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 책은 ‘복음과 믿음’, ‘교회와 세상’, ‘성품과 성장’, ‘생활신앙’, ‘하나님의 영광과 기다림’이라는 다섯 가지의 큰 틀 안에서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하여 일상을 살아갈 때 어떠한 모습으로 열매 맺어야 하는지 명쾌하고 자신 있게 그 방법을 제시해 준다.
이레서원 ‘신약의 이해’ 시리즈 『마태복음: 긍휼의 목자 예수』, 『야고보서: 지붕 없는 교회』, 『베드로전서: 십자가와 선한 양심』에서 발췌한 묵상집
말씀이 우리의 삶에 뿌리 내릴 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야 하는가?
복음을 바로 깨달아 우리 속사람을 변화시키라!
이 책에 실린 글들은 그동안 채영삼 교수가 이레서원에서 펴낸 ‘신약의 이해’ 시리즈 중 말씀 적용 부분을 발췌한 것과 저자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올린 글 중 수많은 팔로워가 공유하고 공감했던 내용들을 선별하여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다.
반짝거리는 통찰력의 산물인 신약의 이해 시리즈는 첫 번째 저서인 『마태복음: 긍휼의 목자 예수』가 2011년 기독교출판문화상 신학부문 우수상을 수상한 데 이어 2015년에는 『베드로전서: 십자가와 선한 양심』이 기독교출판문화상 목회자료부문 우수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신학적으로 바른 분별력을 지닌 채영삼 교수는 『삶으로 내리는 뿌리』에서 ‘복음과 믿음’, ‘교회와 세상’, ‘성품과 성장’, ‘생활신앙’, ‘하나님의 영광과 기다림’이라는 다섯 가지의 큰 틀 안에서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하여 일상을 살아갈 때 어떠한 모습으로 열매 맺어야 하는지 명쾌하고 자신 있게 그 방법을 제시한다. 말씀을 분별하고, 말씀에 합당한 생각과 행동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성도들이 반드시 가져야 할 삶의 태도이다.
각 글을 시작할 때마다 나오는 성구 한 구절은 본문의 핵심적인 내용을 담은 말씀이다. 이를 그날의 말씀으로 삼아 종일 묵상한다면, 날마다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저자소개] 채영삼
연세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총신대 신대원에서 M.Div를 했다. 성경에 대해 더 알고 싶어, 미국 미시간주 Calvin Theological Seminary에서 신약학(Th.M)을 전공하고, 시카고에 있는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Eckhard J. Schnabel 교수와 D. A. Carson 교수의 지도로 마태복음에 관한 논문을 써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그의 학위 논문인, Jesus as the Eschatological Davidic Shepherd: Studies in the Old Testament, Second Temple Judaism and in the Gospel of Matthew가 독일 튀빙겐, 모어 지벡(Mohr Siebeck) 출판사에서 분트 시리즈(Wissenschaftliche Untersuchungen zum Neuen Testament 2/216, 2006년)로 출판되었다. 현재는 백석대학교 학부와 대학원에서 신약을 가르친다. 마태복음과 더불어, 신약의 구약 사용이나 일반서신 연구에 관심을 쏟고 있다. 깊고 넓은 학문과 치열하고 진실한 영성, 그리고 쉽고 아름다운 문학성을 갖춘 성경 해석이 꿈이라면 꿈이다. 이 책 『마태복음의 이해: 긍휼의 목자』는 저자가 ‘신약의 이해’(Understanding the New Testament) 시리즈로 계획하고 있는 첫 책이다. 저자는 오래 전, 필립 얀시의 『뜻 밖의 장소에서 만난 하나님』(두란노), 노만 그럽의 『제한받지 않으시는 하나님』(두란노) 그리고 케니스 C. 플레밍의 『우리가 잃어버린 예수』(바울) 등을 번역하기도 했다.
