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김규진 기자] '핵없는 세상을 위한 한국그리스도인연대'(이하 핵그련)가 후쿠시마 5주기, 체르노빌 30주기를 맞아 11일 오후 2시, 광화문 원자력안전위원회(KT 본사) 앞에서 제4회 탈핵연합예배를 드렸다.
교단 및 기독교 환경운동 단체와 YMCA, YWCA 등으로 구성된 핵그련 중심으로 드려진 이번 탈핵연합 예배는 특별히 후쿠시마와 체르노빌 등을 통해 경험한 핵발전소 사고의 위험성과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기억하면서, 핵 없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위해 함께 예배를 드렸다.
신미숙 목사(핵그련 집행위원장,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총무)의 인도로 드려진 1부 예배의 시간에는 원영희 부회장(한국YWCA연합회)이 기도하고, 권해민 간사(한국기독교장로회 청년회전국연합회)가 성경봉독을 한 후 김경태 목사(핵그련 교회위원회 위원, 부산NCC총무)가 설교했다.
이어 참석자들은 "핵사고로 고통당한 모든 희생자와 피조물들을 위한 기도"(안홍택) "핵 없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위한 기도"(양재성) 등을 함께 드렸으며, 이세우 목사(NCCK 생명윤리위원회 부위원장)의 파송의 말씀 및 축도로 예배는 마무리 됐다.
이진형 목사(핵그련 집행위원,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의 사회로 진행된 2부 다짐의 시간에는 이정기 목사(청년외침, 양평장로교회)가 특송을 하고, 한정순 회장(원폭환우회 명예회장)과 황분희 씨(경주 월성원전 인접 지역 주민)가 증언을 한 후 참석자들은 핵 없는 세상을 위한 다짐의 행동과 2016년 탈핵주일 공동기도문을 낭독하기도 했다.
한편 탈핵주일 예배는 2012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위협하는 핵(원자력)의 확산을 지양하고, 핵 없는 세상을 향해 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신앙 양심에 부합하는 일이라 믿으며,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한 3월 11일 직전 주일을 ‘탈핵(핵 없는)주일’로 제정한 이래 핵그련을 중심으로 매년 드려져 왔으며 올해로 4회째를 맞이했다. 다음은 탈핵주일 설교 전문.
[2016년 탈핵주일 설교] "하느님의 눈물"
백성들과 여자들이 큰 무리를 이루어서 예수를 따라 가고 있었는데, 여자들은 예수를 생각하여 가슴을 치며 통곡하였다. 예수께서 여자들을 돌아다보시고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두고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두고 울어라. 보아라, '아이를 배지 못하는 여자와, 아이를 낳아 보지 못한 태와, 젖을 먹여 보지 못한 가슴이 복되다' 하고 사람들이 말할 날이 올 것이다. (누가복음 23:27-29)
그리스도교는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시는 피조물인 인간들의 고통과 아픔을 알아 주시고 함께하시며, 나아가 그 아픔과 눈물에 참여하신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그 신적인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온전히 알려졌다고 믿는다. 이렇게 함께 아파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오늘도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모든 사람들과 또한 당신께서 지으시고 기뻐하셨던 온 피조세계 속에 임재하시고 드러 나는 현재 진행형의 사랑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인류와 온 피조세계의 아픔과 눈물 가운데 현존하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아픔과 눈물을 돌아보시고 함께하시듯, 그 사랑을 덧입은 그리스도인들도 현존하시는 하나님의 아픔과 눈물을 알아주고 돌아보며 함께하는 것. 그것이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인 것 또한 자명한 일이다. 세상은 그 태초에부터 하나님께는 사랑인 동시에 아픔이었다.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창세기의 그 첫 부분들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다. 하나님의 첫 아픔과 눈물의
이야기는 에덴을 상실하게 된 실낙원의 이야기에서부터이다.
