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칼럼]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성곽 교회에 95개 논제를 붙인 날은 기독교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날이다. 루터의 95개 논제는 기독교의 가르침과 신앙의 실천에 있어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면죄부 판매를 비판하는 루터의 95개 논제는 사실 중세 후기 칭의론에 대한 비판이었다. 칭의론은 "구원을 얻기 위해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에 대한 답변이다. 중세 후기 교회 내에는 이러한 칭의론에 관한 상당한 혼란이 존재했으나 그 질문에 답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다. 도리어 중세 후기 교회는 이러한 칭의론에 대한 혼란을 면죄부 판매의 방식으로 악용하고 있었다.
이에 루터는 로마서 1장 16절-17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구원은 인간의 행위와 노력과 협력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만 가능하다는 점을 역설한다. 루터는 이러한 칭의 교리야 말로 교회가 서고 넘어지는 조항이라고 부를 만큼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제 그 종교개혁의 변화가 시작된 지 500주년을 한 해 앞둔 지금, 세계 개신교회들은 지나온 시간들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다시 한 번 제 2의 종교개혁의 불길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렇다면, 개신교회 중에서도 특별히 루터의 종교개혁의 유산을 직접 물려받은 루터교회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제 2의 종교개혁을 준비하며 내건 슬로건은 무엇일까?
세계루터교회협의회는 크게 두 기관이 있다. 하나는 독일과 유럽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루터교협의회(Lutheran World Federation-LWF)가 있고, 미국 미조리 루터교회 (Lutheran Church Missouri Synod -LCMS)를 중심으로 하는 국제루터교협의회(International Lutheran Council-ILC)가 있다. 또한 세계루터교회(LWF) 멤버이면서 미국 내 또 다른 큰 루터교단으로 복음주의루터교회(Evangelical Lutheran Church in America-ELCA)가 있다.
필자는 이 글에서 위 세 루터교회의 종교개혁 500주년 슬로건에 대해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기독교한국루터회(Lutheran Church in Korea-LCK)의 종교개혁 500주년 슬로건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1. 세계루터교협의회(Lutheran World Federation-LWF)
먼저 종교 간의 대화와 사회적 약자와 정의, 억압받는 자들에 대한 인권에 관심을 기울여온 LWF의 종교개혁 500주년 슬로건은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자유롭게 되었습니다.”(We are liberated by God’s grace)이다. 이것은 나미비아(Namibia) 빈트후크(Windhoek)에서 열린 세계루터교협의회 회의에서 중심 주제로 채택되었다.
LWF에 의하면, 루터 종교개혁의 핵심은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은혜로서만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으로 이것은 이신칭의 사상의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LWF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준비하면서 이 땅에 모든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으로 갈등과 불평등이 만연한 이 세상을 치유하는 책임있는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의 삶을 사는데 초점을 맞춘다. 기독교인들이 이러한 하나님의 선한 사역과 연관될 때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자유롭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 가지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슬로건에 “그리스도만으로”(Christ alone)의 용어가 빠진 점이다. 우리 믿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자유롭게 되지만, 그 은혜는 바로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이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이라고 루터는 강조한다. LWF가 슬로건에서 ‘그리스도를 통한’ 이라는 용어를 넣지 않는 데는 ‘종교간의 대화’를 중시하는 LWF의 신앙 노선과도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만으로”는 언제나 종교간의 대화에서 배타성을 갖는 용어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2. 미국 미조리 루터교회 (Lutheran Church Missouri Synod - LCMS)
보수적인 신앙적 색채를 띠는 미국 미조리 루터교회의 종교개혁 500주년 슬로건은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전부다”(It is still all about Jesus)이다. LCMS는 특별히 루터의 십자가 신학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하여 루터 종교개혁의 핵심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 이고, 그 분의 달려 돌아가신 십자가가 우리 신앙의 중심이고 반석임을 강조하며,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로고에 그대로 담았다.
LWF에 의하면, 슬로건에 ‘여전히’(Still) 라는 말을 넣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육의 옷을 입고 이 땅에 오셨고, 그 분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 죄인들과 함께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며, 이것이 바로 루터의 95개 논제의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종교개혁 500주년은 이미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는 십자가의 복음의 참된 의미를 다시 발견하는 일이고, 예수를 모르는 자들에게는 십자가의 복음이 전해지는 축제의 장이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LCMS는 “당신의 이웃과 조화를 이루라”(Stand with your community)라는 슬로건 아래 개 교회가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 사역을 독려하고 이에 대해 지원하고 있다.
