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의 가톨릭 순교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의 시복을 결정했다고 8일(현지시간) 바티칸 뉴스가 발표했다.
시복은 교황이 가톨릭 교회가 공경하는 인물인 복자(福者)를 선포하는 것을 뜻한다. 복자는 성인(聖人) 이전 단계로 이번 시복에는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등 한국인 순교자 124명이 이름을 올렸다.
시복이 결정된 124위 순교자들은 신해박해(1791년)부터 병인박해(1866년) 까지 순교한 천주교 초기 신자들이다. 첫 대규모 박해로 기록되는 신유박해(1801년) 순교자가 53위로 가장 많고, 기해박해(1839년) 전후 순교자 37위, 병인박해(1866년) 순교자 20위, 신유박해 이전 순교자들 14위가 포함됐다.
주교회의 측은 "124위는 한국 주교회의가 자력으로 시복 조사, 추진, 평신도들의 자발적 노력으로 한국 천주교 공동체를 탄생시킨 주역들"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시복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인물은 윤지충이다. 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외사촌으로 정조 7년인 1983년 정약용의 가르침에 따라 바오로라는 세례명으로 천주교 세례를 받았다.
1791년 어머니가 죽자 가톨릭 교리에 따라 위패를 폐하여 불태우며 제사를 거부했고, 조선 관가는 이 논란으로 정파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윤지충은 국문을 받았으나 끝내 뜻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사형됐다.
정약용의 형 정약종도 1795년 이승훈과 함께 청나라 신부 주문모를 맞아들이고 한국 최초의 조선천주교 회장을 지냈다. 한글 교리서 '주교요지'을 집필해 보급했고 신유박해 때 순교하여 이번에 시복됐다.
이로써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상대로 8월 한국을 방문해 직접 시복식을 주재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지난달 교황청은 오는 8월 대전에서 아시아청년대회 초청을 받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 방문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방한이 성사되면 교황은 25년 만에 한국에 오게 된다. 교황의 마지막 한국 방분은 1989년 요한 바오로 2세였다. 요한 바오로 2세는 1984년에도 한국을 방분 교황으로는 처음으로 103명을 성으로 직접 시성한 바 있다.
1984년 성인이 된 인물은 한국인 최초 신부이자 순교자 김대건을 비롯해 13세 소년 유대철 베드로, 72세 정의배 마르코까지 신분과 나이, 성별, 성직을 초월했다. 이들은 조선에서 파리외방전교회 프랑스 선교사들을 맞이한 1836년 직후 순교했으며 선교사들에 의해 행적 규명과 역사적 자료가 비교적 보존이 잘돼 성인으로 먼저 추대됐다.
한편 이날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은 성명을 통해 "교황청의 시복 결정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시복을 위해 기도해주신 모든 신자분들과 많은 관심을 가져주신 국민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도 시복 결정 소식을 접한 자리에서 "참으로 감사한 일"이라며 "124위를 비롯한 천주교 순교자들은 남녀평등, 신분제도를 넘어선 이웃사랑으로 한국 근대화를 앞당기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고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염 추기경은 시복 대상자 가운데 황일광(1757∼1802)이 '나의 신분에도 불교하고 사람들이 너무나 점잖게 대해주니 천당은 이 세상에 하나가 있고 후세에 하나가 있음이 분명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전한 뒤 "이 순교자들의 공동체처럼 우리도 사랑으로 서로 보듬고 아끼며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