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평택시 평택항에 수출용 자동차가 세워져 있다. ⓒ뉴시스
경기 평택시 평택항에 수출용 자동차가 세워져 있다. ⓒ뉴시스

미국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경기 침체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정부가 추진 중인 10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을 놓고 논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시장에는 '경기 침체(Recession)의 공포'가 짙게 드리우고 있으며, 이에 따라 추경 규모를 더욱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반면, 피해 규모가 아직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한 예산 편성은 재정 원칙에 어긋난다는 반론도 나오고 있다.

정부는 현재 영남권 산불 피해와 미국의 관세 인상에 따른 통상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 약 10조 원 규모의 '필수 추경'을 준비 중이다. 이는 꼭 필요한 분야에만 선별적으로 예산을 투입하겠다는 방침으로, 재난·재해 복구, 통상 리스크 대응, 인공지능(AI) 경쟁력 강화, 영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지원 등이 주요 투입 대상이다.

그러나 정부가 추경 편성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미국은 한국을 포함한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에 25%의 상호관세를 부과하는 강경한 조치를 발표했다. 시장은 이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8일 국내 증시에서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5.57%, 코스닥은 5.25% 하락했고, 외국인 투자자들은 약 2조 원 규모의 주식을 순매도했다.

미국 증시도 큰 폭의 조정을 받았다. S&P500 지수는 3~4일 이틀간 10.5% 하락했으며, 이는 블랙먼데이(-26.4%), 코로나19 팬데믹(-13.9%), 2008년 금융위기(-12.4%)에 이어 2차 세계대전 이후 네 번째로 큰 하락폭으로 기록됐다.

이 같은 흐름에 따라 세계 경제가 침체로 빠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JP모건은 올해 세계 경제가 침체에 빠질 확률을 기존 40%에서 60%로 상향 조정했고, 한국은행은 미국의 관세 인상이 지속되고 주요국들이 보복 조치를 취할 경우, 한국의 올해와 내년 경제성장률이 1.4%에 머물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보다 과감한 재정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12·3 비상계엄 사태에 이어 미국의 고율 관세 충격까지 겹친 만큼, 보다 대규모의 경기 부양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는 계층은 자영업자, 중소기업, 서민이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의 재정 역할이 중요하다"며 "10조 원 규모의 추경은 턱없이 부족하며, 추경이 경제 주체들의 불안 심리를 완화하는 '마중물'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야당이 제시한 30조 원 이상의 추경 규모가 필요하다고 본다. 단순한 쿠폰 형태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민생을 회복하고 미국 관세에 대응할 수 있는 예산이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단계적 접근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추경 규모를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나, 당장 10조 원 이상 편성이 어렵다면 대선 이후 추가 추경을 고려할 수 있다"며 "우선 산불 등 긴급한 현안에 대응한 후, 정치 불안과 수출 피해 등 구조적 문제에 대해선 별도의 예산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구체적인 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상태에서 추경을 서두르는 것은 국가 재정 운용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추경은 명확한 원칙이 있어야 한다. 산불이나 비상계엄처럼 눈에 보이는 피해가 있고, 기존 재정으로 감당이 어렵다고 판단될 때에 한해 편성해야 한다"며 "관세 충격이 우려된다는 이유만으로 추경을 추진하는 것은 오히려 재정의 건전성을 해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오정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도 유사한 견해를 밝혔다. 그는 "재정을 풀어도 경기를 살리기 쉽지 않다. 추경을 통한 내수 진작은 소비만 늘리고 실질적인 효과는 미미할 가능성이 크다"며 "필수적인 산불 피해 복구에 재정을 투입하는 것은 필요하겠지만, 경기 대응은 규제 완화나 법인세 인하 등 구조적인 방법이 보다 효과적이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국가채무가 이미 지나치게 증가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45%를 넘었고, 발생주의 방식의 국가 부채는 130%를 초과해 일본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다. 현재는 재정 여력이 거의 소진된 상황"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추경을 둘러싼 논의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관세 정책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충격이 얼마나 지속될지 불확실한 가운데, 정부의 재정 전략과 정치권의 결정이 향후 경기 흐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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