다분히 상징적인 이야기인 이 실낙원의 이야기를 통해 성서가 우리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평화와 조화의 세상, 신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는 세상을 파괴했던 힘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은 자신의 살붙이인 인간을 그 낙원으로부터 분리시켜야하는 커다란 아픔이요 눈물이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인간 스스로 하나님과 같이 되겠다는 탐욕이요 오만이었다. 또한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그 모태인 하나님, 그 형제인 자연과 경쟁해서 이기겠다는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그릇된 판단이 가져온 필연이었다. 하나님의 아픔과 눈물의 근원, 그리고 그 지속되는 아픔과 눈물의 역사의 시초를 성서는 에덴의 이야기를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성서 전체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창이며, 인류의 모든 역사를 바라보고 있는 성서의 눈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께서 인간과 인간 공동체를 바라보시는 시각은 어쩌면 아픔과 눈물일 것이다. 그것도 가슴이 시리도록 아픈 눈물일 것이다. 평화와 조화, 온 생명들의 아름다움이 어우러져야 할 하나님의 세계가 끊임없이 파괴되고 황폐해져가는 것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눈에 서려있을 그 눈물을 볼 수 있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눈물을 생각하며 함께 아파하고 눈물 흘리는 것. 그것이 오늘의 세계와 시대를 살아가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지녀야 할 마음이다. 또한 그러한 하나님의 눈물에 참여하는 것이 시대와 세계의 구원을 위한 길이 될 것이다.
2011년 3월, 우리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바벨탑의 신화가 예측 못한 사건으로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똑똑히 목격하였다. 진도 9.0이 넘는 대지진에 이은 엄청난 쓰나미의 위력 앞에 그 대단했던 인간 문명의 상징과도 같았던 핵발전소들이 연이어 폭발하고 노심이 녹아내리는 대 재앙을 낳고야 말았다. 물론 이러한 일들이 발생할 확률은 천문학적인 소수점을 찍어야하는 희귀한 일임이 분명하다. 그러기에 더욱 안타깝기도 하고 희생당하신 분들과 지금도 고향으로 귀향하지 못하는 많은 주민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기도 하다. 가끔씩 핵발전소 사고 이후 후쿠시마 아이들에게서 갑상선질환이 큰 폭으로 상승했다는 등의 뉴스라도 들을 때면 아프고 민망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기도 하다.
그래도 아픔과 눈물에는 세월이 약이라고들 한다. 시간이 지나면 아픔도 치유되고 상처도 아물고 고통도 잊혀지는 것이란다. 그래서인지 당사국인 일본에서도 핵발전소를 다시 가동한다고도 하고, 국내에서도 일본산 수산물이 많이 수입되어 밥상을 장식한다는 소식들도 들려온다.
“그래 벌써 5년째인데 이제는 치유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때도 되었겠지....” 하는 생각에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동북헬프’ 라는 기독교봉사단체를 세우고 핵사고의 후유증에 시달리는 주민들을 지원해 오고 계시는 동북헬프의 사무국장이신 가와카미 나오야 목사님께 근황을 여쭈었다.
나오야 목사의 편지는, “5년의 세월... 치유되고 잊혀지겠지... 이제는 일상으로... ” 이러한 생각들을 갖고 있던 나를 부끄럽게 하기에 충분한 이야기들이었다. 후쿠시마 핵사고의 피해는 현재 진행형이고 그것들을 덮어버리려고 하는 흑암의 세력들의 활동도 현재 진행형이며, 또한 그 아픔을 끌어안고 치유하고자 눈물 나는 현실을 함께 아파하는 이들의 봉사도 현재 진행형이었다. 더욱이 권력과 세월의 무게까지 견뎌야하는...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 울어주어야 한다면, 바로 이들은 가장 적절한 우리의 이웃이지 않을까?...
예수께서 헤롯과 빌라도에 의해 정죄를 받으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를 오르신다. 그 뒤를 많은 사람들의 무리가 따르는데 성서는 특히 예수님을 위해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 왔다고 전한다. 그 때 예수께서 그 들을 향해 주신 말씀이,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라는 것이었다.(28절)
뒤 이어 나오는 말씀들을 고려할 때 이 말씀은, 지금 내가 당하는 아픔과 고통은 오히려 작게 느껴질 더 큰 고통과 눈물의 대재앙이 너희 자신들과 자녀들에게 닥치게 될 것이다. 그 대재앙에 직면한 너희 자신과 너희의 자녀들을 위하여 슬픔과 애통함을 가져야 한다라고 요청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더 아파하시고 눈물 흘리시는 일은 대재앙에 직면한 너희와 너희 자녀들의 일이라는 말씀이시다.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예기치 못한 대재앙은 많은 사람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큰 상처들을 남겼다. 그리고 그것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며 끝을 알 수 없는 재앙이다. 또한 그것은 단지 후쿠시마 지역 주민들, 일본인들만의 재앙이 아니라 전 지구적인 재앙이다.
