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신앙적 확신에 찬 이방인의 전도자였지만 그는 일상생활에서 아주 유통성이 있는 사람이었다. 지금 교회 안에서 교인과 교인, 중직자와 중직자, 중직자와 목사 사이에 그리고 교계의 지도자들 사이에 갈등과 다툼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대부분 자기 지식, 자기 주장, 자기 확신에 사로잡혀서 나를 내세우기 때문이다.
신앙의 선배 바울은 교회의 유익을 앞세우면서 자신의 지식이나 권리까지도 내려놓았다. 우리가 그를 본받는다면 교회 안에서 그리고 교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갈등이 해소될 것이다. 이제 그가 어느 정도까지 자신을 내려놓았는지 같이 생각해 보고자 한다.
바울은 자신의 삶 가운데서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이 어떤 것인가를 손수 보여주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바울의 칭의론에 집중하는 사람들은 바울이 성령의 열매, 다시 말해서 행위를 중시한 것을 간과하기 쉽다.
그러나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성령의 열매를 언급했고 고린도전서에서는 사랑을 강조했다. 그는 윤리적 삶의 중요성을 강조했을 뿐 아니라 자신이 그 윤리를 실천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바울의 가르침은 그의 삶과 일치했다.
그는 우상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우상에게 드려진 제물과 다른 고기가 차이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우상에 대한 습관으로 인해서 우상의 제물을 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것을 본 바울은 그들의 약한 양심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자신도 제물을 먹지 않기로 했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이 약한 이웃을 위해서 바울이 자신의 앎을 유보하는 것을 본다. 그는 지식을 지닌 사람이 독선적으로 행동하면 이웃의 마음을 상하게 해서 사랑의 덕을 세우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고전 8:1).
여기서도 바울은 사랑의 덕을 세우라고 권면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거리낌이 되는 경우 자신의 자유를 포기함으로써 사랑의 모범을 보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의 원칙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고 이웃을 위한 것이었다.
결혼 문제에서도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그의 윤리적 태도가 나타난다. 바울은 임박한 종말을 기다리면서 독신으로 살았다. 그는 결혼하지 않는 것이 복음을 위해서 더 잘하는 일이라고 믿었지만, 결혼하는 사람도 잘못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리고 결혼한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이혼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고 보았다.
이런 그의 태도를 우유부단하다거나 과단성이 부족하다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나를 내려놓고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남을 위해서 행동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 가르치기도 했다(고전 10:23~4).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서 교회로부터 사례비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사례비를 받지 않았다. 그는 모세로부터 시작해서 신약시대의 사도들에게 이르기까지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교회로부터 생활비를 받는 것이 용인되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장애가 되지 않게 하려고 그 권리를 내려놓고 천막 짓는 고된 일을 자원해서 했다.
그는 복음을 위해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고자 했다. 바울은 유대인을 얻기 위해서는 유대인 같이 되고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얻기 위해서는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 같이 되려고 했다. 그리고 약한 자들에게는 약한 자 같이 행동했다. 그는 때때로 자신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자신의 확신까지도 내려놓았다. 그는 오로지 복음과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자기가 가진 것을 내려놓았다.
은사의 다양성을 언급하는 데서 인간에 대한 바울의 폭 넓은 이해와 사고의 유연성을 엿볼 수 있다. 로마와 고린도에 있는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그는 몸은 하나지만 여러 가지 지체가 있어서 각기 기능을 발휘하는 것처럼, 각양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면서 협력할 때 교회 공동체가 온전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롬 12:3-8; 고전 12:4~31).
모두 사도일 수 없고 다 선지자일 수 없고 다 교사일 수 없다는 것이다. 로마교회와 고린도 교회에는 자기가 여러 가지 일을 도맡아 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에게 내가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교만을 내려놓으라고 권면했다.
사회인들은 교인들이 고집이 세다고, 양보할 줄 모른다고, 이해심이 없다고, 융통성이 없다고 말한다. 이렇게 교인들이 까다로워지는 것은 자신의 주장을, 확신을 내려놓지 않기 때문이다. 나를 내려놓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가정생활에서, 사회생활에서, 교회생활에서 다툼이 그칠 줄 모른다. 바울은 나를 내려놓으라고 권면하고 그 모범을 보여주었지만, 우리는 나를 내려놓으려 하지 않는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반복적으로 자기를 본받으라고 말했다(4:16; 11:1). 빌립보서에서도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3:17)고 말했다.
흔히 우리는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헌신한 것을 주목하거나, 그의 서신서들에서 칭의만을 강조하면서, 바울이 자신을 내려놓는 삶을 살았다는 사실은 눈여겨보지 않는다. 그는 이웃의 유익을 위해서 자신의 지식, 확신, 그리고 권리까지도 내려놓은 사람이다. 이웃을 위한 그의 삶은 바로 복음을 위한, 교회를 위한 삶이었다.
우리는, 바울이 교회들에 보낸 편지들에서 칭의 뿐 아니라 나를 내려놓으라는 그의 권면과 삶도 읽어내야 한다. 바울이 권면한 대로, 우리는 믿음의 선배 바울의 삶을 본받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글·사진=인류복음화신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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