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를 나와서 사법고시를 패스하고 검찰의 요직을 두루 거치며 마침내는 대한민국 검찰의 수장이 된 그 사람들의 심리를 우리는 냉정하게 바라다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단지,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가 말이지.." 혀를 끌끌 차며 사돈 남 말하듯이 쉽게 말한다면 아직도 한국사회가 양산해 내고 있는 정서적 거짓말 장이들의 심리를 정확히 진단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꼴이다.
늘 그래왔지만, 특히 최근에 와서 보여주는 한국 정치인들의 '아니면 말고' 식의 막장수준의 거짓말과 자기기만적 투쟁은 오늘을 사는 한국인들의 마음을 혼동 속으로 빠뜨리고 있다.
급기야 사람들은 거짓과 진실의 차이는 과연 무엇일지 점점 더 혼돈스러운 심리에 휩싸이는 듯하다. 오늘, 한국의 야당의 모습들 속에서 그들에게 있어서 진실이 무엇이냐 보다는 당의 존립을 위해서라면 그때그때 말 바꾸기의 처세술이 유능한 정치인쯤으로 착각하고 있는 듯 한 심리를 엿보게 된다.
사는 것은 좀 나아 졌다고는 하나, 사람들의 인격과 정서는 천민자본주의 수준에서 허덕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배우고 어떻게 처신해 왔는지 조금만 분석해 본다면 오늘날 한국인들의 거짓말이 왜 난무하고 있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전통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인정 한다는 것처럼 수치스럽고 잘못된 인생도 없다는 개념을 터득한 우리들에게는 어쩌면 자신의 잘못을 백일하에 드러내는 것보다 차라리 목숨을 포기하는 것이 낫다고 믿는 극단적인 사고방식까지도 존재한다. 하물며, 어려서 부터 가정과 동네에서 수재로 칭송받으며 승승장구했던 한국형 엘리트에게 죽으면 죽었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싫은 소아병적 아집은 당연한 심리일 것이다.
최근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심리는 그렇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이 만들어 놓은 역기능적 인간상이다. 가끔 한국에서 한 다리 건너 먼 친척들의 자녀들이 잠시잠깐 영어 연수를 오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나는 그들의 심리 속에서 이런 슬픈 한국의 현실들을 읽게 된다. 실수를 두려워하고 내면의 솔직한 마음을 섣불리 내놓지 못하는 일종의 정서적 장애를 겪고 있음을 감지한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서 갈등하며 새롭게 경험하는 외부의 환경에 대한 경계심을 벗지 못하고 불안 초조해 하는 안타까운 모습이 역력하다.
어렸을 적 공부 잘하면 칭찬받고 실수하면 가차 없이 꾸중 들었던 이 얄팍하고 생각 없던 가정과 사회 속에서 우리는 수치심과 창피함을 달고 살았고 그러한 정서에서 비롯되어 지는 오늘 한국인들의 거짓말은 일종의 처세술처럼 견고해 진 것이다. 멀쩡하게 생긴 정치선량들이 내일 들통이 날 거짓말을 버젓이 일삼으며 얼굴색하나 변하지 않는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의 다음세대들의 심리를 걱정해 보아야 한다.
몇 년 전, 자신의 거짓을 영원히 은폐하기 위해서 대통령은 자살했다. 그리고 그의 자살 뒤에는 대한민국을 온통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거짓을 은폐하기 위한 자살보다야 만천하에 스스로 고백하며 진실을 말해주는 용기가 백배 낫다. 그리고 그 스스로의 고백은 사람들을 감동시키며 사회를 정화 시킨다.
우리는 너무도 못 배운 가치관이 많다. 그저 많이 공부해서 빨리 성공하고 싶은 열망이 강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그 사람의 출신성분을 중요시 여긴다. 지금도 한국의 TV화면에 출연자의 대학과 경력과 현재 직업이 길게 자막 처리된다. 특히 그 사람이 한국의 최고 명문이라는 SKY중 한곳을 나왔을 경우에는 기를 쓰고 선전해 준다. 부럽다는 것일 게다. 그러나 우리의 그런 심리는 부메랑이 되어 사람을 정직하고 자유롭게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 사람은 그때부터 만인의 잣대에 맞추어 살아가야 한다는 강박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성공하고 싶고 출세하고 싶어서 진실보다는 거짓을 더욱 선호하는 심리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