핵발전소는 인간의 탐욕과 오만이 만들어낸 가장 결정적인 재앙의 물건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대적하여 이기고자 하고, 경쟁해서 이기고자하는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욕구의 산물이요 상징물이다. 후쿠시마의 현재는 이러한 인간의 끝없는 탐욕이 낳을 인류의 미래가 어떠할지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무엇보다 후쿠시마의 주민들과 피폭으로 고통당하는 이웃들의 아픔과 눈물에 주목해야 한다. 그 커다란 대재앙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이 고향과 정든 땅을 도망치듯 나와서 여전히 눈물과 아픔으로 하루하루를 살아 가야하는 그 이웃들의 눈물을 기억하여야만 한다. 그리고 대재앙의 참혹함 속에 여전히 아파하고 슬퍼하는 그 눈물 속에, 지금 함께 아파하시고 눈물 흘리시는 하나님의 눈물을 보아야만 한다. 그들이 흘리는 눈물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며, 오늘 우리가 함께 아파하고 울어야만 할 현실이기 때문이다.
2016년 3월 현재 한반도는 북한의 수소탄 실험이후 전개된 신냉전 국면으로 파국에 가까운 군사적 대치국면을 지나가고 있다. 물론 북한의 핵문제도 중요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후쿠시마의 교훈은 한반도 남쪽에 사는 우리 자신들과 우리의 자녀들의 문제라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지난 2015년 고리1호기라는 노후 원전의 폐로 결정으로 우리 땅의 핵문제는 분명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이러한 결과를 만들기까지는 핵발전소 자체의 위험성보다는 ‘노후’ 라고 하는 설계수명에 더 큰 초점이 맞춰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핵발전소는 그 자체가 위험하고 반생명적이며 반 신앙적인 것이라는 사실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보다 이 시대와 세계 속에 여전히 흐르고 있는 하나님의 눈물이 주목하여 머물고 있는 현실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권정생 선생님의 동화 ‘하느님의 눈물’(도서출판 산하)의 주인공인 눈이 노랗고 털빛도 노란 돌이 토끼는 자신이 먹으려고 하는 풀들이 아파하는 이야기를 듣고는 해가 저물어 가도록 아무 풀도 먹지 못한다. 그리고 밤이 되었을 때 이렇게 말한 다. “하느님, 하느님은 무얼 먹고 사셔요?” 이슬하고 바람 한 줌, 그리고 아침 햇빛 조금 마시고 산다는 말씀에 돌이 토끼는 자신도 그렇게 살게 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 때 하느님께서는, “...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너처럼 남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세상이 오면...” 그렇게 해 주시겠다고 하신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애타게 기다리는데도 사람들은 기를 써 가면서 남을 해치고 있구나.” 동화는 “돌이 토끼 얼굴에 물 한 방울이 떨어져 내렸습니다. 하느님이 흘린 눈 물이었습니다.” (라고 끝을 맺는다.)
후쿠시마의 대재앙이 발생한지 꼭 5년째이다. 이 날을 기억하는 우리들에게 보여지는 것은 여전히 아니 이전보다 더 아프게 다가오는 주민들의 아픔과 고통의 눈물이다. 후쿠시마의 눈물이며 그 위로 함께 아파하시며 흘리시는 하나님의 눈물 이다.
오늘 우리는, 후쿠시마 위에 흐르고 있는 하나님의 눈물에 함께 아파하며,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여야 한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핵의 위협이 없는 세상, 평화와 조화의 세상을 꿈꾸며 오늘도 하나님의 눈물에 참여하고 응답함으로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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