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칼럼] 1995년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2010년까지 서울대학원 등 10여 개 유수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그러다 건강상의 이유로 강의를 그만두고 쉬고 있을 때 새로운 인생의 돌파구로 얼굴을 내민 ‘커피’…
대학 때부터 NGO활동(자원봉사)을 꾸준히 해 왔던 인연으로 한 자원봉사단체에서 운영하는 신촌의 커피숍에서 커피를 배웠다.
처음에 그곳 직원들이 ‘대학 교수까지 한 사람이 이런 것 할 수 있겠느냐?’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나는 출근 첫날 무려 3시간 동안 화장실 청소를 했다. 몇 년 동안 청소하지 않은 찌든 때를 말끔히 씻어 냈고 그 모습에 감동을 받아 나를 받아 주었다. - ‘야전(野戰)에 나갈 때는 '계급장'만 뗄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신촌에서 커피숍 매니저 일이 어느 정도 손에 익었을 즈음 ‘불어성서강독’을 처음으로 시작했다. 사실 이 강좌를 구상하던 시기가, 그러지 않아도 파란만장했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 중 하나였다. 너무 거창한 비유가 될 지도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성궤(聖櫃)를 앞세우고 전투에 나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으로 이 강좌를 구상했다. ‘왜 사서 고생하느냐?’는 주위 사람들의 만류를 뒤로 하고 매주 토요일 아침마다 평소보다 2시간 일찍 출근하여 강의를 했다. 몸은 천근만근 힘들었지만 영적으로 정말 행복했던 순간들이었다.
그러면서 “이 강좌로 어떠한 금전적 이득을 취하지 않겠습니다.”고 서원기도를 드렸다. 그러나 그 곳은 내 카페가 아니었기에 수강생들에게 강의 1회당 5천원을 거두어 카페 금고에 입금을 했다. 금고에 돈을 입금할 때마다 “내 커피숍을 주시면 무료로 성서강독을 열겠습니다.”라고 서원기도를 드렸다.
2013년 8월 5일 목동에 비록 7평(약 23.1 ㎡) 규모의 조그만 보금자리이지만 마침내 꿈에 그리던 내 커피숍, ‘김박사커피’를 오픈했다.
항상 마음속으로 ‘불어성서강독’을 다시 시작하겠다고 다짐을 해 왔지만 커피숍의 다른 설비와 메뉴들이 더 급해 보여 차일피일 미루다 그해 가을 강의를 다시 열었다. 물론 이 곳은 내 카페이므로 ‘완전 무료’일 뿐만 아니라 ‘핸드드립커피’를 대접하며 강의를 열게 되었다. 비로소 내가 서원했던 그 ‘불어성서강독’이 완성된 순간이었다. 비록, 강좌는 수강생들의 해외파견, 이사 등으로 4개월 정도 지속하다 폐강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3년이 지난 지금 ‘김박사커피밀’를 좀 더 넓은 공간으로 확장•이전하기 위해 간절히 기도드리고 있다. 더 넓고 쾌적한 공간에서 더 많은 수강생들을 모시고 ‘불어성서강독’을 다시 강의할 날을 기도 속에 그려 본다.
■ 김종규 칼럼니스트는… 고려대학교에서 불어불문학을 전공(학‧석사)하고 캐나다 Laval 대학 대학원에서 불어학(언어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서울대학원 등 10여 개 유수대학에 출강하여 많은 제자들을 배출하였다. 현재 평화공동체 <철들지않는사람들> 사무국장과 공정무역 유기농커피 <김박사커피밀> 대표로서 고객들을 섬기고 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