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가장 원초적인 말은 침묵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앎 너머에 계신다. 근본에서 하나님은, 인식할 수 없고 표현할 수 없는 분이시다.
이런 하나님을 안다고 여기고 설명할 때, 우리는 그만 하나님을 인간의 생각과 말에 가두는 어리석음을 저지른다. 그럼에도 분명 하나님은 이 우주와 모든 생명의 궁극자이시다. 알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과 만나고 대화하는 언어는 그래서 침묵이다.
침묵도 말이다. 말을 넘어선 말이다. 머릿속으로 생각해서 입으로 나온 말과는 다르다.
침묵의 기관은 가슴이다. 머리의 생각을 닫고 가슴을 연다. 가슴은 신비한 장소이다. 사랑의 장소다. 사랑으로 대상을 바라보며, 사랑으로 직접 내 가슴과 상대의 가슴이 영혼으로 만난다.
하나님 자체, 진리 자체, 사랑 자체, 선 자체는 말을 넘어선 것이기에 이런 가슴의 사랑으로만 만날 수 있다. 하나님과 가슴으로 대화하는 침묵을 관상기도라고 한다. 깊은 침묵 속에서 하나님과 우리가 사랑으로 서로 흘러들 때 하나 되는 신비가 일어난다. 이것을 2천 년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수많은 영성가들이 경험했다.
침묵, 곧 가슴으로 이웃들 그리고 마주하는 생명들과 이야기하자. 머리의 생각으로 너를 만날 때 우리는 너를 나와는 다른 남으로 만나는 것이다. 그러나 가슴으로 너를 만나서 나는 네 가슴으로 들어가고 너는 내 가슴으로 들어오는 때, 너와 나는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한 생명이 된다. 내가 꽃이 되고, 꽃이 내가 된다.
침묵으로 말하는 법을 아는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도 알게 되고, 하나님의 말동무인 이웃들과 생명들도 알게 된다.
출처: 월간 '새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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