[책 속으로]
신자의 삶은 해석된 말씀이다. 그의 삶이 어떻든지 그것은 그가 듣고 해석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반응이다. 사실 모든 삶은 ‘신학적’이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음을 들었다면 우리의 삶은 복음적이어야 한다. 자신의 삶이 곧 우리가 듣고 배운 말씀에 대한 해석이요 신학, 곧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무슨 말을 하든, 세상은 우리의 삶을 보면서 하나님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신자의 삶은, 어쩔 수 없이 그가 온몸으로 쓰는 말씀에 대한 해석이다. ---「메시지를 방해하지 않는 삶」중에서
방언하고 환상을 보고, 성가대 가운을 입고 거룩한 찬송을 올리는 일만큼이나, 차선과 신호등을 지키고, 불리한 약속과 법이라도 기꺼이 지키며, 정직(正直)을 살아내는 일도 실로 영적인 일이다. 순종도 사랑도 그렇게 구체적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늘 위에서 ‘사영리’를 뿌리지 않으셨다. 하늘 보좌를 버리고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보라. 땀과 피로 범벅이 되셨다. 찢겨 상처 난 몸으로 보이신 그분의 순종과 사랑에는 전혀 거짓이 없다. 일상의 작은 일들, 작은 자에게 한 구체적인 말과 행동 속에 영원으로 열린 문이 있다. ---「야고보서가 가르치는 일상의 영성」중에서
성경 공부, 제자훈련, 그리고 수많은 설교와 성경 해석의 다양한 방법론들까지, 무릇 성경을 해석할 때는 산상수훈의 예수께서 제시하신 바른 해석의 기준에 순복해야 한다. 즉, 해석의 증거는 삶의 열매이다. 삶의 열매가 말씀에 대한 해석의 증거이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말씀을 제대로 해석했는가에 대한 증거로 우리가 작성한 답안지나 수료증을 보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시고 삶의 열매들을 찾으실 것이다. ---「삶으로 답을 써야 한다」중에서
성령 충만과 거짓은 함께 갈 수 없다. 어떻게 이리도 당연한 사실을 강조해야만 하는 시대가 되었는가? 성령 충만이 곧 부정직과 복과 대형과 성공으로 연결되는 시대를 누가 만들었는가? 성령 충만과 돈의 축적은 결코 함께 갈 수 없다. 사도들의 교회가 성령으로 충만했을 때, 그들은 나누었고, 가난과 정직을 유지했다. 성령 충만과 권력의 집중도 함께 갈 수 없다. 주님은 성령이 그에게 임하신 후, 모든 것을 버리셨고, 마귀에게 절하지 않으셨고,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버리셨다. 성령 충만과 세상이 함께 갈 수 없다. ---「사이비 성령 충만」중에서
하나님의 눈에는 작은 것이 없다. 흔들리는 나뭇잎, 반짝이는 햇살보다 더 찬연한 신학은 없다. 내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할 필요는 없다. 내게 주어진 일상 속에서 내 앞에 놓인 그 작은 일들을 신앙으로 하라.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친절, 양보, 정당한 순복, 소소한 긍휼이라도, 마치 홍해를 가르듯 죽으면 죽으리라는 신앙으로 하라. 믿음의 삶은 그렇게 구체적이어야 한다. 예배당 밖에서, 일상 속에서 하라. 거기가 하늘과 맞닿은 곳이다. ---「야고보서가 가르치는 일상의 영성」중에서
[출판사 리뷰]
예수 믿고 무엇이 바뀌었는가?
예수 믿으면 바뀌는 것이 많다. 어떤 부분은 서서히, 어떤 부분은 오랜 시간에 걸쳐 바뀐다. 그중 관점이 바뀌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관점이 안 바뀌면 일평생 예수를 믿어도 ‘죽기를 무서워하여 한평생 매여 종노릇하는’ 세상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산다. 그들은 세상적 수단을 통해 더 나은 생존을 추구하고, 신자는 교회에서 예수를 수단으로 더 나은 생존을 추구할 뿐이다. 둘 다 썩어지고 더럽고 허무한 세상의 수치와 부끄러움과 멸망의 거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예수 믿고, 당신은 무엇이 바뀌었는가?
