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칼럼] 지금은 사순절기간이다. 사랑하던 제자 가룟 유다의 배신에 의해 무지하고 난폭한 무리들에 게 예수님은 잡히셨다. 황혼이 검게 물들어가는 어두운 밤이었다.
군중에 잡힌 예수가 끌려간 곳은 안나스의 뜰이었다. 안나스는 당시 대제사장 가야바의 장인으로서 은퇴한 대제사장이었다. 성전에서 돈 바꾸는 일, 비둘기파는 일을 일삼음으로써 이권을 독점하던 종교 모리배였다.
예수님은 이 사람에게 결정적인 손해를 입혔다. 성전을 종교 모리배의 손에서 하나님의 집으로 원상회복 시키셨다. 이에 적의를 품어오던 안나스와 가야바에게 예수는 심문 받은 것이다.
의인이 고난당하는 것은 그 시대 그 사회의 종교가 타락 했을 때 일수록 더욱 심하기 마련이다.
종교가 본래의 모습을 잃고 이권의 도구로 전락 할 때 의인은 희생을 당하게 된다. 가야바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성 모독죄로 당시의 사법부인 산헤드린에 고발 하였다. 산해 드린은 당시의 최고 재판소요, 민의를 대변하는 공의회였다. 인간의 권리와 존엄성을 지켜주는 최후의 보류였다.
신성 모독죄는 살인죄에 해당된다. 어느 사회이고 백성의 생명과 재산, 그리고 권리를 보호해 주기 위해 사법부를 설치한다.
그러나 권위와 공정성은 상실된 채 그 본래의 사명을 수행하지 못하는 독립이 없는 사회야 말로 불법 사회요 무법 사회이다. 따라서 그런 사회는 희망이 없는 암흑사회이다.
예수는 하루 밤 사이에 다섯 군데의 법정에 끌려 다니며 심문을 받았다. 그리고 채찍에 맞고 침 뱉음과 조롱을 받으며 시달렸다. 못이 박히고 찔리고 가시관을 써야 했다.
아무도 그를 도와주지 않았고 그 곁에 있어 주지도 않았다. 이 예수의 죽음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참담 했으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부르짖었을까?
그런데 그가 죽자 천지가 진동 하였다. 성전 휘장이 찢어졌다. 그를 사형 집행하던 백부장의 입에서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의인 이었다.” 라는 경의와 찬탄의 증언이 선포 되었다. 여기에 그의 죽음의 특수성이 있다.
사순절은 이러한 주님의 고난 의 여정을 묵상하고 그의 자취를 따르려는 다짐의 기간 이어야 한다. 대부분의 교회들이 이 기간에 금식을 선포하고 구제와 헌신을 강조 한다.
우리가 참 예수님의 제자라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무엇이며 왜 그러한 고난을 당하셨는가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그 분의 삶을 그대로 따라 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그 분의 부르심에 뒤를 돌아보지 않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라면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소리치는 군중들 사이에서 뛰어나와 예수님과 동고동락 하는 사람들이다
사순절의 의미는 단순히 금식 했다는데 머물지 말고 지금까지 시도해 보지 못한 일들을 실 천 하는 사순절이기를 소원한다.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 질 수 있도록 매일 기도 하면서 인도 하 심을 받게 되기를 기원한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모든 고통과 죄를 지고 십자가를 지셨듯이 우리들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주변의 사람들의 고통과 그들의 죄를 대신 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내 십자가가 힘들어도 남의 십자가 까지 함께 지는 다짐 하는 적극적인 금식을 하나님은 더 기뻐하시리라 확신한다.
지금까지 자신을 위해서 살아 왔다면 이제는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선포하는 새로운 결단의 사순절이기를 소원하는 가운데 사도 바울의 권면의 말씀이 마음에 다가온다.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희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딤전4: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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