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테러로 인해 미국, 유럽, 러시아의 반이슬람 정서는 더욱 고조됐다. 앞으로 기독교국가들은 이슬람국가들과 더 큰 규모의 군사행동을 벌이게 될 것이다. 반난민의 소리는 유례없이 높아질 것이다. 21세기는 천년 전의 역사를 반복하고 있으며 이제 새로운 십자가전쟁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화려한 도시 파리가 자살 테러 공격을 받아 최소 132명이 사망하고 352명이 부상당한 이 사건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고, 유럽과 미국 사회는 갑자기 대적이 다가오는 것과 같은 두려움에 빠졌다.
사람들은 중세 십자군전쟁을 아직 기억할 것이다. 십자군전쟁은 1095년에 발발하여 1291년까지 약 200년간 지속되었다. 1095년부터 1099년까지 제1차 십자군전쟁 이후 지금까지 약 천 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당시 유럽과 라틴 기독교국가는 중동서아시아의 이슬람 지구에 대하여 8차에 걸친 주요한 전쟁과 수많은 소규모 전쟁을 일으켰다. 십자군은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 등의 국가들이 참여했지만 가장 핵심인물은 프랑스 국왕이었으며, 프랑스가 수 차례 십자군을 이끌었다.
과거 십자군시대의 응어리가 아직까지 남아있어 프랑스는 지금까지 반(反)이슬람 문화가 매우 강하다. 얼마 전 《查理週(Charlie Hebdo)》사건은 프랑스 반이슬람 문화가 얼마나 고질적인지 잘 보여준다. 1950년대 이후 프랑스는 2차대전 후의 경제번영으로 인해 자국에 속한 식민지에서 대량의 이민 노동력을 끌어들인다. 그중의 다수는 이슬람국가에서 왔다. 이 이슬람 이주노동자의 2세들은 프랑스의 제도적 편견과 적대적 태도로 인해 점점 완강하게 프랑스를 반대하고 증오하게 됐다.
최근 몇 년 중동 정세가 크게 변하고 IS가 일어나 일부 프랑스 이슬람 청년들은 IS를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으로 여긴다. IS의 전사는 각국에서 온 이슬람 청년들로 대략 3만 명에 이른다. 프랑스의 이슬람 청년 가운데는 직접 IS에 가담하지는 않지만 정신적으로 인정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로 인해 지금은 중세 십자군전쟁 천년 후 신 십자군전쟁이 다시 일어나는 시기이다.
안타까운 것은 약 천 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 세계는 전혀 나아진 것 같지 않다. 십자군전쟁 당시 양쪽의 국가들은 대부분 농경과 목축의 단계였다. 서로의 무력도 비슷해서 전쟁을 하면 서로 승패를 주고 받았다. 당시 인구 또한 밀집되지 않았기에 사망자수도 제한적이었다. 당시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학살했을 때 최대 사망자수는 칠만 명이었다. 당시 양쪽의 정보력도 대등하여 한쪽이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공격하지 않았다. 이슬람의 명장 살라딘은 적군에게 인자하며 절대 함부로 죽이지 않아 기독교국가는 그에 대해 크게 칭송하기도 했다.
무력이 절대적 불평등 단계에 들어서면 세계의 질서는 더욱 불안정해졌고, 제어력을 상실했다. 미국이 이라크의 사담을 제거한 것은 그가 중동의 안정에 기여하던 역할에 영향을 미쳤다. 또한 미국이 시리아의 아사드를 전복시키려 한 것은 시리아 내전을 일으키고 중동 질서를 어지럽혀서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IS의 무서운 영을 풀려나게 했다.
이제 폴란드와 리투아니아가 공개적으로 난민을 반대하는 국가라고 선언하고 유럽 각국의 국경 관리가 강화되고 있다. 유럽의 인도주의 정신이 가장 강한 독일이 내외로 큰 압력을 받아 난민 정책에서 후퇴할 수도 있다. 최근의 이라크 시리아의 내란, 난민 문제, 파리 테러사건으로 각국은 난민 문제에서 손을 뗄 수 있다. 난민 위기가 악화되면 장차 가장 큰 인도적인 재난이 될 수 있다.
21세기는 현재 새로운 십자군전쟁이 시작되었다. 천년의 발전을 거듭한 지금 이 세상은 과연 더 좋은 세상으로 변화된 것일까? 인류는 이전보다 더욱 평화로운 것일까? 종교 종족은 앞으로 더욱 좋은 상호작용을 할 수 있을까? 이 모두는 역사가 사람들에게 가져다 주는 곤혹과 안타까움이다.
출처 | <亚洲周刊〉 第29卷 47期(2015年 11月 29日)
중국어문선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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