아슬아슬한 번지점프를 멈추라!
오늘날 답답한 방주 속에서의 일상이 지루해진 성도들은 밧줄에 묶인 구명튜브를 허리에 두르고 마치 번지점프를 하듯 세상이라는 바다로 뛰어든다. ‘오직 은혜’, ‘행위가 아니라 믿음’, ‘예정론’에 기대어 죄악이 넘실대는 바닷속에서 위태롭게 자유를 즐긴다. 이는 자유로 악을 가리는 행위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벧전 2:16, 개역한글)고 권면한다. 구원은 티켓이 아니다. 하나님이 물속에서 우리를 건지신 이유는 이제 마른 땅으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방향과 목적을 생각하며 노를 저어 나아가야 한다.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하여 가라. 남은 날들 동안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라. 성도여, 제사장 역할을 감당하라!
기도 중에 응답이 온다
지금 시험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생각을 멈추라. 무조건 기도를 시작해야 한다. 다른 어느 곳에서처럼 당신의 생각 속에도 답이 없다. 하나님께 토해내야 한다. 여기서 관건은 지속적으로 하나님께 묻고 듣고 대답하고, 또 묻고 듣고 대답하기를 반복하는 일이다. 상대가 하나님이어야 한다. 욥처럼 끝까지 하나님께 물으라. 그분을 기다리라. 지금 당신이 당하는 문제 속 깊이 하나님이 들어오시게 하라. 사실, 간구하는 내용을 얻는 것이 응답이라기보다는, 간구하는 동안 내 심령이 치유받는 그 과정이 진정한 응답이다. 기도의 응답은 기도의 끝에 오는 것이 아니라 실로 기도 중에 온다.
[머리말]
<삶으로 내리는 뿌리>는 원래 그동안 출간했던 <신약의 이해> 시리즈에 본문 설명 다음에 실려 있던 글들의 제목이다. 이레서원에서 이런 글들만으로 모아 책으로 내고자 계획한 지는 꽤 오래 되었다. 설교도 아니고 단순한 말씀 적용도 아니지만, 말씀이 우리의 삶에 뿌리 내릴 때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그려 낸 글들이다.
물론 기존에 출간했던 책들에 실린 글들만이 아니라, 성도들과 소통하면서 써내고 읽히고 사랑받았던 글들도 포함했고, 또한 발표하지 않았던 글들도 포함되어 있다. 성경 본문을 해석하고 설명하는 부분 대신, 간략한 성구 하나만을 소개하고 바로 그 말씀이 삶으로 뿌리 내릴 때 어떤 메시지, 어떤 울림이 있는지를 기록한 것이다. 이제 돌아보니, 대부분은 무엇보다 복음을 바로 깨닫는 일과 그에 따른 우리 속사람의 성장, 세상 속에 있는 교회, 생활 속에서 드러나는 신앙,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과 인내의 중요성을 새겨 본 내용들이다.
이레서원 동역자님들은 이런 글들이 목회자나 신학생만이 아니라, 우리 성도님들에게 읽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나도 그렇다. 무엇보다 말씀을 근거로 생각하여, 보는 관점이 달라지고, 그래서 말과 행동의 방향과 틀이 바뀌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기 때문이다. 성도가 깨어야 한다. 함부로 ‘아멘’하지 말 것이다. 오직 말씀을 분별하고, 말씀에 합당한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자라가야 한다. 그래야 교회를 지키고, 복음을 지키고, 이 땅에 우리를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말씀에는 놀라운 생명, 영원한 생명이 있다. 요한은 이를 두고 ‘생명의 말씀’이라 불렀다(요일 1:1).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오신 이 말씀은 우리 속에 떨어져, 생명의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열방 곧 세상 사람들은 이 열매를 기다린다. 정말 이 땅에서,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영원한 말씀의 생명을 피워내는 성도, 교회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 2015년 초겨울, 채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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