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칼럼] 장로교 각 교단의 총회가 통합 측을 위시해서 합동, 합신 등이 이번 주에 대부분 마무리 되었다.
통합 측 총회에서는 전 총회장들이 총대들 앞에서 교권과 금권에서 자유롭지 못했음을 회개 하는 모습은 전 회원들의 진한 감동을 주었다고 한다.
또한 기장 총회에서는 예상을 뒤 엎고 한신대 총장 서리 인준안을 부결시킴으로 교권에서 벗어나보려는 몸부림의 모습에서 새로운 희망의 새로운 싹을 볼 수 있었으며 감리교의 총회도 과거와는 달리 큰 잡음 없이 끝 난 것도 성숙한 모습 이라 볼 수 있다.
교단이 워낙 난립이 되어 그 많은 총회장들이 매년 정책을 쏟아 놓는데 결과는 ‘글세’이다.
이제 새로 선출된 지도자들에게 바란다. 지금 우리 사회를 보면 삶의 근본정신이 어떤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의문을 가지게 된다.
초대 교회는 그 시대와 사회에 새로운 정신적 기풍을 불러일으킨 것을 볼 수 있다. 교회는 지역 사회 속에서 참된 삶의 이념과 정신을 불러 일으켜 주어야 한다.
민주 사회 안에서는 참된 삶의 이념과 경제를 발전시키고 과학을 아무리 발전시킨다 해도 정신적인 참된 기반이 없다면 다면 그것은 모래위의 집과 같을 것이다.
집을 지을 때 그 기초돌을 어디다 어떻게 놓느냐에 따라 집 모양이 정해지듯이 머릿돌을 바 로 놓아야 한다. 그 다음 축조 공사가 진행 되듯이 하나님 나라를 이 세상 안에 건설함에 있어서 교회 자체가 하나의 머릿돌로서 제자리에 제대로 놓였느냐에 따라서 이 사회에 하나님 나라를 바르게 확장 되어 질 것이다.
이마 알려진 대로 우리 민족의 문화적 바탕은 종교였다. 고대에는 소위 민족 종교라는 샤머니즘이 짙게 깔렸었고 고대인의 생활을 종교화하다시피 했다.
우리에게 있어 종교 문화는 곧 민족 문화요 민족 문화의 뿌리는 바로 종교였다. 우리 민족 문화는 종교의 토양 속에서 자라 왔다. 종교는 이렇게 우리 삶과 같이 했고 활력소 역할을 감당해 오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런 종교가 세인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종교적 정신 풍토를 더욱 돈독히 유지하고 발전 시켜 민족 화합에 기여하고 나아가 인류의 공영에 이바지하기를 새로운 지도자들에게 바란다.
교회 안에서 분열 작용이나 하고 지도자답지 못한 자가 아무리 좋은 언어를 구사해도 응답이 없는 메아리에 불과 하기 때문이다.
공장에서 물건을 생산해서 창고에만 쌓아 두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꼭 필요한 수요 인에게 공급해 주어야 되는 것 같이 이 세상이 필요로 하는 역군이기를 소원 한다.
주님의 십자가는 장식으로 사용 되거나 묵상만 하고 찬양은 하면서도 막상 그 십자가를 져야 할 때가 오면 외면하는 지도자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 더 낳을 것이다
지도자들이 모이면 말은 풍성한데 어느 정치 단체나 사교 단체 같거나 어떤 사업 단체 나 기업 같은 실망감을 안겨 주는 일이 더 이상 없게 되기를 소원 한다. 내 나라 내 사회 내 이웃 내 민족이 한데 어울리는 하나님나라 건설을 위해 이 땅에 부패와 부도덕을 쓸어내고 아름다운 사회 건설에 지도자들이기를 소원한다.
끝으로 마땅히 지도자는 당연히 진리로 허리를 동이고 정의로 가슴을 무장하고 평안의 신을 신고 머리에는 구원의 투구를 쓰고 믿음의 방패와 성령의 검을 소유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 하게 가지는 것은 두 말할 필요 없다 그렇지 않으면 앞서 말한 모든 것이 이념 운동으로 전락 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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