순종을 강조하였습니다. 퓨리탄들은 웨스트민스터신조를 통하여서도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름 없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어떠한 구원도 있을 수 없음'을 분명히 하였습니다(Essentials of Evangelical Theology by Donald G. Bloesch Vol.I P.207)."
■ 퓨리터니즘을 신봉하는 한국 장로교회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 장로교회의 헌법에 규정되고 있을 뿐 아니라, 지난 4백 년 동안 세계적으로 대부분의 교회들에게 신조로 신봉되어온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은, 칭의구원에 더하여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순종과 지적 믿음에 더하여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 신자에게 영생을 주게 된다는 성화필수구원론을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수교장로교회의 헌법은 퓨리터니즘의 정수인 웨스터민스터신조를 장로교회의 신조로 규정하고, 신조 제9항에 아래와 같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너희의 죄를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구주로 믿고 의지하여 본받으며, 하나님의 나타내신 뜻을 복종하여 겸손하고 거룩하게 행하라 하셨으니, 그리스도를 믿고 복종하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
이와 같이 장로교 헌법은 칭의-성화-영화의 구원관을 명약관화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헌법에 웨스트민스터신조를 교회의 신조로 규정하고 있는 모든 한국 장로교회와 교인들은, 칼비니즘과 개혁주의를 신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칭의구원을 얻은 신자는 성화의 과정을 통하여 영생을 얻을 수 있음"을 믿는 퓨리터니즘을 신봉해야 함을 자각해야 합니다.
구원보장·성도견인의 칼비니즘이 한국 장로교회의 상당 부분을 잠식하게 된 것은, 1960년 이래 물질주의가 교회에 만연해지고 기복주의가 활개를 치면서 시작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목회자들은 교회의 양적 성장에 급급하고, 많은 교인들이 돈복을 받기 위해서 교회를 출입하는 상황 속에서, 장로교회가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신자들을 배출하지 못하고, 믿기만 하면 무슨 짓을 해도 천국 간다는 구원파적 신앙을 가진 교인들을 양산한 것입니다.
한국 장로교회와 교인들이 자신들의 교회 헌법이 규정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을 정립한 퓨리탄의 후배들임을 자각하고, 퓨리터니즘의 구원 교리인 성화필수구원론을 신봉하게 될 때에, 교인들은 성령 충만을 간구함으로써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는 성화의 삶을 살아 주님의 뜻대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며, 세상은 그들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 김병구 장로는 싱가폴 장로교단 장립 장로, 시카고 '약속의 교회' 은퇴장로로서 바른구원관선교회를 섬기며 기독교신문 '크리스천투데이'에서 칼럼니스트로도 기고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영원한 성공을 주는 온전한 복음>(한솜미디어 펴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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