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김규진 기자] 한국민중신학회가 4일 저녁 서대문 이제홀에서 모임을 개최한 가운데, 정경일 원장(새길기독사회문화원)이 "자비의 사건: 우리는 서로를 구원 한다"란 주제로 발표하면서 초대교회와 같은 '자비로운 나눔'이 현대사회 경제 불평등과 모순을 극복하는 해답임을 역설했다.
먼저 정경일 원장은 큰 인기를 모았던 '응답하라 1998'을 통해 과거 정 겨웠던 시대를 추억하고, '아파트 사회' '무관심의 세계화' '물질의 노예' 등으로 상징되는 현대사회 경제 불평등과 모순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했다.
이어 타자의 고통에 반응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연민'(pity)과 '자비'(compassion)에 대해 "연민에는 주체와 객체 사이에 심리적 물질적 사회적 거리가 있는 반면, 자비에는 그런 거리가 없다"면서 "자비는 감탄사가 아닌 동사로, 타자의 고통을 없애기 위해 행동 한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연민과 자비의 또 다른 차이는 책임성"이라며 "책임지지 않는 연민과 달리 자비는 타자의 고통에 책임 있게 응답하고 그 고통의 해결을 위해 책임 있게 참여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정 원장은 "자비가 연민과 자선보다 좀 더 고통 받는 자의 관점에 서는 것이 사실이지만, 자비도 그 자체만으로는 무자비의 체제에 위험이 되지 못 한다"면서 "자비가 무자비의 체제를 위협하게 되는 것은 두 가지 요인과 연동될 때인데, 고통의 구조적 원인을 묻는 '사회적 분석'과 고통의 구조를 없애는 '정치적 실천'이 그것"이라 했다.
이어 그는 민중신학자 서남동을 언급했다. 서남동은 가난한 자에 대한 시혜적 자선사업이 구조적 가난을 연장하고, 심화시킬 수가 있다고 봤다. 때문에 서남동은 가난 해결을 위한 '새로운 처방'과 '새로운 방식의 연대'를 요청했는데, 그것은 '메시아 정치'의 이데올로기와 프락시스(실천)이다. 메시아 정치는 도덕적 자선이나 종교적 의례가 아닌, 정치적 실천을 통해 구체화되는 것을 말한다.
정 원장은 "이렇게 사회적 분석과 정치적 실천을 만나면 자비는 저항이 된다"고 말하고, "고통의 구조적 원인을 밝히는 사회적 분석과 그 원인을 없애는 정치적 실천을 용납할 만큼 '좋은 자본주의'는 없기 때문"이라 했다. 더불어 "이런 저항으로써의 자비는 위험한 것이 되기에, 무자비의 체제는 자비로운 저항, 혹은 저항적 자비를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 한다"고 설명했다.
여기에서 정 원장은 한 단계 더 나아갔다. 자선이든 자비든, 그것을 베푸는 주체와 베풂을 받는 객체가 분리되면 둘 사이에 위계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베푸는 자는 우월감을 가질 수 있고, 베풂을 받는 자는 열등감에 빠질 수 있다. 그는 "저항으로써의 자비도 마찬가지"라며 "자신을 위해 대신 저항해 주는 구원자에게 의존할수록, 고통 받는 자는 구원의 수동적 대상으로 남게 된다"면서 "역사가 가르쳐 주는 것은, 모든 고통을 대신 해결해주는 강한 메시아는 없다는 사실"이라 했다.
안병무는 "기적이나 구원은 예수가 외재적 메시아로서 일방적으로 베풀어준 것이 아닌, 민중이 요청하고 그 요청에 예수가 응답하면서 일어난 상호적 메시아 사건"이라 말한다. 민중이 없었다면 예수 사건, 메시아 사건도 없었을 것이고, 때문에 고통의 담지자인 민중은 구원의 대상이 아니라 구원의 주체라는 말이다. 정 원장은 "하느님은 고통 받는 자의 신음소리를 통해 세상으로 들어오고, 인간은 그 신음소리에 응답함으로써 하느님에게로 들어가는 것"이라며 "고통 받는 타자에 대한 관심과 자비는 구원의 문을 여는 사건"이라 설명했다.
이어 정 원장은 "구원을 이처럼 관계론적으로 이해하면, 자비를 실천하는 자의 우월감이나 자만이 있을 수 없다"고 말하고, "오히려 자비를 요청하는 자가 자비를 실천하는 자에게 사람됨의 기회를 줌으로써 구원하기 때문"이라며 "자비의 사건은 고통 받는 자와 그 고통에 참여하는 자 모두를 구원하는 사건"이라 했다. 자비를 실천하는 자와 자비를 요청하는 자 모두의 인간성을 실현하는 구원의 사건으로, 이러한 자비 사건에서는 서로를 구원하는 주체들이 있을 뿐 구원 받는 객체는 없다는 것이다.
발표를 마무리하며 정 원장은 "'나누어 준다'는 말보다 '나눈다'는 말이 더 옳다"는 안병무의 말을 인용했다. 정 원장은 "자비는 베풀어 주거나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닌, 서로 나누는 것"이라며 "내 것인 물질을 너에게 나눠 주는 것이 아닌, 하느님의 것인 그래서 모두의 것인 물질을 서로 나누는 것"이라 했다. 자비는 기쁨과 슬픔을 서로 나누는 마음, 비인간화와 고통과 인간화의 구원을 서로 나누는 관계론적 사건이란 말이다.
때문에 정 원장은 "그런 서로 자비의 구원 사건을 오늘의 무자비 체제에서 다시 경험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미래의 메시아를 기대하는 것이 아닌, 과거의 메시아 사건을 기억하는 것"이라 했다. 그는 '행2:44~46'을 인용하며 "무자비의 제국에 자비의 나눔으로 저항했던 예수 공동체의 기억"을 말하고, "그 기억을 오늘 다시 사건화, 현재화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서로를 구원할 수 있다"고 이야기 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