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의 채용 비리를 전면 조사한 결과, 지난 10년간 경력경쟁채용(경채) 과정에서 총 878건의 규정 위반이 적발됐다. 또한 일부 직원들의 무단결근과 허위병가 등의 근태 문제도 드러나면서 선관위의 인사 운영 전반에 대한 심각한 문제가 확인됐다.
◈선관위 내부 만연한 특혜 채용
27일 감사원이 공개한 ‘선관위 채용 등 인력관리 실태’ 감사 결과에 따르면, 선관위의 채용 과정에서 조직적인 특혜와 비리 사례가 다수 발생했다. 시·도 선관위에서 2013년부터 2023년까지 실시한 167회의 경채를 전수 조사한 결과, 662건의 규정 위반이 적발됐고, 중앙선관위에서도 124회의 경채 중 216건에서 유사한 문제가 확인됐다.
감사원은 "선관위 내부에서조차 직원 자녀의 특혜 채용이 공공연한 관행이었다"며, "일부 직원들은 ‘선관위는 가족 회사’라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로 불공정한 채용이 만연했다"고 밝혔다. 특히, 중앙선관위는 전국 선관위에서 특혜 채용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도 이를 방치했으며, 오히려 인사 관련 법령 위반을 조장한 정황까지 드러났다.
◈불공정 채용 과정과 사례
경남선관위의 한 과장은 자신의 자녀가 선관위 경채에 응시한 사실을 채용 담당자에게 알리고, 지속적으로 진행 상황을 문의했다. 결국 해당 자녀는 최종 합격했다. 전남선관위의 다른 간부는 외부 면접위원들에게 서명만 하도록 요청한 뒤, 내부에서 응시자 순위를 임의로 조작했다. 이 과정에서 당시 선관위 사무총장의 자녀를 포함한 특정 인원 6명이 합격하고 나머지 응시자는 탈락하는 결과가 나왔다.
또한 중앙선관위는 2022년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를 대비하기 위해 2021년에 대규모 경채를 실시했다. 그러나 당시 인사 담당자들은 내부 메신저에서 "간부들이 자녀와 지인을 데려오기 위해 경채를 이용하려 한다"는 우려를 공유했지만, 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근태 문제까지… 선관위 내부 관리 부실
채용 비리뿐만 아니라 일부 선관위 직원들의 근태 문제도 심각한 수준으로 드러났다. 감사원 조사 결과, 강원선관위의 한 과장은 2015년부터 8년간 일본 등 해외에서 총 817일을 체류했으며, 이 중 100일은 무단결근이었다. 그가 과다 수령한 급여만 3800만 원에 달했다.
특히, 2019년 서귀포시 사무국장으로 보임된 이후 본인이 직접 휴가를 승인할 수 있는 위임전결 규정을 이용해 48일간 무단결근하고 131일 동안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이러한 행태는 조직 내부의 도덕적 해이와 관리 부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지적됐다.
◈감사원 감사권 제한과 선관위 개혁 필요성
감사 과정에서 선관위가 채용 비리와 관련된 자료를 은폐하려 한 정황도 포착됐다. 감사원에 따르면, 전남선관위의 한 과장은 박찬진 전 사무총장의 자녀 면접시험과 관련한 평정표를 조작하고, 이를 삭제하도록 지시했다. 감사원이 감사를 진행하지 않았다면 해당 문제는 은폐된 채 남아있었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감사원이 선관위의 인사 비리를 감사할 권한이 없다고 판단하면서, 선관위가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대해 감사원은 "감사원이 정치적 목적을 갖고 선관위를 압박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한 결정이지만, 이번 감사 결과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선관위 내부의 자정 능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감사원의 감사권을 제한하는 것은 국민 법 감정과 동떨어진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선관위원장 선출 방식과 감사 제도 개혁 필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선관위원장 선출 방식과 감사 제도의 전면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 선관위원장은 법관 출신이 맡는 것이 관행이지만, 이번 감사 과정에서도 헌법재판소 판사 출신들이 선관위에 유리한 판단을 내린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감사원은 선관위에 채용 제도 개선안을 마련하고, 인사 담당자 교육을 강화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위법·부당하게 채용된 직원들에 대한 징계 및 추가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감사원이 선관위를 비롯한 독립 기관의 감사를 지속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법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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