LCMS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중심성과 복음 전파를 종교개혁의 핵심으로 강조함으로 루터의 종교개혁의 중요성을 오늘날 다시 한 번 되새기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종교개혁의 의미를 자칫 개인의 회심으로 제한해 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사실 영어의 개혁을 의미하는 ‘Reformation’이 한국어로는 종교개혁이라고 번역됨으로서 종교개혁을 단지 교회 개혁의 의미로 제한시켜 버렸다. 그러나 종교개혁은 단지 교회의 개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한 개인의 변화와 회심을 통해 사회 전체의 변화를 외치는 개혁이라는 점에서 LCMS가 향후 이러한 점에 더 노력을 기울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3.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 (Evangelical Lutheran Church in America-ELCA)
세계 루터교회 LWF의 회원 교단이자 다소 진보적인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의 종교개혁 500주년 슬로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롭고 새롭게 되었다”(Freed and Renewed in Christ)이다. ELCA는 이것이 1517년 10월 31일 루터의 95개 논제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이 주제를 루터는 1520년 “그리스도인의 자유”(The Freedom of a Christian, 1520) 를 저술하면서 다시 한 번 확언한다: “기독교인들은 모든 것의 주인이고,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한다: 동시에 기독교인은 전적으로 충실한 만물의 종이며 모든 이에게 예속되어 있다”
ELCA의 슬로건은 한편으로는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의 자유와 갱신을 강조하면서도, 다른한편으로 “행함이 있는 하나님의 은혜”(God Grace in Action)를 슬로건에 넣은 것도 눈여겨 볼 점이다. ELCA는 역사적으로 미국 LCMS의 보수적인 신앙 노선에 반발해 나간 루터란과 유럽에서 건너와 미국에 정착한 여러 루터교단들이 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ELCA는 신앙의 자유와 갱신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세계루터교협의회의 회원국으로 종교간의 대화와 약자에 대한 돌봄과 섬김, 사회 정의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ELCA의 슬로건은 이러한 교단적 배경과도 연관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ELCA의 슬로건이 루터 종교개혁의 정신을 담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피조물로서 다른 사람을 향한 섬김의 삶을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는 루터 종교개혁의 핵심인 칭의론을 약화시킬 위험성을 담지하고 있다. 즉 루터는 중세 후기 행함으로 구원을 얻으려는 당시 잘못된 구원론을 비판하며, 구원은 인간의 노력이나 행함이 아닌,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역설했는데, ELCA의 슬로건이 루터 종교개혁의 핵심인 칭의론보다 신앙의 갱신과 행함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4. 기독교한국루터회 (Lutheran Church in Korea)
종교개혁 500주년은 한국 개신교회, 특별히 기독교한국루터회에도 큰 의미를 갖는다. 미국 미조리 루터교회가 한국에 선교사를 파송함으로서 설립된 기독교한국루터회는 교리나 직제면에서 미조리 루터교회와 같이 다소 보수적인 색채를 갖는다. 또한 미조리 루터교회를 중심으로 모인 국제루터교협의회(International Lutheran Council)의 회원국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기독교 한국 루터회는 다소 진보적인 성향을 갖는 세계루터교협의회(LWF)의 멤버이기도 하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기독교한국루터회는 한편으로 그리스도 십자가의 중심성과 복음 전파를 강조하는 미국 미조리 루터교회와 신학의 노선을 같이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LWF 회원국으로서 사회정의와 약자에 돌봄 등의 다소 진보적인 목소리도 내야하는 상황 가운데 있다. 이는 기독교 한국 루터회가 신앙의 노선과 중심을 정하는데 있어 어려움과 혼돈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것은 기독교 한국 루터회의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로고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기독교 한국 루터회 종교개혁 500주년 슬로건은 “칠천만 동표여! 하나님께로 돌아갑시다” 이다. 김철환 총회장에 의하면, “진정한 개혁은 눈을 들어 이제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하나님 되게 하는 사건(Let God be God) 이야 말로 종교개혁의 거룩한 주제요 기도”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기독교 한국 루터회 내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회는 “다시 그리스도만으로”으로를 500주년 슬로건으로 확정했다. 한가지 안타까운 점은 슬로건에 대한 설명이나 해설이 없다는 점이다. 또한 교단의 정체성을 담아낼 수 있는 문구가 더 필요한 듯 보인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한 해 앞둔 이 시점에서 기독교한국루터회가 교단의 신앙노선과 정체성을 담아내는 슬로건과 함께 그에 대한 상세한 해설을 곁들인 로고를 잘 만들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지금까지 종교개혁 500주년 슬로건을 중심으로 세계 주요 루터교회들이 제 2의 종교개혁의 불길을 일으키는데 있어 그 강조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비록 각 루터교회마다 루터의 95개 논제와 500년전dp 일어난 종교개혁을 바라보는 상이한 관점이 존재하지만, 다시 한 번 교회가 개혁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믿는 자들이 새롭게 변화되어 이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루터교회들의 공통된 관심사인듯 보인다.
◆ 정진오 목사는… 루터 대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 신학과에서 석사와 박사를 취득했다.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 Research Fellow와 예일 신학대학원 Visiting Scholar를 거쳐 현재 미국 시온루터교회 (LCMS) 한인부 담임목사로 재직중이다. 연락은 전화 618-920-9311 또는 jjeong@zionbelleville.org 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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