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오상아 기자] 서울신학대학교(총장 유석성 박사) 기독교사회윤리연구소 제9회 정기세미나가 지난 14일 서울신대 우석기념관 강당에서 '기독교와 위험사회'를 주제로 개최됐다.
'위험사회'라는 말은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이 '위험사회'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간하며 쓰이기 시작했다. 울리히 벡은 1944년 독일 포메른 주의 슈톨프(현재 폴란드의 스웁스크)에서 태어나 프라이부르크대학과 뮌헨대학에서 법학, 사회학, 철학, 정치학 등을 수학했다. 뮌헨 대학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뮌헨대학 사회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뮌헨 대학 사회학연구소 소장을 맡고있다.
이날 '위험과 위험사회'라는 주제로 발제한 홍찬숙 교수(서울대학교, 여성연구소)는 울리히 벡의 저서 '자기만의 신'(2013)을 번역하기도 했다.
홍찬숙 교수는 "사회과학에서 핵심적인 위험 개념은 risk이지만, 벡은 danger 역시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며 "risk는 사회적으로 인지되고 계산되는 위험으로, 한국어로는 '위험성'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Danger는 사람이 인식하건, 안하건 또는 못하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위험을 의미한다. 자연재해를 비롯하여 모든 종류의 재난을 의미한다"고 했다.
이어 "벡이 사회과학에서 danger 역시 중요하다고 강조한 이유는 매리 더글러스의 위험 문화이론이 가진 함정 때문이다. 그녀는 실제로 발생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는 위험인 danger를 간과 또는 부정한다"며 매리 더글러스의 위험 문화이론을 설명했다.
홍 교수는 "사회과학적 개념으로 위험(risk)을 최초로 이론화한 경우는 영국의 문화인류학자인 더글러스이다. 그녀는 1980년 다른 공동연구자와 함께 Risk and Culture라는 책을 출판했는데, 여기서 위험은 객관적 실체가 아니라 일정한 집단의 도덕적, 문화적 선택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즉 위험은 인위적인 공동의 구조물이라는 것이다"며 "더글러스는 현대사회에서 위험이 중요한 쟁점으로 떠오르는 이유로, 부유하지만 위험을 싫어하는 새로운 중산층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즉 그들이 위험하다고 주장하는 현대사회의 위험은 실재적인 위협을 가하는 위험이 아니라, 그들만이 분파주의적으로 인지하는 위험일 뿐이라는 것이다"고 했다.
그는 "또한 과학사회학에서는 1970년대부터 과학이 절대적이거나 객관적 또는 중립적이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과학은 오히려 우연적인 발견의 결과이고, 과학자의 편견과 가치가 배제될 수 없으며, 객관적 사실을 반영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며 "이러한 견해는 객관성을 부정한다는 점에서는 더글러스와 유사하지만, 과학에 대한 믿음을 깨뜨렸다는 점에서 더글러스와 구별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상의 영향으로 인해 '과학=합리적'이라는 믿음이 깨졌으며, 과학은 규칙성(뉴턴 역학)뿐만 아니라 불확실성 역시 생산한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며 "즉 과학은 안전 못지않게 위험 역시 생산한다는 의식이 형성되었다. 벡이 말하는 위험은 이와 같이 과학기술에 의해 생산된 위험이다"고 설명했다.
홍 교수는 "한국에서는 90년대 초부터 각종 대형사고들이 발생했는데, 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이러한 위험 또는 위기가 발생하는 사회구조를 설명하기 위해 위험사회 이론을 도입했다"며 "한국에서 논의는 한국사회를 위협하는 위험이 벡이 말하는 고도기술위험이 아니라, 졸속 산업화의 결과로 나타나는 위험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의 위험을 '후진국형 위험'이라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또한 "반면에 한국에서도 핵발전이나 화학물질 오염, 식품오염, 유전자 조작, 기후변화 등 고도기술과 관련된 위험들 역시 존재하기 때문에, 한국은 '이중적 위험사회'라고 정의했다"고 했다.
덧붙여 그는 벡이 위험사회를 통해 현대사회를 '성찰적 근대성의 사회'로 설명한 것에 대해 "성찰적 근대성이란 탈근대성 또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이다. 산업생산에서 위험생산으로 생산의 의미가 변화한 위험사회는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설명하는 바와 같은 탈근대성의 사회가 아니라, 근대성 속에서 근대성을 비판하는 성찰적 근대성의 사회라는 설명이다"며 "위험사회는 근대성이 급진화하면서 부작용으로 나타난, 의도하지 않은 현실이라는 것이다"고 했다.
그러면서 "위험사회는 부의 불평등 분배가 가장 중요한 사회문제로 여겨졌던 산업사회와는 다르다. 현대사회는 더 이상 계급 갈등의 좌·우 이념으로 갈리는 사회가 아니라, 모두를 위협하는 위험에 대항하여 모든 시민이 소비자의 처지에서 연대해야 하는 시민정치의 사회로 거듭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홍찬숙 교수는 "성찰적 근대성의 가장 위험한 시나리오는 근본주의의 등장 또는 확대이다. 모든 종류의 근본주의가 등장할 수 있다"며 "벡은 이것을 '반근대성' 또는 '역근대성'이라고 부른다"고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