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소치에 불어닥친 '오렌지 군단'의 강풍이 거세기만 하다. 네덜란드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은 5000m에 이어 1만m까지 시상대를 점령했다.
네덜란드 대표팀은 19일(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아들레르 아레나에서 열린 2014소치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만m에서 금·은·동메달을 휩쓸었다.
스피드스케이팅 사상 역대 올림픽 최다 메달은 이미 경신한 지 오래다. 네덜란드는 이번 대회에서 스피드스케이팅만 총 19개(금 6·은 6·동 7)의 메달을 쓸어 담았다. 옛 동독이 보유한 단일 대회 최다 메달 13개(금 3·은 6·동 4개)에 6개를 더 보탰다.
기존 장거리에만 강점을 보인던 네덜란드는 중·단거리까지 접수하면서 스피드스케이팅 절대 강자의 면모를 보였다. 스벤 크라머(28)와 얀 블로크후이센(25), 요리트 베르그스마(28) 3인방은 지난 8일 5000m에서 나란히 시상대 위에 섰다.
이들의 기를 물려 받은 미셸 멀더(28)와 얀 스미켄스(27), 로날드 멀더(27)는 이틀 뒤 500m를 석권했다. 이들은 90년 동계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네덜란드에 500m의 모든 메달을 선사했다. 네덜란드의 단거리 석권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1000m 세계랭킹 14위에 불과했던 스테판 그루투이스는 1분08초39의 호성적으로 쟁쟁한 경쟁자들을 모두 따돌리고 깜짝 금메달까지 차지했다. 500m 우승자 미셸 멀더는 1000m 동메달로 멀티 메달에 성공했다.
대니 모리슨(29·캐나다)에게 은메달을 허용했을 뿐 사실상 1000m도 네덜란드의 독식이나 다름없었다.
네덜란드 넓은 선수층은 종목을 불문하고 메달을 쏟아내면서 같은 팀에서도 색깔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기도 했다.
1만m 세계랭킹 1위 크라머는 2회 연속 올림픽 우승을 놓치며 쓴 맛을 다셨다. 4년 전 레이스 실수로 이승훈(25·대한항공)에게 1만m 금메달을 내줬던 크라머는 베르그스마의 역주에 이번에는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1만m 챔피언 베르그스마는 "여전히 멍하기만 하다.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모르겠다"고 했고 크라머는 말 없이 빙판을 빠져나갔다.
거트 쿠이퍼 네덜란드 감독은 "크라머는 2회 연속 올림픽 금메달 문턱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며 "이것이 스포츠이고 올림픽이다"며 아쉬움을 대신 전했다.
'오렌지 파워'는 남녀 대표팀을 가리지 않았다. 네덜란드는 여자 종목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뽐냈다. 단거리를 제외한 거의 모든 종목의 시상대 가장 윗 자리는 네덜란드의 몫이었다.
아시아 선수의 강세 속에 이상화(25·서울시청)와 장훙(26·중국)에게 각각 500m와 1000m를 내준 것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종목에는 모두 정상에 섰다.
요리엔 테르 모스(25)·아이린 뷔스트(28)·로터 반 비크(23)는 1500m 시상대를 휩쓸었고, 3000m는 1500m 은메달리스트 뷔스트가 메달 색깔을 금으로 바꾸며 자존심을 지켰다. 마르티나 사브리코바(체코)와 올가 그라프(러시아)를 각각 은메달과 동메달로 밀어냈다.
심지어 장훙에게 뺏겼던 1000m마저 뷔스트와 마르고트 보에(29)가 각각 은메달과 동메달을 나눠 가진 네덜란드는 스피드스케이팅 전 종목을 집어 삼키다시피 했다.
소치에서 분 네덜란드 발 '오렌지 돌풍'이 평창까지 이어질 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