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성남시 단대동 대로변 옆 낡은 건물 위로 노란 샬롬교회의 간판이 눈에 띄었다. 바로 차인표의 ‘구두닦이 멘토’ 김정하 목사가 시무하는 개척교회다. 문을 열자 휠체어에 앉은 김정하 목사와, 아내 최미애 전도사가 마치 가족처럼 따뜻한 미소로 기자를 맞았다.
잠시 후 루게릭병(근위축성측색경화증)에 걸려 말과 행동에 불편함을 겪고 있는 김정하 목사가 무언가 말을 하자 최미애 사모가 “주방에 들어가 차라도 한 잔 하자고 하시네요”라고 해석해 전했다.
낡은 냉장고, 싱크대, 세탁기, 탁자, 그릇, 주걱. 주방 그 어디에도 ‘새 것’이라곤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최미애 사모는 “목사님은 본인 것은 아무 것도 없어요. ‘하나님을 위해서 쓰는 것만이 내 것’이라는 청지기 정신이 있기 때문이지요. 방에는 장롱도 없고 침대도 신발도 모두 주워서 쓰다가 떠날 때는 남 주고 간다고 하세요. 이미 모든 장기와 시신까지도 기증해 놓은 상태입니다.”라고 했다.
최미애 사모는 치료를 위한 대체식품을 물에 타서 김 목사에게 건넸다. “미국 달라스에서 온 제품인데 40일 오전 금식기도하는 가운데 마지막으로 응답받은 거에요. 이 제품이 와서 많이 좋아지긴 했는데, 이마저도 연아장애(음식섭취 곤란)가 오면 위에 호스를 끼워서 먹여야 해요. 아직은 이렇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고 하네요. 오늘 감사하면 되는 것이죠.” 서로를 바라보는 부부의 눈빛 속에서 굳건한 신앙과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기자는 김 목사 부부와 차를 마시며 잠시 담소를 나눴다. 최미애 사모는 간증집 ‘지금 행복합니다(청우)’를 건내며 “그저 평범한 지난날의 이야기를 적은 책인데 사람들이 읽고 눈물이 난다고 하더라구요. 기도해서 응답 받았던 일들, 삶 속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에요.”라고 소감을 전했다. 기자는 김정하 목사에게 신앙과 삶에 관한 질문을 건냈다. 다음은 김정하 목사와의 일문일답.
-힘든 몸을 이끌고 목회자의 삶을 살게 된 계기를 듣고 싶습니다.
“어릴 적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할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가정의 중요성을 크게 느꼈어요. 샬롬교회는 성도 모두가 가족이라고 여기고 있어요. 혼전 임신으로 낙태하려 했던 아가씨가 현재는 세 아이의 엄마가 됐고, 남편도 우리 교회에 나오고 있어요. 알콜중독자, 자살시도자가 술담배 끊고 반듯한 직장에 다니게 됐지요. 광주에서 오신 한 할아버지는 교회 청소와 차량봉사도 하고 있습니다. 모두들 아픔이 있는 분들이라 여기가 집이라고 생각하고 명절 때도 여기로 모입니다. 목사님이 낫기 전에는 어떤 곳도 갈 수 없다고 해요. 높고 낮고 이런 것이 없고 그냥 형 동생 같아요. 어떤 분은 조폭이라는데 술을 사들고 와서 본인은 술을 먹고 저는 음료수를 마시며 대화한 적도 있어요.”
인생은 공수래 복수거, 복받고 하나님 앞에 가는 것
의사가 루게릭병 걸린 것 알려주자 “할렐루야” 외쳐
-목사님은 ‘믿음’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믿음은 어떤 어려움과 고난이 와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잘 될 때보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하나님과 더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에 고난은 굉장히 큰 유익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건강할 때는 감사하지 못했던 것을 장애인이 되고 나서 감사할 수 있게 됐어요. 사람들은 ‘목사가 왜 병에 걸리고 좋은 일 하는데 이렇게 어려우냐’고 묻는데, 저는 그럴 때마다 ‘왜 내가 받은 축복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않는 건가요’라고 반문했어요. 저는 받은 것이 많기 때문에 감사할 것도 많습니다. 전기도 문화적 혜택도 없는 강원도 산골짜기 오두막에 있을 때에도 대통령과 재벌이 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주님과 함께 하니까 진흙집도 천국 에덴동산처럼 여겼어요. 저는 남이 안 살아본 삶을 살았기 때문에 지금 현재 만족하면서 미련없이 살고 있습니다.”
-목사님이 받은 축복은 무엇이며, 또 가장 기쁘고 행복할 때는 언제입니까.
“작년에 2만원 주고 구두통을 만들었는데 한 해 동안 3천배의 축복을 받았어요.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3천배의 축복을 흘려보낸 거에요. 질병 가운데서 느끼는 마음의 평안과 위로도 큰 축복이에요. 이런 상황 가운데서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불교에서는 인생을 ‘공수레 공수거’라고 하는데 저는 ‘공수레 복수거’라고 말합니다. 복을 받고 하나님 앞에 가는 거에요. 가장 기쁠 때는 한 영혼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 영혼이 변화되어 주님을 만날 때입니다. 한 영혼이 중요하지 돈이 중요하지 않아요. 돈은 잠시 머물렀다가 가는 것입니다. 돈을 쥐고 있으면 자꾸 나쁜 마음을 갖게 되니까 빨리 보내야 해요. 제일 무서운 것이 바로 돈입니다.”
