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나마 정부가 중국의 글로벌 경제 프로젝트인 '일대일로(一帶一路)'에서 공식 탈퇴한다고 발표했다. 파나마는 2017년 중남미 국가 중 최초로 일대일로에 참여했으나, 최근 중국과의 협정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하며 미국과의 협력 강화를 시사했다.
호세 라울 물리노 파나마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 베이징 주재 자국 대사관에 2017년 체결한 일대일로 협정에서 탈퇴하겠다는 내용의 ‘90일 사전 통지서’를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이 협정이 지난 수년간 파나마에 무엇을 가져다줬는지 알 수 없다"며 협정 종료 배경을 설명했다.
물리노 대통령은 3일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중국과 맺은 일대일로 협정을 갱신하지 않겠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인 일정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후 루비오 장관이 떠난 직후, 전격적으로 탈퇴 결정을 발표했다.
그는 "우리는 더 이상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것은 내가 내린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이번 결정이 미국의 압력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려는 듯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파나마 운하 문제를 두고 압박한 것과는 무관하다"고 덧붙였다.
파나마의 이번 탈퇴 결정은 미국과의 협력 강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중국이 파나마 운하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는 우려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파나마 운하는 미국이 1913년 건설한 뒤 1999년 파나마 정부에 반환했지만, 반환 조약에 따라 내부 갈등이나 외국 세력에 의해 운영이 방해될 경우 미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 이에 대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중국이 운하 운영에 개입하는 것을 두고 "되찾아와야 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루비오 장관도 4일 물리노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중국 공산당이 파나마 운하에 대한 효과적이고 지속적인 통제를 확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파나마 운하는 현재 파나마운하청이 관리하고 있지만, 홍콩에 본사를 둔 대기업 CK 허치슨 홀딩스의 자회사인 '파나마 포트'가 2021년부터 운하 양쪽(대서양과 태평양) 터미널을 운영하고 있어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이 작용할 가능성이 제기돼 왔다.
이에 대해 물리노 대통령은 허치슨의 운하 운영과 관련해 포괄적인 감사를 실시하고 있으며, 문제가 발견될 경우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일방적인 계약 취소는 없을 것"이라며 "나는 대통령이자 법을 존중하는 변호사로서 자의적으로 계약을 취소할 권한이 없다"고 강조했다.
파나마의 일대일로 탈퇴 결정에 대해 중국 정부는 강한 유감을 표했다. 중국 유엔 대사 푸콩은 "파나마 운하에 대한 중국의 개입 주장은 완전히 거짓이며 근거가 없다"며 "중국은 운하의 관리나 운영에 참여한 적이 없으며, 이를 영구적이고 중립적인 국제 통로로 인정해왔다"고 반박했다.
파나마 주재 중국 대사 쉬쉐위안도 현지 언론을 통해 "중국은 파나마에 두려움이 아닌 평등, 존중, 상호 이익을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또한 "미국이 아메리카 대륙에 황금기를 만들고자 한다면,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게 어떤 시대를 원하는지 직접 물어봐야 한다"며 미국을 견제하는 발언을 내놨다.
한편, 물리노 대통령은 미국과의 관계에서 발생한 오해에 대해 적극 해명했다. 그는 "미국 정부 선박이 파나마 운하를 무료로 이용하고 있다는 미국 측의 주장은 허위"라며 "거짓과 허위 주장에 기반한 양국 관계를 거부한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파나마의 일대일로 탈퇴는 중남미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미국과의 협력이 강화되는 흐름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중국의 경제적 팽창을 견제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으며, 파나마 역시 운하의 전략적 가치를 고려해 미국과 더욱 긴밀한 협력을 모색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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