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조은식 기자] 세계 신학계에서 한국적 신학으로 인정받았던 '민중신학'의 대부 心園 안병무 선생 20주기를 기리며 추모예배와 기념심포지엄이 개최됐다. 행사는 心園안병무선생기념사업회 주최로 16일 낮 향린교회에서 "기로에 선 한국교회와 민중신학"이란 주제를 갖고 열렸다.
서광선 박사(이화여대 명예교수)는 발제를 통해 민중신학의 기원을 설명하고, 오늘의 민중신학 현황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에 따르면, 민중신학은 1970년 11월 13일 청년 노동자 그리스도인 전태일의 분신 투쟁으로 말미암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시 서광선 박사를 비롯해 안병무, 현영학, 서남동 등이 함께 서울 YMCA 호텔방에서 신학을 논하는 모임을 가졌는데 사건이 일어났고, 그리하여 그날 저녁 내내 전태일이 누구며 그가 왜 분신자살하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민중신학의 신학적 학문적 기원에 대해서 서 박사는 "역시 안병무 선생의 강연, 1975년 3.1절 기념예배를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 이름으로 새문안 교회에서 개최했을 때, 그 동안 민청학련 사태로 감옥살이를 한 연세대학의 김동길 교수와 김찬국 교수를 환영하는 예배에 있다고 할 수 있다"면서 "안 선생은 그날 역사적인 강연에서 '민족, 민중, 교회'란 제목으로 민중신학을 선포했다"고 했다. 이 때 안 선생은 예수는 민중이고 오늘의 민중이 바로 오늘의 예수라는 것을 선포하면서 한국의 민중 상황을 성서를 통해 읽고, 성서의 민중 상황을 오늘 우리 한국의 민중 상황에서 읽고 해석했다고 한다.
이것에 대해 서 박사는 "책상 위에서, 강단에서만 떠드는 신학이 아니라 민중 상황 속에 뛰어 들어가, 민중과 함께 몸으로 실천하는 신학을 한 것"이라 말하고, "그러므로 민중신학은 처음부터 정치신학,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정치신학이었다"고 이야기 했다. 1970년대 박정희 군사 유신 정권은 민중신학과 민중신학자들을 빨갱이, 종북 좌파로 몰았지만 그것을 일축하면서 안 선생은 당시 이렇게 선언했다고 한다. "오클로스(예수는 당시의 민중을 오클로스라 했다)를 위한 사랑의 운동은 조직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희망하는 사회의 청사진은 그저 잘 사는 사회가 아니라 더불어 사는 사회여야 한다."
그러나 서광선 박사는 "이후 4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한국교회와 사회의 민중 상황은 변한 것이 없다"고 지적하고, ▶종교개혁500주년을 맞이하면서 한국교회가 개혁과 갱신을 이뤄야 한다 ▶한국교회가 한국의 정치 현실에 관심을 가지고 한국사회의 개혁과 정치적 부패와 무책임과 무능을 혁파해 나가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행사에서는 서 박사의 발제 외에도 오세욱(생명선교연대 부회장)ㆍ우성구(생명선교연대 총무), 이숙진(한국여성신학회 회장), 오세요(예수살기 간사) 등이 함께 발제하고 토론에 참여했다. 행사 전 예배에서는 김명수 목사(회장, 경성대 명예교수)가 "민중사건의 원형질"(눅6:20~21)이란 주제로 설교했으며, 황성규 목사(한신대 명예교수)가 축도했다. 안병무 선생 20주기 추모 성묘예배는 오는 19일 오전 11~오후1시까지 모란공원묘지 특3지구 84호에서 있을 예정이다. 문의: 010-4815-4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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