-병원에서 루게릭병 선고를 받았을 때 하나님이 원망스럽지 않았는지요.
“저는 예수님 믿기 전에도 어떤 어려움이 오면 앞으로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올 것이 왔구나. 더 좋은 일이 오겠지’라고 마음 먹지요. 예수님을 믿고나서 어려움이 닥쳤을 때에도 ‘하나님이 나에게 광야훈련을 시켜 정금같이 쓰려는 것이구나’라며 감사했어요. 병원에서 검사하던 날 의사선생님 차트에 ‘ALS’라고 적힌 것을 보고 인터넷에 검색했는데 루게릭이라고 뜨더군요. 의사선생님 선물까지 준비해서 병원에 찾아갔습니다. 병명을 말하길 망설이던 의사선생님이 루게릭병이라고 하자 ‘할렐루야’를 외쳤어요. 생명기간을 알려주셔서 감사하다며 선물까지 건넸죠. 3년에서 5년 만에 죽는 병이기 때문에 오히려 죽음을 미리 알고 준비할 수 있어 감사했어요. 어차피 모든 인간은 시한부 인생인데 조금 길고 짧은 것 뿐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목사님의 모습이 참 놀랍습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이겼듯이 우리도 죽음 앞에서 아무런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살려고 바둥바둥하면 고쳐주겠다고 오라는 곳이 얼마나 많겠어요. 하나님 영광 드러내는 것으로 이어가야지 안 그러면 여기저기 끌려다니다가 끝나는 거에요. 빌립보서 1장 21절에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는 구절이 나와요. 내 안에 주님이 계시니 죽는 것도 유익하다면 그 방법을 거부할 수 없는 거죠. 그러니 평안하게 사는 것입니다. 1분을 살아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죽는 것이 우리 인간의 존재 목적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차인표의 멘토는 과찬… 저의 멘토는 손양원 목사님”
-차인표씨가 어제 방송에서 목사님을 멘토로 꼽았는데 소감을 듣고 싶고, 또 목사님의 멘토는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차인표씨가 저를 존경한다고 했는데 과찬입니다. 세상에 저보다 훌륭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아프니까 힘주시려고 하신 말씀 같네요. 저는 존경받을 만한 인물이 아닙니다. 그분이 훌륭하신 것이죠. 지금은 돌아가셨는데 김석범 장로님이란 분이 저를 많이 사랑해 주셨어요. 그분은 기도도 많이 하시고 모든 사람들에게 남김없이 베풀어 주시는 분이셨어요. 그리고 목사님 중에서는 손양원 목사님을 굉장히 존경합니다. 저는 손 목사님의 발뒤꿈치의 때보다도 못하며 그 분 그림자 옆에도 서지 못합니다. 그런 분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있는 것이죠. 정말 손 목사님처럼 살고 싶다는 소망이 있어요.”
-나눔을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신지요.
“우리 인간은 한 마디로 욕심덩어리입니다. 죽을 때까지 만족이 없어요. 재벌에게 가서 돈이 많으니 그만 벌라고 하면 거절하고 끝까지 벌려고 할 것입니다. 비우고 나누면 하나님이 체워주시는 세계를 보지 못해요. 부자도 나누지 못하면 거지이고 가난한 자도 나누면 부자입니다.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야 해요. 요즘은 사람들이 이기적으로 살아가는데 가진자가 나눌 때 세상은 아름다워집니다. 성경 말씀에도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고 나와 있잖아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지요.
“올해가 결혼 25주년째인데 사모님이 부족한 남편 만나서 고생 많이 했어요. 주 안에서 두 아이들 잘 키워줘서 참 감사하고, 25주년 동안 제주도 한 번도 못 갔는데 올해는 같이 갑시다. 꼭 여행을 시켜주고 싶어요. 내가 신앙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을 때 당신의 기도로 여기까지 왔고, 어려운 개척교회 목사 내조하느라고 고생 많았어요.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꼭 상급을 주실 거에요. 그리고 컴패션을 통해 해외아동들을 후원하고 있는데 아동지원이 활발해졌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김정하 목사는
1959년 강원도 삼척에서 태어나 중학교 졸업 후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인해 양복점 점원, 공장 노동자, 막노동꾼, 선원, 출판사 외판원, 리어카 노점상 등의 일을 하게 됐다. 이후 주경야독으로 9년만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8년만에 방송통신대학 중어중문과를 졸업했다. 서울장신대 신학과와 신대원을 나와 2006년 샬롬교회를 개척하여 목회하던 중, 한국컴패션 후원자가 되어 틈틈이 구두를 닦으며 모은 돈으로 제3세계 어린이들을 후원했다. 김 목사는 2010년 10월 루게릭병 진단을 받고도 변함없이 전도와 나눔의 열정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2011년 가을에 안수를 받고 목사가 됐다.
간증집 ‘지금 행복합니다’의 수익금은 해외아동지원을 위해 사용되고 있으며 김정하 목사와의 대화는 (http://cafe.daum.net/cfck)에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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